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연합뉴스) 리비아의 소요 사태로 희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의 장악력이 약화되면서 내전상황으로까지 치닫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정부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사상자가 수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국제사회는 민간인에 대한 폭력진압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나섰다.

   시위대가 세력을 확장해 가는 상황 속에 일부 군 장교와 정부 측 인사들의 이탈이 가시화되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22일 새벽(현지시간) 시위 사태 이후 처음으로 TV방송에 출연, 자신의 망명설을 일축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 무차별 진압으로 사상자 속출 = 이슬람권 사이트인 온이슬람넷은 21일 오후 4시30분 현재 리비아 소요사태로 인한 사망자수가 600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반전쟁범죄국제연대(ICAWC)'는 며칠째 리비아 곳곳에서 이어진 소요사태로 519명이 사망하고 3천980명이 부상했으며 실종자가 1천5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알-자지라 방송과 AP,AFP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리폴리 시내에서는 전투기가 카다피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가의 머리 위에서 저공비행을 하고 있으며 저격수가 도심 곳곳에 배치되는 등 폭력 수위가 극에 달하고 있다.

   목격자들은 이날 트리폴리에서 보안군들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해 여성을 비롯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트리폴리 시내에서는 건물과 차량에 불길이 치솟는 가운데 최소 61명이 보안군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리폴리 외곽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알-자지라 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리비아 전투기와 군용 헬리콥터가 트리폴리의 여러 지역을 차례로 폭격해 많은 사람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카다피의 아들인 사이프 알-이슬람은 TV에 출연, 이같은 주장을 부인하면서 목표물은 시외의 탄약 보급창이었다고 주장했다.

   ◇ 카다피 TV출연, 망명설 부인 = 카다피는 22일 오전 시위 사태 이후 처음으로 국영방송에 출연, 자신의 망명설을 부인했다.

   카다피는 이날 오전 2시께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방송 출연을 통해 자신은 여전히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 있다며 베네수엘라로의 망명설을 부인했다.

   그는 "나는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트리폴리에 있다"면서 망명설을 보도한 영세방송사를 언급하며 이들의 터무니없는 보도를 믿지 말라고 주장했다.

   카다피는 앞서 차남인 사이프 알-이슬람을 통해 "마지막 총탄이 떨어질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반정부 세력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재확인한 뒤 직접 방송에 출연했다.

   카다피의 방송 출연에는 자신의 건재를 과시함으로써 내부 결집을 도모하고 지지 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그의 친지중 일부가 해외로 도피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집트 현지 신문인 알-마스리 알-야움은 카다피의 사촌인 아흐메드 카다프 알-담이 21일 5명의 측근과 함께 자가용 비행기로 트리폴리를 떠나 카이로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 시위대 거점 장악..군.정부 인사 이탈 = 시위대가 트리폴리를 제외하고 제2의 도시 벵가지를 비롯해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와 미스라타, 알-자위야 등 8~9개의 도시를 장악했다는 국제인권단체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트리폴리로부터 동쪽으로 1천㎞ 떨어진 벵가지에서는 20일 반정부 시위대가 친정부 세력과의 유혈 충돌 끝에 시가지 대부분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와 상당수 정부 인사들도 카다피에 등을 돌리고 있어 카다피의 장악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알 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리비아군 장교 일부는 이날 동료 장병들에게 보내는 성명을 통해 "국민의 편에 서서 카다피를 제거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면서 "남은 장 병들은 트리폴리로 진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리비아 전투기 2대가 이날 지중해의 섬 국가 몰타에 비상착륙했으며 조종사 4명은 군부의 진압 명령에 불응한 채 몰타에 망명 신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비아의 무스타파 모하메드 아부드 알-젤레일 법무장관과 압델 에후디 아랍연맹 주재 리비아 대사도 사표를 던졌고, 지중해 섬나라 몰타에서는 리비아 대사관 직원들이 카다피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참여했다.

   유엔 주재 리비아 대사관의 이브라힘 다바시 부대사도 CNN과 인터뷰에서 카다피의 대량학살을 비난하면서 그의 조속한 사임을 촉구했다.

   ◇ 국제사회, 폭력진압 중단 촉구 = 국제사회는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폭력진압 중단을 잇따라 촉구하고 나섰다.

   유엔과 미국,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21일 일제히 유혈진압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 등을 발표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전투기와 헬리콥터를 동원해 보안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는 보도를 접한 뒤 크게 분노하면서 폭력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고 그의 대변인이 전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이날 성명에서 세계가 리비아 사태 전개를 경계 속에 주시하고 있다며 용납할 수 없는 유혈사태를 중단하라고 카다피에게 촉구했다.

   EU도 이날 외교장관회의에서 시위대에 대한 탄압을 비난하고 폭력과 민간인 희생을 개탄하면서 폭력을 즉시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도 성명을 통해 "평화로운 리비아 시위대를 향한 무분별한 폭력 사용에 충격을 받았다"며 "비무장한 민간인에 대한 폭력 중단을 리비아 당국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카다피 없는 리비아가 될 것"이라면서 카다피 정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 외국인 탈출 러시 = 리비아의 시위사태가 내전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석유업체 근로자를 비롯한 외국인들의 탈출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독일, 터키 등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가 벵가지에 이어 트리폴리까지 확산되면서 폭력 사태와 약탈이 횡행하자 자국민과 직원 철수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리비아에서 작업 중이던 최대 해외 에너지 생산업체인 이탈리아의 에니가 불요불급한 직원들과 직원 가족들을 해외로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리비아에서 영업해오던 노르웨이의 에너지 업체 스태토일도 트리폴리 소재 사무소를 폐쇄했으며 해외 근로자들이 철수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