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일보=민정주기자]"누군가는 저를 두고 자격증 귀신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공부 중독이라 하지만 저는 그저 겸허히 내게 주어진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며 26년을 하루같이 살았을 뿐입니다."
10여년 전 고승덕 의원은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모두 패스한 '고시계의 제왕'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고시계에서 고 의원이 무너지지 않을 기라성이었듯이, 건설계에도 고의원이 울고갈만한 '자격증 종결자'가 있으니 바로 수원에서 건축사를 하고 있는 이용성(56·서원종합건축사 전무이사)씨다.
지난 7일 이씨는 국토해양부가 주관하는 '2010년 건축사자격시험'에 최종합격했다.
합격자 대부분이 70년대에 태어난 팔팔한 청춘(?)들이다보니, 54년생인 이씨는 '최고령 합격자'라는 생각도 않았던 타이틀이 더해졌다. 이씨에게는 이 타이틀 외에도 수많은 타이틀이 붙어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타이틀은 '국내 유일의 건축 관련 자격증 그랜드슬래머'다.
이밖에도 경희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겸임교수, 건축회사 전무이사, 경기도 명예감시원, 수원시 설계자문위원, 시민 대표감사관 등등 이력서의 페이지를 넘겨가며 헤아려야 할 만큼 많은 타이틀을 가진 이씨는 왜 또다시 건축사 자격시험에 도전했을까.

이씨는 출생 당시 수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제과점집 외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세명의 누나 다음으로 태어난 아들이니 얼마나 귀여움을 받았을지는 안 봐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3살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그 많던 재산을 사기로 모두 잃고만 어머니와 헤어져 외삼촌 댁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야했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은 외삼촌댁에서 더부살이 하는 입장이 돼버린 이씨는 한창 자라고 공부할 나이에 도시락 한 번 싸갈 수 없었고 책 한 권 사볼 수 없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2시간동안 신문을 돌리고, 학교 수업을 마치면 다시 석간신문을 돌린 후에야 지친 몸을 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씨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학교로 찾아오는 빚쟁이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영원히 그를 따라다닐 것 같은 절망감이었다.
이씨는 평소 따르던 선배의 권유로 건축공학과를 선택해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후 건설사에 취직한 이씨는 86년 처음으로 건축시공기술사 자격 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건축시공기술사 자격시험에 응시하려면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기사자격증을 취득하고 4년 이상의 실무경험을 쌓아야 했다.
그러고도 한 번에 1천700~1천800여명이 응시해 자격증을 따는 사람은 50명 안팎이니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이씨에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번번이 고배를 마시며 6년을 공부했다.
이씨는 "회사는 다녀야 하니 시간이 부족해 동료들과 회식자리 한 번 같이 한 적이 없어 눈총도 많이 받고 자주 밤을 새 무척 피곤했다"면서도 "중고등학생시절 6년동안 못한 공부를 늦게라도 한다는 심정으로 매달렸다"고 회상했다.
92년 드디어 첫 번째 자격증을 손에 넣은 이씨는 94년 건축안전기술사, 95년 건축품질시설기술사, 2001년 토목시공기술사 자격증을 줄줄이 따냈다.

다섯번째 도시계획기술사를 딴 것은 그로부터 8년 뒤인 2009년. 그 사이 이씨는 건축구조전공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1년을 더 공부해 올해 건축사 자격증을 따기까지 26년동안 이씨는 쉼 없이 공부하고 도전했다.
그렇게 일하며 공부하며 살다보니 이씨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점점 많아졌다. 건축분야에서 이론과 실기에 정통한 이씨는 오륙도(56세에 일하면 도둑이라는 의미의 신조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바쁘다.
이씨는 "개인적인 향학욕구로 시작한 공부지만 내가 배운 것들을 교수로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사회 감사단 등의 활동을 통해 '공헌'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이씨가 지금 하는 일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일이 2002년부터 하고 있는 수원시민감사관이다. 이씨는 지난해 수원천 복개복원공사현장에서 시장통행로에 안전구획 마련 등을 권고하는 등 수원지역 내 공공시설 건축 현장을 살피며 시민 편의와 안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일과 공부밖에 모를 것 같은 이씨가 가족이야기를 시작하자 얼굴에 이내 행복이 베어난다.
이씨는 "주말에도 점심도시락 싸들고 고시원으로 가는 제 뒷모습을 보며 힘들어하던 아내가 지금은 책상에 앉아있는 모습이 가장 편안해 보이고 그 모습을 볼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며 "평생 저를 맹목적으로 존중하고 지원해준 아내가 고맙다"고 자랑했다.
그 멋진 사랑의 결실로 이씨는 나이 50에 늦둥이를 얻었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와, 이씨를 따라 건축공학을 전공하는 아들, 중국유학을 앞두고 있는 딸과 함께 공부하는 아빠인 이씨는 이제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는 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환경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며 눈을 빛내는 것을 보니 조만간 또 자격증 '7관왕' 소식을 들려 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