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최재훈·김종찬기자]"자유와 꿈을 찾아주면 모든 게 될 줄 알았습니다."

탈북 청소년의 대부인 한꿈학교 교장 김성원(40) 목사. 그가 탈북 청소년을 처음 만나게 된 건 지난 1997년 중국와 태국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펼칠 때였다.

선교활동 중 우연히 만난 탈북 청소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한결같은 꿈은 자유가 보장되는 '대한민국'행이었다. 아이들의 간절한 꿈이 그에게 이어졌을까. 그때부터 그는 청소년들의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도했다.

결국 김 목사와 만난 탈북 청소년들은 대한민국에서 중국이나 태국지역으로 선교 활동을 나온 선교사들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하나 둘씩 보내졌고, 5년새 400여명에 이르는 탈북 청소년이 자유의 나라 '대한민국'의 땅을 밟았다.

이 모든 일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998년 탈북 청소년 7명과 함께 감시의 눈을 피해 작은 돛단배에 몸을 싣고 밀항을 시도하던 중 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순간 김 목사의 머리에는 '이제 죽었구나'라는 생각보다 '이 아이들의 창창한 미래를 보지 못하게 해주는건 아닐까'라는 미안함이 밀려왔고, 전복된 배 근처에 있던 나머지 아이들의 손을 끌어 전복된 상태의 배에 의지해 강을 건너기도 했다. 2002년에는 탈북 청소년과 만나기로 했다 북한 공작원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이처럼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탈북 청소년을 위한 그의 의지와 노력을 막을 수는 없었다. 탈북 청소년들이 원하는 꿈 그것을 이뤄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2년 잠시 선교활동 중간에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뜻하지 않은 소식에 중국과 태국 지역의 선교활동에서 손을 떼게 된다.

그렇게 바라던 대한민국에서 탈북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꿈처럼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고, 결국 민주주의와 자유에 적응하지 못한채 탈선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의 손을 거쳐 대한민국의 땅을 밟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남북한의 커다란 사회적 이념 등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범죄의 유혹에 빠지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각한 정신적 질환을 겪고 있었다.

▲ 지난 27일 한꿈학교 상담실에서 한 탈북청소년이 김성원 목사에게 진로상담을 받고있다.

2002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선한 아이들은 그를 만나자마자 굵은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했다.

탈북 청소년들은 "같은 또래이면서도 너는 탈북 청소년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돼 그 누구 하나 따뜻한 손을 내밀기는커녕 바라보는 시선조차 곱지 않았다"며 자신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는 자신이 해야 할 또다른 일에 눈을 떴다. '꿈은 그것을 생각만 하는 자에겐 꿈이지만, 대가를 지불하는 자에게는 더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가 선택한 일은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인 '한꿈학교' 설립이었다.

학교 설립을 위해 그는 (사)한민족세계선교원으로부터 남양주에 학교 건물을 임대받아 2004년 4월 '한민족 통일의 꿈'을 의미하는 '한꿈학교'를 설립,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 청소년들을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한꿈학교에 대해 그는 "학교 설립은 단순 대안학교가 아닌 탈북 청소년들의 빠른 한국 사회 적응력과 경쟁력을 키워줄 수 있는 꿈의 발판"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설립한 학교에선 그동안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사회 적응시키기 위한 심리 치료는 물론 향후 사회 진출을 위해 검정고시반을 운영했다. 그러나 학교를 설립했지만 찾아오는 학생은 고작 8명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해줄 교사 3명을 만나 꿋꿋하게 학교를 지켜 왔다.

그렇게 2년을 지내면서 학생들은 23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장소를 제공했던 단체가 퇴거 결정을 내리면서 꿈을 키워오던 아이들은 한 순간에 거리에 몰릴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하늘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 공부할 공간이 없어 폐교 위기까지 몰렸지만 남양주시가 1년후 이사를 전제조건으로 별내면사무소 지하 1층을 이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선뜻 내줬다. 그러나 이 보금자리도 오래가지 못했다. 별내가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면사무소조차 그들을 받아줄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러나 철거 4일전 교육과학기술부 공모사업에 선정됐다는 뜻밖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그들은 지원금으로 의정부 장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상가에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3번째 보금자리를 찾게 됐다.

그는 "탈북 학생들을 돕기 위한 일념의 생각으로만 학교를 설립했는데 현실의 벽이 이렇게 높은 줄 몰랐다"며 "하지만 주위의 관심과 하나님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시련을 기회로 바꿀 수 있었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와 탈북 청소년들의 노력은 점차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23명의 학생 가운데 고려대, 서강대, 인하대 등 절반가량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했고, 지난 4월 '한꿈월드'라는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한 화장품 회사의 도움을 받아 바오밥나무 추출물을 섞은 기능성 비누와 북한 된장, 북한 들쭉 등을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처음 '자유'라는 꿈에만 의지해 대한민국의 땅을 밟았지만, 사회적 이념 등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탈북 청소년들. 그러나 그를 대한민국으로 이끌고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멘토가 되어준 그가 있어 탈북 청소년들은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됐다.

그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한꿈학교란 조그만 울타리를 제공해 본인들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여주고 싶었다"며 "학생들이 한꿈학교를 믿고 최선을 다한다면 이들의 미래는 밝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꿈은 그것을 생각만 하는 자에겐 꿈에 머물지만, 대가를 지불하는 자에게 더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진실을 알리고, 실천하는 김 목사. 이제 탈북 청소년이라는 선입견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또래로서 하나되는 밝은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