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목동훈기자]2010년 경인년(庚寅年) 11월 인천 연평도에 울려 퍼진 포성은 인천시민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포성은 멈췄지만 상처와 충격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같은 해 3월,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는 천안함이 침몰해 46용사가 바다에 잠들었다.
인천 앞바다 섬에 사는 주민들은 그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평화'를 바라고 있다. 북한의 포격을 당한 연평도, 천안함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백령도, 접경지역인 교동도에서 평화의 소망을 담은 새해 메시지를 전한다. ┃편집자주
북한의 포격으로 상흔이 남아 있는 인천 연평도에도 새해가 왔다.
2010년 11월의 상처와 충격은 쉽게 치유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연평도는 '트라우마'(외상성 신경증)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에도 남북관계 긴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연평도 주민들은 그 누구보다 '안정'과 '평화'를 바라고 있다. 안정과 평화는 새해 소망이기도 하다.
송중섭(44·연평장로교회 목사)씨 가족은 지난해 3월 연평도로 이사를 왔다. 영흥도에서 7년 동안 살아서 '섬 생활'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북한의 포격은 상상도 못했다. 송씨는 "북한이 민간인에게 포격을 한 적은 없었다"며 "연평도가 북한과 가깝다는 것은 알았지만 위험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포격 당시 송씨는 당섬선착장에 있었다. 송씨는 "(선착장에서) 집과 교회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며 "가족은 마을에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송씨의 큰아들 주원(7)군은 유치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주원이는 "선생님을 따라서 대피소에 갔어요. 포소리가 안 들리게 하려고 (대피소에서) 친구들이랑 더 신나게 놀았어요"라고 말했다. 주원이는 올 3월 초등학교 1학년이 된다. 하지만 연평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연평도 학생들이 모두 뭍으로 나가 있기 때문이다.
연평초교의 시계는 북한의 포격 이후 시간이 멈췄다. 10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던 연평초교 5학년 1반 교실 칠판에는 아직까지 '11월' '23일' '화요일'이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다.
주원이는 "빨리 초등학교에 가고 싶어요. 팔굽혀펴기 백번, 아니 천번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송씨의 아내 박미경(42)씨는 "연평도가 빨리 안정이 됐으면 좋겠다"며 "아이들도 건강하게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이다"고 했다.
연평도에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사당(충민사)이 있다. 이 곳에서 매년 3~4월에는 풍어제가 열린다. 연평도는 과거 조기어장으로 유명했다.
선주 박철훈(55)씨는 "옛날에는 전국 각지에서 조기잡이 배가 연평도로 왔다"며 "그 때는 선착장으로 가는 다리가 없었다. 조기잡이 배가 너무 많아서 정박해 있는 배를 밟고 넘어가 선착장에 갔을 정도다"고 했다.
박씨의 새해 소망은 '만선'이 아니다. 연평도의 안정이다. 박씨는 "주민들이 집을 떠나 김포 양곡지구에서 고생을 하고 있다"며 "가족이 평온하고 연평도가 안정을 찾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의 친구 박용훈(55)씨는 "(주민들은) 총은 없지만 마음으로 고향을 지키는 것이다"며 "북한의 도발 전처럼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북한의 포격 이후 '왜 연평도에 사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연평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야속했다"고 했다.
변진식(66)씨는 북한의 포격으로 이마에 상처를 입었다. 17일 동안 입원해 있었다.
변씨는 "몸의 상처는 마무리됐다. 하지만 정신과 마음의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이어 "내 소망은 연평도에서 평온하게 살면서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며 "(정부가) 연평주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연평도에서 배 농사를 짓는 김진영(61)씨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 연평도'를 희망했다.
김씨는 "연평도는 6·25 전쟁 때 난민을 받아 준 섬이다. 과거 조기로 유명했고 지금은 꽃게로 널리 알려졌다"며 "받아 주고 베풀어 주던 연평도가 지금은 엉망이 됐다"고 했다. 또 "이제는 포격을 맞은 섬, 포격을 맞을 수 있는 섬이 됐다"며 "연평도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고 했다.
정창권(56·연평우체국장)씨는 부모님과 함께 연평도에 머무르고 있다.
정씨는 "주민들이 빨리 연평도로 돌아와 마을이 옛 모습을 되찾았으면 한다"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가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