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일보=김선회기자] 영원불멸을 꿈꾸며 만리장성과 병마용, 그리고 거대한 지하궁전을 만들었던 진시황제도 사라졌고, 야광주를 입에 물고 극락으로 가기를 염원했던 철의 여인 서태후도 결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남은 것은 결국 수천 수백 만명의 백성들이 피와 땀을 흘려 만든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과 황금 옥좌뿐이었다.
경인일보는 지난 9월 6일부터 12월 2일까지 3개월 남짓한 기간동안 창간50주년 특별기획 왕릉순례 '아시아의 왕을 만나다'를 연재했다.
중국 시안(西安), 난징(南京), 선양(瀋陽), 베이징(北京), 탕산(唐山)을 거쳐 베트남 후에(Hue)와 일본 오키나와 (沖繩)를 넘나들며 경인일보 취재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황릉과 왕릉군의 생생한 기록을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중국편에서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 거지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명나라 홍무제, 한시대를 풍미했던 명의 영락제와 만력제, 대청 제국의 기틀을 만든 청태조와 청태종, 청나라를 최강의 제국으로 만든 강희제와 건륭제, 그리고 청의 멸망을 재촉한 서태후를 새롭게 조명했고,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문화재 발굴 뒷이야기와 왕릉 도굴사건 등도 흥미롭게 소개했다.
베트남편에서는 세계 열강의 틈바구니속에 프랑스의 꼭두각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뜨득 황제와 카이딘 황제를, 일본편에서는 일본과는 전혀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독립적인 류큐 왕국을 건설했던 쇼씨왕조에 대해 다뤘다,
중국 황릉을 처음 답사했을때 취재진은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적잖게 놀랐다. 그리고 명나라와 청나라를 거치면서 정착된 황릉 양식이 같은 한자 문화권이었던 조선과 베트남, 일본에까지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확인했다. 하지만 중화제국의 문물을 그대로 답습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은 조선 나름대로, 일본과 베트남 역시 중국의 문묘문화를 수용하되 그들만의 독특한 양식을 결합해 왕릉을 조성했다. 이들 왕릉은 유물이 가득한 박물관으로, 호수와 소나무 숲이 울창한 공원으로, 때로는 유럽식 고성 같은 관광지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아시아의 왕을 만나다'시리즈를 연재하는 동안 과연 훌륭한 인군(人君)의 최우선 덕목은 무엇일까 취재팀은 많이 고민하게 됐다. 고민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손상익하 (損上益下)'의 정신이 아닐까 한다.
조선의 문예군주인 정조가 즐겨썼던 이말은 주역(周易) 풍뢰익(風雷益)괘에 나오는 것으로, '윗사람이 손해를 봐서 아랫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정조는 이 단 네글자를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가 만나본 아시아의 황제와 왕들 중에서도 '손상익하'정신을 실천한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이말을 역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백성들의 고통에찬 목소리에 귀를 닫았으며, 자신들은 황금으로 둘러 쌓인 왕궁에서 호화스런 생활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번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반면교사의 큰 가르침을 얻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날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경인일보 독자여러분들과 함께하기를 바라며 그동안 애독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