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유정복(53)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기자와 만나자마자 이 얘기부터 꺼냈다. 그만큼 농협의 신경분리가 절박하고 시급한 사안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경기·인천 출신으로는 50년만에 처음으로 농림부장관이 된 그가 7일이면 취임 100일을 맞는다. 하지만 회고는 사치스럽다. 쉴새없이 밀려드는 현안들이 잠시의 틈도 주지않고 그를 현장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지난 8월30일 취임하자마자 쌀값 폭락으로 홍역을 치렀다.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배춧값에 발목이 잡혔다. 다시 정기국회의 국정감사, 그리고 축산농가의 존폐가 걸린 구제역이 발생했다. 연이은 초대형 사건들은 일벌레로 소문난 그를 더욱 현장으로만 내몰았다.
취임후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는 느낌'으로 일해 왔다는 유 장관의 이력은 화려하다. 인천에서 태어나 제물포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행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해 94년에 최연소 김포군수를 지냈다. 초대 민선 김포시장(98년)도 그의 몫이었다. 경기도 기획담당관 등 지방행정의 요직도 두루 거쳤다.
국회에 들어가선 초선 의원으로 박근혜 전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아 탁월한 정무 감각으로 살림을 챙겨 박 전대표의 복심으로 불릴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농림부 장관으로 취임하자 기대반 우려반의 시선이 쏠렸다. 능력이 있으니 잘 해낼 것이란 기대와 정통 행정관료 출신인 그가 복잡다단한 농정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교차한 탓이다.
경인일보가 시간과의 사투를 벌이는 그를 지난 2일 취임 100일을 맞아 집무실에서 만났다. 구제역 방역대책회의장을 막 빠져나온 그에게 '100일 장관'이 본 국가 농정의 현황과 과제 등에 대해 1시간 30여분간 얘기를 들어봤다. 농업 비전문가에서 농업 행정의 달인으로 변신중인 장관의 개인적 면모까지 포함해서다. ┃편집자주
■ '쌀값 폭등과 태풍, 배추 파동에서 구제역까지'= 유 장관은 '일벌레'다. 농식품부 장관에 취임한 지난 8월30일 유 장관은 쌀값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들을 위해 쌀값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탁월한 협상력을 과시하며 농민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내 합의점을 이끌어 낸 '소통의 달인'이기도 하다.
가을로 접어들자마자 한반도에 몰려온 태풍 곤파스로 인한 침수 피해 예방을 위해 농부들과 함께 비바람에 맞서 싸웠다. 또 예년보다 다섯배 이상 폭등한 배춧값을 안정시켜 턱밑까지 차 올라온 농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농수산물시장 등 유통구조 개선 등의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유 장관은 국정감사장에서도 농업에 대한 이해 부족을 우려하는 세간의 시선을 정확한 수치와 적절한 통계를 인용하며 잠재웠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듯 크고작은 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수장으로서 제 역할을 충분해 해냈다는 평도 받아냈다. 또 농식품부 산하 농촌진흥청을 비롯, 모든 기관장 및 직원들과 만나고, 농수산업 단체들과 대화를 통해 '농업 비전문가가 하면 얼마나 하겠냐'란 기우가 곧 잘못된 것임을 일깨워줬다. 최근 국회 예산 심의에서 내년 농식품부 사업 계획을 더욱 확고하게 정립, 추진하느라 잠시라도 손을 놀릴 겨를이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 '구제역, 주민들의 적극적 협력만이 해결책'= 경북 안동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구제역과 관련, 유 장관은 "안동 이외의 지역에서 신고된 구제역 의심 증상은 음성으로 밝혀지고 있다. 확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까지는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가 발병한 것으로 판단된다. 아직 단정하긴 이르지만 12월 둘째주를 지나면서 방역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유 장관은 구제역은 예방이 중요하다며 이번 발생도 외국에 다녀온 농장주가 입국 전후 신고, 소독해야 하는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며 농민들의 주의를 재삼 당부했다.
