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일보=군포/윤덕흥·이윤희기자]'수릿길'은 군포시를 품어 안고 있는 수리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한자로 '修理', '마음을 닦아 이치를 깨닫다'란 뜻을 갖고 있다.
이런 뜻을 담고 있어서일까. 실제 수릿길을 걸으면 자연이 내쉬는 푸른 숨을 마시며 몸과 마음이 쉼을 얻는 듯하다.
군포는 겉보기엔 고층아파트가 늘어선 신도시지만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수릿길을 비롯 은은한 흙냄새를 맡으며 자연을 느낄수 있는 곳이 오밀조밀하게 분포돼 있다.
이중 바람고개길(수리산의 품에서 굽이굽이 흘러나온 수릿길중 하나)은 원시의 숲에 부는 바람을 느낄 수 있어 인상 깊다.
이 길에 서면 세상을 돌며 찢기고 구겨진 헌 마음이 마치 새롭게 펴지는 듯한 느낌이다.
#숲에서 깨달음을 얻다!
바람고개길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수릿길중 가장 깊은 숲의 정취를 갖고 있다고 말할수 있다. 전체 5.6㎞ 정도로 천천히 걸으면 2시간 남짓 걸린다.
이 길의 시작은 통상 군포시 속달동 4통 납덕골에서 시작한다. 납덕골은 요즘 벽화마을로 더 유명한 곳으로,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시골마을이 벽화를 보기위해 전국 방방곳곳에서 몰려듯 방문객들로 제법 분주하다.

납덕골에 가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군포 대야미역에서 내려 1-2 마을버스를 타고 20여분쯤 오면 된다. 걷기를 좋아한다면 대야미역에서부터 시작해 갈치호수와 당숲이 있는 속달동 덕고개 마을을 지나 1㎞ 가량 오면 납덕골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동차가 있다면 납덕골 마을 입구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주차장에 주차한뒤 일정을 시작해도 좋다.
납덕골에 벽화가 그려진 것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0여년전 스케치를 위해 우연히 이곳에 들렀다 그 풍경에 반해 조그마한 작업실을 차린 서양화가 김형태씨가 일(?)을 냈다. 시골마을을 아름답게 꾸며보자며 지인들과 의기투합한 김씨가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어렵사리 벽화그리기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가 2008년. 한때 물감값이 없어 고전하기도 했지만 주민들과 작은 음악회를 열어 수익금을 마련하는 등의 노력으로 마을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낡은 담장의 벽화를 보며 사람들은 동화속 한페이지의 그림을 보는 듯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다고 한다.
등산 겸 벽화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고교동창생인 50대 여성들은 "지방 멀리 내려가지 않고도 아기자기한 벽화를 볼수 있어 즐겁고, 동심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납덕골의 명물중 '수리산 갤러리'도 빼놓을수 없다. 방앗간이 개조된 이곳은 김형태 화가의 작업실 겸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김씨는 등산객들을 위해 이곳을 개방, 문화적 감성까지 채워주고 있다.

담벼락의 그림따라 골목골목을 걷다보면 어느새 수리사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좁고 운치있는 길을 5분 남짓 걷다보면 왼쪽으로 난 샛길에서 임도로 들어서게 된다. 임도는 숨차지 않을 정도의 완만한 경사가 펼쳐진다. 천천히 길을 걷다보면 쭉쭉 벋은 나무들 사이로 삼림욕을 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숲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촉촉한 습기와 울창한 산림 등 머리위 풍경은 마치 태고의 원시림 속을 걷는 듯하다. 그렇다고해서 길이 험난한 것은 아니다. 잘 다듬어진 완만한 산책로가 걷기에 최적의 편안함을 제공한다. 어떤 이들은 이곳의 땅이 폭신한 느낌을 줘 발에 무리가 적다고 한다.
길 초입에서 만난 작은 약수터는 가물 때든 장마철이든 늘 일정한 양이 흘러나온다고 하니 왠지 신비감이 감돈다.
걸을수록 점점 숲과 계곡이 깊어진다. 잠시 고개들어 나무숲 사이를 바라보니 동그란 건물이 보인다. 천문대 아닌가 했더니 수리산 꼭대기에 자리한 공군 레이더기지란다. 둥근 지붕이 인상적이다. 마치 007영화에서 봤던 난공불락의 요새같다.
2천를 알리는 지점이 나타나고 작은 공터에 팔각정이 보인다. 오른쪽 산등성이를 따라 가파른 나무계단과 전망대도 있다.
3천 이후부터는 점점 내리막길이다. 멀리 반월호수가 시원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에덴기도원 뒷길로 내려오며 임도가 끝나고 덕고개 당숲과 반월호수를 잇는 속달동 마을길과 만나게 된다.
다시 납덕골 벽화마을까지 가려면 20여분 마을길을 따라 걸어야한다. 2시간 정도 걸려 다시 출발지에 도착했다. 가벼운 산책이라기엔 다소 부담이 있지만 걷기를 처음 시작하는 이라면 부담없이 코스로 선택해도 좋을 듯하다.

시인 최남희씨는 이 길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살짝 흐린 날 오전 시간을 권한다. "(오전 시간은) 파릇한 연무와 더불어 신비한 숲속 느낌이 더욱 강렬하다. 조금 시간이 걸려도 천천히 오감으로 자연을 받아들이며 걸어보자. 오랫동안 잠겨있던 비밀의 화원을 살짝 엿보고 나온 듯 시선을 감싸는 숲의 여운이 오랫동안 마음자리에 머물게 됨을 알수 있다"고 전한다.
바람고개길을 걷고나니 큰 깨달음까진 아니지만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울창한 숲을 찾아 마음을 정화하겠다며 삼림욕하는 이유를 알 것같다. 게다가 이곳은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지 않은가.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인적이 드물고, 고즈넉하게 울창한 숲을 느낄수 있는 곳이 있다는게 고맙기까지 하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나만의 비밀 장소로 간직하고 싶은 곳이다.
※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