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김선회기자]세상이 싫었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와 악밖에 없었다. 시비 거는 사람이 있으면 죽을 힘을 다해 싸우기 일쑤였고, 자신보다 더 싸움을 잘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그를 꺾기 위해 무술교본을 독파하고, 샌드백을 두드리며 몸을 단련시켰다. 그런 방황의 세월을 거치며 20대 초반 우연히 경북 청도의 동문사에서 기거하던 중 인생의 변환점을 만나게 된다. 농부들이 보릿대를 베어서 반듯하게 단으로 만든 다음 산비탈에 쌓아 놓은 것을 발견한 것이다. 농부들은 그것을 볏짚하고 섞어서 외양간에 깔아두기도 하고, 모자나 반짇고리, 베개문양 등을 만드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바로 '맥간(麥稈)공예'의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맥간공예의 창시자 이상수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에 위치한 맥간공예연구원에서 맥간공예의 창시자 이상수(53)씨를 만났다. 몇몇 회원들이 함께 모여 열심히 맥간공예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맥간(麥稈)'이란 보릿짚 줄기를 말하며 사람들은 흔히 '보릿대'라고도 부른다.

맥간공예 작품 만드는 것을 살펴보면 우선 작품의 바탕이 되는 밑그림을 그린 후 둥그렇고 길쭉한 보릿대를 평평하게 펴서, 도안 위에 모자이크 방식으로 붙인 뒤 목칠공예로 마무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맥간공예를 세상에 내놓은지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씨에게는 성이 차지 않는다.


"맥간 작품을 보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작업 공정상 비슷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공예입니다. 맥간공예 작품에서 뿜어내는 황금 빛은 보는 각도에 따라 광채와 분위기가 달라 입체감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그것이 맥간의 최대 장점이지요."

사실 그가 보릿대를 이용해서 작품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지도 모른다.

예술에 소질은 있었지만 대학 진학은 엄두도 못냈고, 변변한 스케치북이나 물감 살 돈도 없었기에 자연물을 이용한 작품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골노인들이 사용하던 담뱃갑에서 금·은박지를 분리해 그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나뭇잎이나 나무줄기, 심지어 계곡물에 다듬어진 매끈한 돌에 그림을 그릴 수 없을까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다 마지막에 발견한 것이 바로 보릿대였던 것이다.

"우선은 생계를 위해 직장생활 닥치는 대로 했어요. 작품연구도 해야 하기에 낮에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은 엄두도 못냈죠. 주로 공장일이나 일용직으로 일했는데, 낮에는 맥간을 연구하고 밤에 주로 일했던 겁니다. 한 6개월쯤 돈이 모이면 그 돈 가지고 다시 집중적인 연구를 하고, 다시 돈이 떨어지면 다른 곳에 취직해 일하는 식이었죠."

# 첫 전시회를 열며 수원에 맥간의 뿌리를 내리다

이씨는 맥간 공예 기법연구에만 3년 넘는 시간을 투자했고 1983년 첫 실용신안을 따냈다. 이어 보릿대 잇기, 장식판 제조용 무늬지를 만드는 도안 등 맥간공예 기술에 관한 실용신안 특허 5개를 보유하게 됐다. 그리고 1986년 수원 남문에 있던 '선화랑'이라는 곳에서 역사적인 첫 전시회를 연다. 일반인들에게 맥간공예의 실체를 알리게 된 것이다.

"전시회를 준비하기까지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하루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작업을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반응이 참 좋더라구요. 우연히 삼성전자 관계자의 눈에 띄어 회사로 와서 강의를 좀 해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어요. 처음엔 거절했는데, 계속 부탁이 들어와 1989년 삼성전자에서 동호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맥간공예를 전수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맥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죠."


이제 제법 그의 문하생들이 늘어났지만 그의 고민은 여전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얄팍한 테크닉을 배워서 다른 곳에 응용하는 걸 목적으로 접근하거나, 여자회원들의 경우 결혼후 아예 손을 떼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제가 목숨걸고 맥간 공예 작업을 하는 반면 많은 이들이 순수 취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취미로 삼는 것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저의 모든 작품 노하우를 물려줄 수 있는 후배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이씨는 이제 국내를 넘어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아이템도 맥간 뿐 아니라 금박을 이용한 '금박공예' 작품을 내 놓는 등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 "주위에 친한 사람들이 너는 일본에 가면 국보급 대우를 받을 수 있는데, 뭐하러 지하 골방에서 이렇게 썩고 있느냐고 해요. 하지만 저는 끝까지 작가 정신을 지키면서 순수 작품활동을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의 공예제작 수준이 결코 일본에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앞으로 일본에 맥간과 금박제품을 수출해 한국의 공예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꼭 증명해보이겠습니다."

■ 그동안 '50인 휴먼다큐'를 애독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