국회에서 가축 소유자가 외국 방문 뒤 입국 전후 신고, 소독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강제, 처벌하는 법안을 처리중에 있으니 법안이 통과되면 부주의로 인한 구제역의 발생은 상당부분 감소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구제역 청정국가의 지위도 회복될 것이라는게 장관의 희망섞인 관측이다.
유 장관은 또 농장주들이 구제역 예방에 적극 대처토록 하기 위해 살처분 범위도 적절한 범위로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헬기로 경북으로 내려가 지자체장 및 축산 관련 관계자들에게 예방에 주력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 '신성장산업 농업발전 중장기 전략'= 농촌에 대한 유 장관의 애정은 각별했다. 그는 "농어촌의 경쟁력 강화와 농어민의 생활,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는 게, 다른 한편으론 국민에게 편안한 안심 먹거리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높여나가는 것이 본인의 소명이자 책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농업 분야가 직면한 현안사항에서 국가경쟁력을 제고시켜 나가는데 주력하고 있다. 재고 쌀값이나 배춧값 폭등 등의 문제는 유통구조 개선이 근본적인 치유책이라는 점에서 유통구조개선TF 등을 가동해 제도적 틀을 바꾸려 하고 있다.
농민단체들과 합의점을 이끌어 내 농업 분야의 보조금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등 농업을 선진 신성장 산업으로 육성해 나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아울러 한·미FTA재협상에 농업 분야가 예외가 될 수 없는 만큼 만전의 준비를 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농협중앙회의 신용·경제사업 분리를 위한 자본금과 경제사업 활성화 등 주요 쟁점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진 만큼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추진돼온 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을 위한 농협법 개정안이 반드시 12월 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농업 전문가와 행정가의 소통 주력'= 농식품부의 양대 축인 R&D와 농업정책 관계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갈 방침을 시사했다.
유 장관은 "존폐 위기에 내몰렸던 농촌진흥청의 연구 파트는 농어촌 문제를 해결키 위해 정책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만큼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며 "우수한 연구원들의 탁월한 연구 노력에 대한 높은 평가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를 위한 연구, 중복되는 연구 등에 대해선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 40여개 농과대학 1만4천여명의 학생이 있는데 이들이 나아갈 방향은 교육과 더불어 연구, 그리고 차별화 등이 적절히 고려돼야 하듯이 농업연구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북쌀 지원 문제도 마찬가지 관점이다. 유 장관은 "일각에서 쌀 안정화 대책을 논하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쌀 대북지원을 주장하는데, 이 문제는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는 차원에서 정치 군사적인 상황을 감안해서 진행돼야 한다"며 "남북간 대치 국면에서 쌀 지원은 한 부처의 문제가 아닌 만큼 남북한간의 본질적인 입장을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지난 6·27지방선거에서 유 장관은 끊임없이 인천시장 출마설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끝내 불출마했다. 그는 "내 스스로 인천시장 출마를 고려하거나 입 밖으로 비슷한 생각을 내뱉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오는 2014년 경기지사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론이 항상 현실성이 결여된, 벌어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를 내가 생각하거나 결정하기 이전에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며 시기상조론을 언급했다. 그는 "낼 또 '유 장관 경기지사 출마 가능성 부인 안해' 정도로 세상에 알려질 것"이라고 농으로 받아친 뒤 세간의 억측을 일축했다. 한 발 더나아가 "난 항상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내 소신"이라고 유 장관은 강조했다.
최근 연평도 사태와 관련, 국방부를 비롯, 정부의 대응 방식과 국회, 그리고 언론 등에 사회의 총체적 위기 대응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 장관은 "국가 위기상황임에도 불구, 장관이 일부 언론보도로 사태를 파악하고, 국회는 해당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는 등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솔직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이 밖에 유 장관은 농업보조금 제도 개편, 쌀 조기 관세화, 농어민 복지 향상, 농식품 수출 전문단지 조성 등의 주요 현안을 조속한 시일내에 처리키 위해 농식품부 전직원들과 함께 노력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