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일보=글·사진┃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강의교수)]언어는 사회의 풍향계다.
한파·무상급식·구제역·4대강·UDT·스티브 잡스·박지성 등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주요 검색어들을 포함한 최근의 유행어들을 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관심사와 환부와 열망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언어는 역사적이다. 인간이 쓰는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자 자의적이기에 기원을 알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지만, 기원과 유래가 분명한 것들도 있다. 조선시대 궁중어의 상당수가 몽골에서 왔다고 한다. 고려시대 왕실은 정략혼으로 인해 몽골어와 풍습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는데, 조선 왕실에서 고려왕실의 언어를 그대로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가령 임금님의 밥상을 뜻하는 '수라' 등이 그렇다. 참고로 황제를 뜻하는 독일어 '카이저'나 러시아어 '짜르'도 제정 로마를 이끈 '시저(Caeser)에서 파생된 단어들이다.
당연히 철도의 등장과 함께 출현한 단어도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쓰는 외래어 트레이닝·트레이닝복·트레이너 등은 모두 기차를 뜻하는 트레인(Train)에서 나왔다. 훈련과 교습이란 뜻을 지닌 트레이닝은 기차(Train)에 '-ing'를 붙인 말로 지도자가 정해진 목적지까지 사람들을 인도한다는 의미다. 트레이닝의 유의어인 코칭도 마차를 뜻하는 헝가리어 코치(coach)에서 나온 것으로 손님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모셔다 드린다는 뜻에서 나왔다. 다만, 트레이닝이라는 말에는 엄격하고 기계적이며 일방적이라는 의미가, 코칭이란 말에는 유연하고 개인적이며 헌신적인 서비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철도의 등장은 일상생활과 지도와 언어생활에까지 영향을 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으며, 지역과 역사를 지우고 백성을 시민으로 트레이닝시킨 강압적인 훈육관 곧 근대의 트레이너였다. 그래도 수인선만큼은 다른 철도에 비해 덜 위압적인 서민들의 친근한 벗이었다.
수인선의 열여섯 번째 정거장 송도역은 1973년 7월 1일 송도~남인천간의 궤도 5.1㎞가 철거되면서 20년가량 수인선 종착역의 역할을 하였다. 장손을 대신한 계자(系子)였다고 할까. 혈통을 잇기는 이었으되, 적장자가 아닌 계승자 이른바 수인선판(版)의 체이부정(體而不正)이었던 셈이다. 체이부정은 조선 후기 정치사를 뒤흔든 노론과 남인 간의 권력투쟁 '예송논쟁'의 메타포로 우암 송시열이 인조의 뒤를 이은 효종이 적장자가 아니라는 뜻으로 사용한 정치적 수사였다.
송도역이 들어선 송도(松島)는 섬이 아닌 엄연한 내륙이었다. 그런데도 옥련동(玉蓮洞)이나 먼우금(遠又今) 같은 아름다운 이름을 두고 송도라는 일본식 지명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일본인들의 향수병 때문이었다. 이희환의 '먼우금, 송도로의 시공간 여행'에 잘 밝혀져 있듯 송도 곧 '마츠시마'란 이름은 본디 일본의 미야키현 중부 센다이만 연안에 산재한 260여개 섬들을 총칭하는 지리명사이다. 일본인들이 일본식 지명으로 창씨개명을 할 만큼 먼우금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먼우금은 문학면에서 뱃길로는 400m 정도지만, 개골을 따라 걸으면 지척길을 10리쯤 돌게 돼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식 해학과 거리의 역설을 잘 살린 시적인 이름이었다.

송도가 유명해진 것은 역사가 들어서고 또 1939년 백제의 유적지가 있는 능허대 일대에 인공 해수욕장이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송도유원지 위쪽에 위치한 능허대는 중국을 오가던 백제 사신의 입·출국장으로 토박이들은 이곳을 송도 조갯골이라고도 했다. 이 유서 깊은 유적지는 수인선과 해수욕장이 들어서면서 옛 자취를 완전히 잃게 된다. 송도를 해수욕장으로 꾸미기 위해 무의도에서 트럭으로 30만대분의 모래를 실어 날라 인공모래사장을 조성했다 하니, 이곳이야말로 한국 최초의 근대식 인공 리조트였던 셈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옥련동·능허대·조갯골·먼우금은 사라져 버리고 이곳은 관광명소 송도로 거듭나게 된다. 근대 일본 관광지도 제작자로 유명한 화가 요시다 하츠사부로(吉田初三郞, 1884~1955)가 그린 우키요에(浮世繪) 풍의 그림 '경승의 인천'과 '명소교통도회'를 보면, 송도역과 청량산 너머 해수욕장이 조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요시다 하츠사부로는 조감도 기법으로 금강산·인천·수원 등 10여 편의 한국 관련 채색 관광지도를 그렸으며, 모두 3천여 점의 조감도를 남겼다. 비록 관광지도지만, 지도로서의 정확성은 물론이거니와 지역적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어 놀라울 따름이다.
송도역의 역사는 현재 기획사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역사 주변이 신수인선 전철 복선공사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이다. 또 공사로 등산로도 폐쇄되어 옛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이런 탓에 아무리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용을 써 봐도 영 좋은 그림과 앵글이 나오지 않는다.
서운한 마음도 달래고 좋은 이미지 한 컷이라도 건져볼 요량으로 송도역 인근의 청량산 일대와 송도유원지 쪽으로 가보기로 하고 택시를 집어탔다. 물정 모르고 열정만 넘치던 초임 강사 시절 강의가 끝나면 기분전환을 겸하여 가끔 들렀던 고즈넉한 흥륜사는 어느새 첨단 종교 타운으로 변모했고, 송도 앞바다에는 신도시가 들어서 고층빌딩들로 빼곡하며 수평선 대신 인천대교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본래 흥륜사는 인명법사로 잘 알려진 하진명 거사가 꿈속에서 고승의 계시를 받고 창건한 유서 깊은 기도도량이다. 흥륜사의 전신인 인명사를 세운 법사는 생전 많은 보시와 공덕을 베풀었으며, 특히 일제강점기에 꽃을 피우지 못하고 위안부로 한 많은 생을 살다간 조선의 젊은 넋들을 위무하기도 했다는 미담이 그저 풍문으로 전해 내려온다.
수인선 노선의 모든 구간은 지금 개발됐거나 온통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다. 문명을 이어가기 위해서 개발은 피할 수 없지만, 개발이란 말에는 우선 이맛살부터 찌푸려지고 보존에 자꾸 마음이 동하는 것을 보면 타고난 찌질이 품성은 어쩔 수 없나보다.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가로질러 개발로만 치닫는 물질문명의 폭주 앞에서 모질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냘픈 송도역이 대견하고 또 애처롭다. 이제, 송도를 둘러싼 괴로운 기억들은 기억하지 말고 오직 아름다운 추억들만 추억하기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