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조영달기자]경기도 전역이 구제역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족처럼 키운 소, 돼지를 땅에 묻는 농장 주인들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매일 살아있는 소, 돼지에 독약을 주입하는 수의사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릴 정도다.
지난 2000년 공직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12년차 공무원인 김종기(40·도 대변인실 행정 7급·사진)씨도 지난 연말,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참혹함을 경험했다.
성탄절 전날인 12월24일 동료 직원 19명과 함께 연천군 구제역 현장 방역지원 요원으로 차출된 김씨는 3시간을 꼬박 달려 살처분 현장에 도착했고 방역복으로 갈아입은 뒤 작업에 들어갔다. 소 주인은 10년을 애써 키운 45마리를 살처분해야 한다는데 몹시 화가 나 있었고 욕설까지 섞어가며 항의했다.
김씨는 "정말 안타까웠다. 그 입장이라면 나도 그랬을 것"이라며 "(주인은) 화를 내다 나중엔 울면서 하소연했는데 제대로 위로도 할 수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축사앞에 파놓은 구덩이 앞에 대형 비닐을 까는 일부터 시작한 그는 마취된 소가 쓰러지기 전에 축사 앞으로 소를 몰았다. 마취주사를 맞은 소가 2분정도 지나 쓰러지면 포클레인이 대형 비닐 위로 소를 옮겼고, 이내 김씨에게 무쇠 낫이 건네졌다. 김씨에게 마지막 처리과정이 맡겨진 것이다. 이날 김씨가 처리한 소만 35마리.
"메스껍다거나 속이 울렁거린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단지 '주인이 보면 어떡하나' 걱정됐다. 어떻게 보면 자식같은 소를 내가 죽인 셈인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하루 종일 매몰작업을 하고 집에 도착했을 땐 밤 12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김씨는 미리 준비한 성탄 선물을 조용히 아들 머리맡에 두고는 '하루빨리 구제역이 종식되기를, 피해를 입는 농가가 더이상 생기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는 "가족에겐 어떤 일을 했는지 아직 말을 하지 않았다"며 씁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