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글┃시흥/최원류기자]늠내길은 제주 올레길과 더불어 걷기문화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명소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서해바다와 내만갯골을 품고 있는 시흥시 늠내길이 붐비고 있다.
늠내길은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었던 염부 등 이곳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그 속에서 피어난 문화가 공존하면서 새로운 걷기 문화의 명소가 됐다. '뻗어나가는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늠내길은 숲속을 걸으며 다양한 식물과 문화를 만나는 '숲길', 육지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오는 내만갯골을 끼고 펼쳐진 소금밭과 갈대밭을 따라서 소래포구로 가던 방죽길인 '갯골길', 소래산을 넘으며 역사의 숨결과 조우하는 '옛길', 도심을 가로질러 바다로 내달리는 바람의 끝에서 아름다운 낙조를 만나는 '바람길' 등 4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 숲길(13㎞, 5~6시간 소요)
높지 않지만 숲과 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산봉우리들을 넘나들며 이어지는 숲길은 삼림욕과 사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식물의 다양함과 자연부락을 조망하며 걷는 길이 이어지고 문화유적과 함께 고장의 숨은 역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먼저 숲길에 들어서면 옥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삼신우물에서 목욕을 했다는 전설을 지닌 '옥녀봉'을 만나게 된다. 고깔제비, 각시붓꽃, 애기똥풀, 칡덩굴, 황매화, 무릇 등 다양한 야생화를 볼 수 있고 은근하게 뿜어져 나오는 솔향이 머리를 맑게 해준다. 아무리 높은 벼슬아치도 말굽이 붙어 반드시 걸어야 했다는 '작고개'를 지나 생김새가 마치 연꽃처럼 생겨 군자의 모습같다는 군자봉 자락 '사색의 숲'에 다다른다. 매년 서낭제가 열리는 등 영험함으로 이름난 곳이어서 그런지 잠시 쉬면서 지난 1주일을 정리하는데 제격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숲길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싶었다. 하지만 '진덕사' 쪽으로 들어서면서 숲길이라고 이름지어진 이유를 알게 됐다. 아름드리 수목들로 빽빽한 울창한 숲이 광릉숲길을 연상케 할 정도다. 울창한 숲에서 나오면 자연부락인 '가래울 마을'이 펼쳐진다. 100년이 넘어보이는 향나무 아래 우물에서 목을 축이고 인근 과수원과 미나리 단지의 직거래장터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짓푸른 잣나무 숲을 지나 다다른 선사유적공원에서는 선사시대의 생활과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 갯골길(16㎞, 4~5시간 소요)
갯골길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내만을 끼고 양옆으로 드넓게 펼쳐진 옛 염전의 풍광을 누리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한 화보집은 갯골길을 '물에 빠지면 찐득한 속살을 드러내는 구불구불한 내만 갯골로, 숨죽여 기다려야 얼굴 비추는 붉은발 농게가 있는 갯골생태공원으로, 이른 아침 얇은 꽃잎 사이로 향기를 퍼뜨리는 연꽃이 가득한 관곡지로 사람들을 향하게 한다'고 표현했다. 또 '인위적으로 길을 내지 않고 뚝배기 자박자박 끓듯 뭉긋한 시간과 사람들 저마다의 드라마와 같은 인생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길'이라고도 했다.
시청 주차장을 출발해 쌀연구회 방향으로 40분 가량 걸으면 멸종 2급, 보호 1종인 맹꽁이와 금개구리가 서식하는 갯골생태공원이 펼쳐진다. 소금밭과 갈대밭 등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평평한 방죽길이 이어져 있다. 화보집의 글귀가 전혀 과장되지 않았음을 실감케 한다.
옛 염전 모습도 그대로다. 해수를 담아 두던 염수지와 넓은 벌판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타일바닥 등 염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함초와 염생식물들이 지천으로 깔려있어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만평에 달하는 갈대밭은 장관을 연출한다. 방산대교를 건너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솟대를 따라 갈대와 억새가 펼쳐진 길로 들어서면 승용차들의 굉음은 기억에도 없다. 갯골길에서는 사계절 모두 오감을 즐길 수 있다. 가을엔 칠면초·나문재·퉁퉁마디 등 염생 식물이 붉은 빛으로, 겨울에는 모새달·억새·수변을 가득 채운 갈대가 장관을 연출한다. 매년 8월이면 시흥의 대표축제인 갯벌축제가 열린다.
# 옛길(11㎞, 4시간 소요)
여우고개와 하우고개를 넘어야 하는 제법 힘든 코스다. 하지만 천년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소래산(소래산 마애보살입상), 조선시대 명재상 하연 선생을 만날 수 있는 소산서원 등 조상의 옛 자취를 느낄 수 있는 만큼 볼거리가 다양한 길이다. 상대야동 버스정류장을 출발, 40여분 지나면 시흥에서 부천 소새우 시장과 부평 황어장을 가기위해 넘어다니던 여우고개를 만나게 된다. 또 30여분 더 가면 상대야리 주민들이 소금, 김치, 나무를 부천이나 서울로 팔러 넘던 하우고개도 만난다. 산도둑을 피해 잰걸음을 걷던 옛 장사꾼처럼 '하우, 하우' 거친 숨을 몰아쉬며 1시간 가량 넘으면 시흥 9경중 하나인 소래산에 다다른다.
서해바다와 남산, 북한산, 관악산을 바라보면서 잠시 쉬었다가 유림들이 전통방식의 제례의식을 거행하는 '소산서원'과 소래산 동쪽 중턱 병풍바위에 선각된 국내 최대 규모(전체 높이 약 14m)에 속하는 '마애상'(보물 제1324호)을 지나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 바람길(15㎞, 5시간 소요)
옥구공원을 출발해 덕섬, 오이도 빨강등대, 오이도 기념공원, 정왕동 중앙완충녹지, 정왕호수공원을 지나 다시 옥구공원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섬과 바다를 만나고 공단과 도심을 가로지르며 바람따라 발길따라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길이기도 하다. 정원박람회가 열렸던 옥구공원 산책로를 따라가면 옛 생활도구를 볼 수 있는 조그마한 전시관을 만나고 조금 더 가면 인천앞바다, 시화방조제, 대부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낙조대에 닿는다.
섬 아닌 섬이 된 오이도로 향하는 길에서 멀리 덕도가 보인다. 오이도 해안로에 들어서자 동화속에서나 나올 듯한 빨강등대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빨강등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고, 나선형 계단을 따라 등대의 전망대에 올라 갯벌내음과 함께 드넓은 서해바다를 만끽하는 것도 제격이다. 오이도에 조성된 다양한 먹을거리촌과 함께 대형 물막이 공사로 담수호를 조성한 시화방조제를 걷는 것도 풍광이 제법이다. 바람길의 하이라이트인 셈이다. 2시간 30분 가량 지나 시화공단의 대기오염물질 저감역할을 하는 인공녹지축에 들어서게된다. 국내 최대 규모로 마치 산중 숲길을 걷는 느낌이다. 녹지 양측에는 휴게, 운동, 놀이시설 등이 조성돼 있다. 주변 문화공간과 연결된 도심속 숲길도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