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정진오기자]병자호란은 조선 전쟁 역사상 가장 뼈아픈 패배로 꼽힌다. 강화도가 열쇠였다. 강화를 점령당한 조선은 병자호란 발발 2개월 만에 국왕이 농성 중이던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 태종 앞에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이마를 땅에 갖다대는 삼궤구고의 치욕을 당했다. 이 2개월 사이에 온나라는 '오랑캐'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16~17세기의 조선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잇따라 터지면서 국가 시스템이 엉망이 됐다. 7년의 임진왜란은 우여곡절 끝에 조선의 승리로 귀결됐지만, 정묘·병자호란은 각각 3개월, 2개월밖에 안 되는 단시간 내에 마무리 됐다. 기간은 짧았지만 그 피해는 오히려 더 컸다. 이 뒤로 조선은 줄곧 청나라에 '종속'돼 있었다. 여몽전쟁 100여 년 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섰다면, 정묘·병자호란 200여 년 뒤엔 조선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경인일보의 연중기획 시리즈 '세계의 戰場 인천, 평화를 말하다!'가 여몽전쟁을 마무리하고, 이제 정묘·병자호란을 다루게 됐다.

양대 호란(胡亂)의 원인과 당시 국제정세, 두 차례의 호란에서 강화도가 핵심지역이 된 이유, 치열했던 전투와 그 피해, 전쟁 속 인물, 전쟁 뒤의 상황, 그리고 이를 보는 세계의 시각 등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정묘·병자호란과 관련한 내용을 매주 1회씩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