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동의 지난 반세기
경인일보가 창간한 1960년은 한국사에 암울한 시기였다.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의 10년 독재가 4·19 혁명으로 막을 내리면서 혼란과 무질서에 휩싸이고 부정과 부패가 판을 쳤다. 언론계에도 부패한 사이비언론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가뜩이나 혼탁한 세상을 얼룩지게 했다.
경인일보는 그런 시대에 인천시 중구 사동의 한 인쇄소 창고에서 '순수한 향토지(鄕土紙)'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창간 2년 만에 인천지역 언론 중 처음으로 윤전기를 도입하는 등 정통언론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힘을 쏟았다. 하지만 1961년 5·16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언론에 서슬 퍼런 검열과 탄압의 칼을 휘둘렀다. 경인일보(당시 '인천신문')는 군부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굳건히 정론직필의 깃발을 지키며 경인지역 언론의 역사를 이어갔다. 무자비했던 군사정권의 억압과 언론통폐합이 난무하는 격변하는 언론환경에서도 경인일보가 꿋꿋하게 반세기를 버텨올 수 있었던 저변에는 식지 않는 독자들의 사랑이 있었고, 경인지역의 미래가 있었고, '정론직필·지역발전·문화창달'이라는 굳건한 창간 정신이 있었다.
반세기 역사를 지켜온 경인일보가 현장에서 기록한 지난 50년의 역사는 한마디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정치적으로는 5·16 군부 쿠데타에서 유신정권, 10·26 대통령 암살, 12·12 군사반란, 1980년 민주화 항쟁 등이 이어지며 국제적으로 유례없는 격동의 역사를 썼다.
사회적으로도 한국사회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로 얼룩져 불안하고 뒤숭숭한 시절이 이어졌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면서 가끔씩 터져 나온 세상을 경악케 한 대형 사건들은 안타까운 사고들과 함께 반세기 역사 곳곳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1971년 실미도 사건부터 1975년의 살인마 김대두 사건, 그리고 1982년의 장영자 어음사기사건, 1986년부터 이어진 화성 연쇄살인사건, 1987년 오대양 사건 등 대형 사건들이 이어지며 전국을 공포와 전율로 몸서리치게 했다.
남북관계 역시 지난 반세기 역사는 기쁨과 희망, 슬픔과 절망이 교차한 격동의 시간이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 군사정권은 극단적인 반공 이데올로기와 민족 화해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며 남북관계를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1990년대 들어 남북한 사이에는 조금씩 온기(溫氣)가 찾아들었지만, 북한의 핵문제를 비롯해 서해교전과 연평해전 및 최근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과 1991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채택, 2000년 '6·15 공동선언'의 취지를 무색케 했다.
이렇듯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이어진 격변은 1980년대 후반부를 넘어 1990년대를 거치면서 격랑의 파고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한다. 정권이 군부에서 민간으로 넘어가고, 사회적으로 민주화가 진행되고, 경제적으로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반열로 발돋움하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 새로운 반세기를 시작하다
경인일보가 기록한 지난 반세기 질곡의 역사는 '새로운 천년'이라는 21세기 개막과 함께 일대 전환점을 맞는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네트워크의 구축과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전 세계를 '국경없는 공동체'이면서 '무제한 경쟁구조'로 변화시켜 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국가 내부의 문제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들이 국내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경기도와 인천시는 이 같은 시대 흐름에 맞춰 새로운 전략으로 역사를 열어가고 있다.
경기도는 반월·시화에서 화성과 평택으로 이어지는 환황해권 개발을 통해 글로벌 경제중심지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해양과 항공산업, 바이오·헬스산업 등 차세대를 이끌어갈 신성장산업 육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인천시 역시 '동북아 중심도시, 경제수도 인천'을 내걸고 인천국제공항과 인천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국제 물류·관광·첨단산업의 허브도시로 자리잡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경인일보도 이 같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구축해 가면서, '역사의 기록자'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언론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지역경제의 조력자로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참여하고, 지역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많은 사업을 펼쳐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04년부터 대중국 경제교류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이래 매년 수차례 중국 현지에서 중소기업박람회 및 친선교류회를 개최하며 한국 언론사 중 대중국 교류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로 입지를 굳혀 왔다. 경인일보의 중국 경제교류사업은 특히 중국의 수도 베이징과 지린성 창춘, 산둥성 옌타이·웨이하이·칭다오 등 주요도시는 물론 '서역'으로 불리는 신장 웨이우얼자치구 우루무치까지 영역을 넓혀오고 있다. 2005년에는 '경인문화교류유한공사' 설립, 어학연수 등 학생 교류사업과 민간차원의 문화교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2008년에는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경인일보 창간 48주년을 축하하는 휘호를 전달해 오기도 했다.
경인일보는 또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매년 '아줌마 축제'와 '인천 바다그리기 대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11월에는 화성운영재단과 공동으로 정조대왕 탄신 258주년 기념 '화성 축성 낙성연(落成宴)' 최초 시연과 화성 관광자원 활성화 방안 마련을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해 큰 관심과 주목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