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글┃남양주/이종우·이윤희기자]조선시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학정신이 깃들어 있는 도시 남양주. 이곳을 대표하는 다산길은 남양주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보여주는 길이다.
전체 13개 코스, 총길이 169.3㎞로 조성돼 지난해 가을부터 본격 운영된 이 길은 현재 8개 코스가 완성됐으며 나머지 5개 코스는 올 6월까지 조성될 예정이다. 코스는 보통 10~20㎞내외로 걸어서 짧게는 2~3시간, 길게는 8시간 넘게 걸리는 코스도 있다.
그중에서도 한강삼패지구에서 시작해 팔당역~남양주역사박물관~능내역~운길산역에 이르는 16.7㎞ 구간의 제1코스 한강나루길은 탐방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인기 코스다. 팔당변을 끼고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제공하는데다 철길 위를 걷는 것은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일반인이 걷는다면 8시간 정도 걸린다. 참고로 한강나루길은 한강과 팔당나루터, 소내나루를 보면서 걷는다고 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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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길따라 펼쳐지는 한폭의 파노라마 그림
본격적으로 제1코스 탐방을 위해 한강삼패지구 시민공원에 들어섰다. 제1코스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부터 16.7㎞에 이르는 구간이 한강나루길이라는 표식 옆으로 한무리의 자전거부대가 지나간다. 길을 함께 한 동행자들은 3월의 날씨만 믿고 얇은 옷을 차려입었다 강바람에 옷깃을 여미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나 자전거에 몸을 실은 이들의 차림은 가볍기만 하다.
코스를 걷다보니 걷는 사람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가는 사이클족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서울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한 시민은 "이 길은 길게는 고양 행주대교에서 팔당대교까지 이어지는데 그중 팔당을 따라 가는 이길이 사이클족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다"며 "걷는 것도 좋지만 강바람 맞으며 타는 자전거는 또다른 매력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데군데 길이 끊겨있는 만큼 안전장비 착용에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자전거를 타고 강바람을 가르는 이들을 보자 당최 길의 끝은 보이지 않고 바람만 더욱 거세게 느껴졌다. 결국 한강삼패지구에서 팔당역까지의 도보를 포기하고 자동차를 이용해 팔당역까지 이동한후 다시 탐방을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167번 일반버스가 경동시장~운길산역 구간을 운행하므로 이를 이용하면 된다. 긴 시간이 여의치않다면 전철을 이용해 팔당역에 하차, 이곳부터 길을 시작하는 것도 권한다.
팔당역에 도착하니 평일임에도 다산길을 걸으려는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큰 경사도 없고 길이 평탄해서인지 중년 여성들이 특히 많았다. 다시 길을 걸으려니 팔당역 바로 옆에 위치한 남양주역사박물관(관장·한국희)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당초 향토사료관으로 있던 것을 리모델링해 지난해 새로 문을 열었다고 한다. 남양주의 역사와 생활상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각종 자료들을 모아놨는데 2층 특별전시장에서는 소통을 주제로 전시회가 열렸다. 오는 4월30일까지 열리는 전시회는 소통의 도구인 '편지'에 담긴 아련한 추억을 담아내는 각종 사료는 물론 아이들 교육에도 유익한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탁본 유물을 소개하는 금석문실에서는 남양주의 왕릉, 사대부 묘역, 사찰의 대종, 심산유곡의 바위에 새겨진 글과 문양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 문화강좌와 특별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주말 가족과 함께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까지이고 입장료는 무료다.
팔당역에서 시작해 얼마나 걸었을까. 철길이 눈에 들어왔다. 특별하게 시설을 해놓은 것도 아닌데 아름다운 팔당과 어우러져 그대로 그림이 펼쳐졌다. 이 철길은 중앙선이 복선전철화되면서 기존의 한강을 지나는 폐철도구간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조성됐다. 강변을 따라 시원하게 뚫린 폐철도 구간을 걷다보면 북한강과 팔당댐, 팔당대교, 하남 검단산의 이름 모를 아름다운 철새 등을 볼수 있다. 철길옆 팔당호변에는 벤치와 전망대와 원두막 등 아기자기한 쉼터가 있다.
철길 위를 걷는 게 정취는 있지만 2㎞정도 걸으니 힘이 들었다. 운동화를 신었음에도 철길의 자갈이 발에 부담을 주는 듯했다. 관절이 약한 분이라면 등산화 착용을 권하고 싶다. 다소 지루해지려던 찰나 금방이라도 기차가 달려나올듯한 터널이 등장했다. 봉안터널. 한여름에 들어왔으면 얼마나 시원할까 싶은 청량감이 밀려왔다.
남양주시에서 탐방객들이 걷는데 지장이 없도록 설치했다는 은은한 조명은 운치를 더했다. 터널을 나와 능내역 쪽으로 계속 길을 걷자니 한폭의 동양화같은 풍경이 양쪽에서 펼쳐진다. 철길 우측의 팔당호에선 강위에 빼꼼히 솟은 바위가 얕은 안개와 함께 장관을 이뤘고, 좌측 저수지에선 한 강태공이 좁다란 배위에서 연방 그물을 올리며 붕어 등을 낚아 올렸다. 탐방객들은 이 광경을 놓칠세라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다소 한산했던 길이지만 이곳이 주말이면 연인과 가족 단위 나들이객으로 북적거린다고 한다. 철길만 걷기 위해 오는 이들도 꽤 된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철길의 정취를 느낄수 있는 것은 오는 4월초까지다. 서울 한강변에서 옛 중앙선 철길을 따라 남양주와 양평까지 이어지는 자전거길 조성 공사가 본격화되는 다음달부터는 당분간 이용이 어렵다. 행정안전부는 도와 남양주시, 양평군과 함께 중앙선 복선화에 따른 폐선로 부지에 오는 9월까지 자전거길과 산책로를 만든다고 밝혔다. 남양주와 양평 구간의 자전거길 26.8㎞가 조성되면 한강 하류의 행주대교부터 팔당대교까지 이어지는 기존 자전거길과 연결돼 총 90㎞길이의 자전거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자전거길에는 폭 3m 왕복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들어서며 안전 펜스와 가로등, 표지판 등도 설치된다. 행안부는 팔당역~양평 구간의 폐철로를 팔당역~능내역 구간만 남기고 이미 모두 철거한 상황이다.
이 길을 많이 걸어본 탐방객들은 "코스 완주가 큰 의미를 갖는 길이 아닌 만큼 요소요소 볼거리를 챙겨 여러 코스를 아우르며 다니는 것도 좋다"고 팁을 전한다. 철길과 어우러진 팔당변을 걷고 나니 어느새 코스도 끝이 났다. 코스를 시작하면서 움츠렸던 목과 어깨가 펴지며 상쾌한 공기에 가슴이 활짝 펴지는 듯하다.
※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