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김혜민기자]가난으로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기도내 기초생활수급 아동·청소년은 41만명. 웬만한 지자체의 주민 수와 맞먹는 규모다. 이 중 태어나면서부터 가난을 짊어진 영유아도 3만여명에 달한다. 대부분 다문화가정이거나 한부모, 조손, 장애가정인 이 아이들은 사회의 차별과 무관심으로 눈물짓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이들 결손가정 아동들의 현재 모습과 도움의 손길이 닿은 후 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어린이재단과 함께 올 연말까지 7개월여에 걸쳐 장기 추적 보도한다. ┃편집자 주
오늘(5월 4일)은 학교 운동회가 있는 날이다. 안산 공장에서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가 동생과 날 흔들어 깨우지만 정말 일어나기 싫다. 친구들은 엄마, 아빠랑 맛있는 김밥도 먹고, 달리기할 땐 엄마들이 큰소리로 응원도 할 텐데 난 동생과 운동장 한 구석에 심심하게 앉아 있을 게 뻔하다. 엄마의 잔소리에 이불 속에서 뭉그적대다 할 수 없이 일어나 세수를 했다. 양말을 신으면서 "오늘 운동회에 올 수 있냐"고 슬쩍 물어봤다. 엄마는 여느 때처럼 미안한 표정뿐이다. ┃관련기사 3면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고, 내 동생 상호(가명)가 4학년이 될 때까지 한번도 학교에 온 적이 없다. 매일 저녁 공장에 가서 다음날 아침에 축 처진 어깨로 집에 들어와 바로 잠만 잔다. 그리곤 나와 동생이 학교를 다녀올 시간에 다시 공장을 나간다. 친구들이 아무리 엄마를 '필리핀 사람'이라고 놀리고, 내 얼굴이 까맣다고 놀려도 엄마가 한번만이라도 학교에 왔으면 좋겠다. 그땐 내 친구들 모두에게 우리 엄마를 자랑할 거다. 우리 엄만 한국말도 잘하고, 우리 얘기라면 모두 다 들어준다.
그래도 동생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친구들은 태권도 학원 가랴, 수학학원 가랴 바쁘다면서 학교 끝나도 못 놀지만 동생은 항상 나와 함께다. 학교도 같이 다니고, 엄마가 없는 빈집에서도 동생만 있으면 무섭지 않다. 그래도 매일 저녁 동생과 집에서 TV만 보고 있으면 문득 학원이라는 데가 궁금해질 때도 있다. 친구들이 신나게 학원 얘기를 할 땐 난 한마디도 할 수가 없다.
체육복을 입고 있는데 아빠한테 문자가 왔다. '상민(가명)아 우리 이번 주말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답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아빠가 싫다. 6살 때쯤인가 돈 내놓으라고 엄마를 때린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그때 처음으로 경찰서라는 데도 가봤다. 엄마 말로는 아빠가 카드(도박)를 하면서 번 돈을 다 뺏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빠를 피해 엄마 친구네로 도망갔고, 그 이후론 엄마와 아빠는 다시 같이 살지 않는다. 친구들이 가끔 나한테 아빠 자랑을 하면 때려주고 싶지만 그래도 아빠가 없는 지금이 훨씬 낫다.
아빠 대신 삼촌이라는 사람이 가끔 우리를 보러 오기도 한다. 어린이집 다니면서 주말에만 만나는 5살 막내 동생 상수(가명)의 아빠라고 한다. 엄마랑 같은 나라 사람이지만 삼촌도 직업 없이 놀면서 엄마와 자주 싸운다. 언제쯤 엄마가 싸우지 않는 걸 볼 수 있을까?
엄마가 동생이랑 점심 사먹으라고 준 3천원을 들고 집을 나섰다. 오늘만 지나면 내일은 학교도 안 가는 어린이날인데, 그 동안 가고 싶던 놀이동산에 갈 수 있을까? 내일은 엄마가 하루쯤 일을 쉬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