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김종택기자/jongtaek@kyeongin.com

[경인일보=김선회기자]이천시 마장면 이평리, 와룡산(臥龍山)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언덕에 자리잡은 '청학서당(靑鶴書堂)'. 눈이 많이 내렸던 지난 9일 이곳을 지키고 있는 서재옥(48) 훈장을 만날 수 있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비롯한 첨단기기가 판치는 요즘 시대에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상투 틀고 탕건을 쓴채 강의실에 홀로 앉아 "부생아신(父 生 我 身·아버지 날 낳으시고) 모국오신(母鞠吾 身·어머니 날 기르셨네)~"하며 낭랑하게 사자소학(四字小學)을 읽어내려 갔다.

# 경기도와 인연을 맺은 청학동 훈장

서재옥 훈장은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 청학동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은 흔히 지리산 청학동을 '도인촌(道人村)'이라고도 부른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이 속세의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 훈장 부친인 서계용(92) 옹은 6·25이후 청학동에 들어와 촌장을 역임하고 서당을 열어 실질적으로 이곳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서 훈장은 7살때 아버지로부터 사자소학, 추구, 동몽선습, 격몽요결, 명심보감 등 한문의 기초를 배웠다. 현대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자란 그는 스무살이 되자 청학동을 내려와 충남 부여에서 서암(瑞巖) 김희진 선생을 비롯한 한학의 대가들을 만나게 되고, 사서삼경 등을 익히며 한학자로 성장한다.

"어렸을 때는 다른 친구들처럼 현대적인 학교 교육을 받지 않은 것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나중에는 기왕 이렇게 된 것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여러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학문을 정진한 후 1980년대 후반에 고향인 청학동으로 다시 들어왔어요. 그렇게 된 계기가 있어요. 서울 양천향교에서 서당 교육을 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서울대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님들이 '요즘 사제지간에는 정이 없다. 교수가 마치 직업안내자처럼 됐다. 그러니 당신은 단 한사람을 가르치더라도 제대로 된 제자를 길러라'라고 당부를 하시는 겁니다. 그 말씀들을 듣고 앞으로는 청학동 사람들만 전통을 지키며 살 것이 아니라 인성(人性)이 황폐화되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참된 가르침을 주고 싶었죠. 당시 아버님이 하고 계시던 동네 서당을 확장하고 외부 수강생을 받아 한문교육과 인성교육을 시작했어요. 이것이 청학서당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서 훈장 덕에 청학서당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방학이 되면 수많은 학부모들이 예절·인성교육을 시키기 위해 자녀들을 청학서당에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런 유명세를 이용해 유사 단체가 난립하기에 이른다. 청학동 출신도 아닌데, 청학동에서 공부했다며 서당을 차리는 사람, 학문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훈장처럼 옷만 입고 아이들에게 이상한 놀이문화만 제공하는 사설 학원들이 생긴 것이다.

"현재 청학동 주변에 30여군데가 넘는 서당이 생겼어요. 점점 교육의 질은 떨어지고 청학동을 포장하는 사람들만 늘어났죠. 그래서 아예 다른 곳에다 제대로 된 서당을 다시 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던 중 서울·경기에 있는 학부모들이 지리산 청학동은 너무 머니 서울 근교에 서당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꾸준히 하셨고, 몇군데 장소를 물색하던 중 이곳 이천에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잘될 사람에게만 회초리를 든다

청학서당에는 현재 주말을 이용한 2박3일 코스부터, 방학을 대비한 1~4주 코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청학서당의 하루는 아침 6시부터 시작된다. 이곳에 입소한 학생들은 오전에는 수준별 한문 교육과 인성예절 교육을 받고, 오후부터는 자연과 벗삼아 체험학습을 한다. 이후 저녁에는 전통예절교육을 배우고 직접 몸으로 익힌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낯선 환경과 그동안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강독을 통한 한문공부, 엄한 예절교육 덕에 종종 겁을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곧 이런 교육방식에 적응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충(忠)·효(孝)·예(禮)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게 된다.

"집에서 인터넷과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던 초등학생들이 우리 서당에서 인성예절교육을 받고 난 후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말을 부모님들로부터 들을 때가 가장 보람있습니다."

일반 학교에서는 체벌이 전면 금지돼 있지만 서 훈장은 아직도 어린 제자들에게 회초리를 든다고 했다.

"교육은 순간의 깨우침이 아니라 사람들의 혼을 바로 세워주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요즘 선생님들은 그런 점에서 사명감이 부족해요. 저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입교식을 할때 '원래 서당은 양반의 자손들이 군자의 도학(道學)을 하는 곳'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니 이 시간 이후로 여러분들은 양반의 자손이요, 공부시간에는 공부를 하고, 노는시간에 놀아야 양반의 자손이다. 그리고 아무나 때리는 것이 아니라 잘 될 사람만 때리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사실 제가 공부할 때만 해도 스승님을 찾아 뵐때는 회초리하고 공부할 책을 본인이 짊어지고 왔어요. 이것이 바로 마음의 준비지요. 회초리를 스승께 올리면서 이것으로 자기를 잡아달라고 하는 겁니다."

회초리 이야기가 나오자 부연 설명이 길어졌다.

"간혹 '우리애는 절대로 때리지 마세요'라고 당부하는 부모님들이 계세요. 그런 부모들 밑에서 자라난 애들 치고 제대로 자립하는 친구들이 없어요. 나중엔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게 아니고 부모가 평생 자녀를 모시게 되는거죠. 행복의 길은 결국 본인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나쁜 습관만 조금 고치면 모든 학생들이 밝은 길로 나갈 수 있어요. 학생들이 사회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규범과 학문의 자세를 바로잡게 하기 위해 최소한의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교육적 주관이 뚜렷한 서 훈장의 최종 꿈은 무얼까.

"수많은 혼돈기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이 정도 갈 수 있었던 것은 가정을 위하고 나라를 걱정했던 훌륭한 인물들이 많아서일 겁니다. 현재의 공교육은 심하게 무너졌고, 부모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들의 인성을 제대로 길러주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할 수 있도록 저희 서당이 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결국은 개인이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서고 그렇게 돼야 나라가 튼튼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참된 인간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이 저의 평생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