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송수복객원기자]

■ 산행지: 강원 원주 문막 명봉산(鳴鳳山, 618.4m)
■ 산행일시: 2010년 12월 7일(화)
■ 산악회: 원주 메아리산악회 (9명)

■ 반짝이는 섬강의 물비늘이 일품인 명봉산


영동고속도로 문막IC를 나오자마자 오른편으로 보이는 산이다. 예로 부터 면화 재배가 많던 마을이어서 '메나마을'로 불리고 있는 동네로 들어서는 일부터 산행은 시작된다.

원주에서 마중나온 원주 메아리 산악회원 10여명과 만나 메나마을 안막골을 향해 오르기까지 채 이십여 분이 걸리지 않았다.

명봉산의 대표적인 등산 코스였던 궁촌리 원점회귀 산행이 골프장 건설로 인해 불가능해지면서 외지 등산객들이 지속적으로 명봉산에 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건등리 주민들이 등산로 정비 및 편의시설을 갖춰 놓은 까닭에 명봉산을 찾는 대표적인 등산 진입로가 된 것이다. 메나마을이란 이름은 수백년 전부터 목화를 재배하던 곳으로 목화 → 면화 → 메나로 불리게 된 것인데, 현재는 일손부족으로 인하여 재배를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 한다.

메나마을로 진입하면서 지나는 건등저수지는 1965년도에 1만여 마리의 잉어 치어를 풀어 제법 유명세를 탔던 낚시터였지만 현재는 외래 어종인 배스로 인해 이미 옛말이 되어 버렸다. 봉황이 울었다는 명봉산은 문막 일원에서 가장 높기도 하거니와 섬강을 조망하기 좋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 문막의 역사와 건등산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 뒤 염소와 사슴을 키우는 명봉원 목장 옆길로 오르는 것으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대형 등산안내판이 있는 족구장을 지나 계류를 건너 갈림길에 다다르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지만 전혀 힘들지 않은 길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지름길인 절터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갑자기 급사면의 비탈길이 나타나면서 순식간에 명봉산의 남서릉 안부에 다다르게 한다.

이 구간이 유일하게 땀을 흘린 곳이기도 하다. 안부에서 5분 거리의 헬기장을 지나면 곧바로 시원한 조망의 암봉에 서게 되는데, 이곳이 598.7m로 전 구간에 걸쳐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다.


"저기 저쪽으로 건등산(建登山·260m)이 보이시죠? 1914년도엔 저 일대가 건등면으로 개칭되기도 했었던 곳이에요. 그리고 문막이란 이름도 일제시대 전까지 물막이로 불리던 것을 일본어식으로 고쳐 쓰다 보니 문막으로 변질된 것이라고 하는데 옛 이름을 찾는 일부터 해야 하지 않나 생각되네요. 건등산은 왕건과 견훤이 싸운 후 승리를 거머쥔 왕건이 올랐다는 산으로 이 고장 사람들이 애정을 갖고 보존하려 하는 곳이기도 하죠."

메아리산악회 회장인 장인순(54·원주시)씨가 문막 일대를 가리키며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니 선조들이 지어놓은 이름 하나하나까지 말살되어진 역사가 고스란히 아픔으로 전해 온다.

■ 벽계수 이종숙과 황진이

발 아래로 영동고속도로가 유장하게 지나가며 그 너머 섬강의 반짝이는 아름다운 물빛이 따스함을 전하기에 초겨울 때 아닌 볕쬐기를 하고 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문막읍내의 전경과 멀리 당산(541.1m)과 수리봉(427.1m)이 조망되고 북동쪽의 원주시 너머 치악산 망경봉과 남대봉이 바라다보이기 때문이다. 뒤돌아 남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덕가산에서 명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미륵산과 비두리 분지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한편, 정상석의 배경으로 보이는 궁촌리 일원 골프장의 모습이 주변의 풍경과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어서 달갑지 않다며 구시렁대던 차은남(47·원주시)씨는 "멀쩡한 산을 깎아서 농약이나 뿌려대는 골프장 만드는 사람들 심보를 이해 못하겠네요. 보기에도 안 좋고 환경을 파괴하는 골프장은 질색이에요"라고 말하며 미간을 찡그린다.

그러자 장 회장이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골프장에 뿌려지는 농약의 양이 우리나라 전체 농경지에 뿌려지는 농약량의 0.1%밖에 안 된대요. 게다가 엄격하게 관리 감독하고 있어서 생각한 것처럼 농약을 있는 대로 뿌려대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아니란 얘기죠. 농지 대비 비율로 보면 15% 안팎이라고 하더라구요." 난상토론(爛商討論)하던 명봉산 정상을 벗어나 다시 호젓한 능선 길로 접어든다.

고고한 미송(美松)의 자태와 기암이 어우러진 단아한 능선길이다. 북동쪽 능선을 타고 408봉에 이르기까지 능선 아래로 이어지는 작은 갈림길이 연이어 나타난다.

"동화골로 내려가서 법흥사 경내를 들렀다 가는 것도 좋지만 계곡에 물도 없고 볼거리가 별로 없어요. 391봉우리 지나서 벽계수 이종숙 묘역에 들렀다 가는 게 가장 좋을듯 싶은데…"라며 박의남(51·원주시) 총무가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정상에서 40여분 거리의 391봉에서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만나게 되는 묘역은 말끔히 단장이 된 모습이다.

묘지의 주인인 벽계수 이종숙과 황진이는 어떤 인연이었을까.

서유영(徐有英·1801~74)의 금계필담(錦溪筆談)에 따르면 명사가 아니면 만나주지 않는 황진이를 만나기 위해 벽계수가 친구인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의논한 바, 이달이 "진이의 집을 지나 누(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한 곡을 타면 진이가 곁에 와 앉을 것이다. 그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말을 타고 가면 진이가 따라올 것이나 다리를 지나도록 돌아보지 말라"하고 일렀다 한다.

이에 벽계수가 이달의 말대로 말을 타고 뒤돌아 가던 중 황진이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 웨라 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라는 시조를 읊었고, 이것을 들은 벽계수가 다리목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다 말에서 떨어진 것을 보고 황진이는 웃으며 "명사가 아니라 풍류랑(風流郞)이다"라고 하며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묘역 어디에 봐도 황진이와 관련된 글귀 하나 찾아 볼 수 없으나 귀에 익은 시조 한 수가 입에서 절로 나오고야 만다. 봉황의 울음소린 오간 데 없고 출처 불분명의 시조가락이 난무하더라도 누구하나 탓하는 이 없는 명봉산은 고즈넉하고 편안한 산행이 일품인 산이다.

 
 

※ 산행 안내

■ 교통

청량리역 ~동화역(강릉행) 2시간10분 소요

동화역~ 건등리행 버스(10분 소요) 15분 간격

원주역 ~건등리행 버스(30분 소요) 15분 간격

동화골 ~원주역행 버스(30분 소요) 15분 간격

- 자가용: 영동고속도로 문막IC 로 진출 후 오른편 건등리 메나동으로 진입(대형버스 주차 가능)

■ 등산로

- 메나골~절터~정상 표지석~명봉산 정상~480봉~391.2봉~이종숙 묘역~동화2리(4시간30분)

- 메나골~절골~정상 표지석~명봉산 정상~565봉~445봉~신배나무골~안막골~메나골(3시간3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