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정리=이준배차장·사진=김종택차장]
보통 성직자라고 하면 으레 범접하기 힘들다는 선입견을 갖게 마련이다. 엄숙하고 근엄한 모습부터 떠오른다. 천주교 수원교구 이성효(54) 리노 보좌주교를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범인과는 다른 저 높은 곳에 사시는 분은 아닐까. 사실 이번 인터뷰 일정을 잡는 것도 쉽진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지난 2월 로마교황청으로부터 이성효 리노 보좌주교 선임이 결정되고 서품식을 거행하기 전까지 바로 40일간 대침묵 피정(避靜·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묵상)에 들어간 그는 연락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3월25일 정식 서품식 이후에도 빡빡한 일정으로 인터뷰는 한 달여를 더 기다려야했다. 그래서 더더욱 속세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해진 듯하다. 그러나 그를 직접 대면하는 순간 머릿속을 떠돌던 고정관념은 조금씩 허물어졌다. 그의 첫 말 한마디부터가 파격이었다. 취미가 '외국 신부들 개고기 먹이기'라고 밝히며 개고기 전도사를 자칭하는 그의 소탈한 말솜씨와 아이같이 해맑은 미소에 고정관념은 이내 조금씩 무장해제되기 시작했다.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 격의없는 농담을 여러 차례 던졌다. 그의 유머러스한 모습에 순간순간 웃음꽃이 터져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 첫 소감은.
"처음 소식들었을 때 어안이 벙벙해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어려운 직무라 답을 얻으려고 40일간 대침묵 피정을 하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렸죠. 사실 이번 인터뷰도 혹시 제 사생활이 다 노출되는 것 아닌가 해 처음엔 안하고 싶었어요(웃음). 그렇지만 궁금하신게 있다면 가차없이 물어주세요."
- 학창시절은.
"인기가 좋진 않았어요. 그랬으면 제가 어떻게 여기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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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음식은.
"사제가 되면서 좋아하는 음식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어요. 어떤 신부님이 도시 본당에 처음 가셨다가 된장찌개를 좋아한다고 얘기했더니 방문하는 곳마다 매일 된장찌개를 줘서 나중에는 질려버렸대요. 결국 '저 고기 먹을 줄 알아요'라고 하셨대요.
- 싫어하는 음식은.
"제가 못먹는 게 3가지가 있어요. 첫째 없어서 못먹고, 둘째 안줘서 못먹고, 셋째 배불러서 못먹죠.(웃음)"
- 그럼 보양식은.
"개고기를 잘 먹습니다. 제 취미가 외국인 신부들 개고기 먹이기죠. 특히 프랑스 신부들요. 불어에 신앙(foi)이라는 단어가 간이란 뜻의 푸아(fois)와 발음이 비슷해요. 음식 잘 먹느냐 물어보면 내 신앙이 가톨릭 아니냐? 푸아(간) 옆에 있는 위도 마찬가지로 가톨릭이어야지라고 조크를 던지죠. 하하 좀 썰렁하네요. 프랑스에선 통했는데(웃음)."
- 특별한 계기라도.
"1987년 독일 유학 당시, 독일방송국에서 올림픽 개최국 소개 프로그램에 개고기 먹는 걸 방송에 내보냈어요. 당시 함께 유학갔던 김찬수 오산본당 신부님 경험에 따르면 백화점에서 어떤 독일 아줌마가 '당신 어디서 왔냐'고 물어 '한국에서 왔다' 그랬대요. 대뜸 '개고기 왜 먹냐'고 따지더래요. 신학생이 개는 왜 못먹느냐 되묻자 개는 영리하지 않느냐 그러더래요. 그래서 유태인이 영리하지 않아 학살당했느냐 하니 아무말도 못하더래요. 그래서 사실 개고기도 음식문화일뿐이다. 문화는 열등하고 우등한게 없이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대요. 그 이후 개고기 먹는 것에 대해 당당하게 얘기해요. 특히 반대가 심한 프랑스신부들에게는 꼭 권하죠. 사제라 다른 나라 문화를 알려고 열린 마음을 가져 다들 잘 먹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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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가 된 계기는.
"사실 고교 3학년때 사제의 길로 가야겠다는 매력을 느끼기 시작해 졸업하면 신학교에 들어가려고 했어요. 그때 아버님이 신자가 아니셔서 반대해 못들어갔죠. 그래서 아주대 공대 졸업한 뒤 대학원까지 공부를 했죠. 그러다 1984년도 교황님이 방문하셨을 때 새벽 2시에 여의도 미사에 참례했어요. 그날 오후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너무 잔가지를 많이 치고 있구나. 이제 잔가지를 좀 쳐내야겠다'라고 결심하고 신학교 들어갔죠."
- 유학생활은.
"독일 유학시절 식사가 어려웠어요. 한겨울에 큰 축제를 한다고 찬맥주와 차가운 빵, 소시지 주면 먹기 힘들었죠. 그러면 저는 올라가서 라면 끓여먹었어요. 거기서 김치도 직접 담가먹고 그랬어요. 김치 담그는 것은 이제 아주 수준급입니다.
- 유학비용은.
"가톨릭은 그게 장점이에요. 독일교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서 충당했어요. 신부가 되고 난 뒤 파리로 갔을 때는 신부라 수원교구에서 생활비까지 다 대줬죠. 가톨릭 같은 경우는 그런 부분이 수월해요."
- 수원교구로 오게 된건.
"신학교 갈때부터 고정돼 있어요. 다른 데로 못가요. 근본뿌리가 박혀 있죠. 태어난 곳은 진주지만 아버님이 법무부 공무원이시라 대구 거쳐 초등학교 1학년때 수원 지동초로 전학와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다니며 쭈욱 살았어요. 아주 어릴적부터 지내서 수원은 익숙한 저의 고향이죠."
- 금욕생활은.
"신학생때는 7년 동안 단련기간이어서 잠을 많이 못자지만 사제가 되면 자유롭죠. 사제 중에도 교구사제와 수도자 사제가 있어요. 수도자들은 엄격하게 살아야 하지만 교구사제들은 세상사람들과 만나고 그래야 되니 자기가 알아서 대체로 잘 자요. 물론 금욕생활이 갑갑한 것만은 아녜요. 일례로 독일에 신부·수녀님 휴양소가 있어요. 거기 수녀님 중 두 분은 봉쇄수녀원에 계셨어요. 원래 밖에 못나오는데 특별히 휴양나오신거죠. 마침 본명축일 파티를 준비하는데 사회진출 수녀님들은 당황하고 쭈뼛쭈뼛하는데 봉쇄수녀원 수녀님들은 춤을 춰야지 하며 굉장히 자유롭고 막힘이 없었어요.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죠. 오직 하느님만 찾는 영혼이 더 자유롭고 맑아요."
- 사제 후 달라진 점.
"첫째 여자한테 접근 못한다는 점.(웃음) 대학때는 가톨릭학생회 활동하며 수원교구 대학생연합회 회장을 했었죠. 당시 주변에 여학생들이 많아 축제때 파트너 걱정은 안했어요. 그렇지만 그때도 여자보단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더 컸었던 것 같아요. 나의 정원에는 두 그루 나무가 있다. 결혼 혹은 사제가 되는 쪽.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면 결혼을 못하게 돼있더라구요. 여자를 만나서 그런 얘기를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요(웃음)."
- 뒤늦게 쉽진 않으셨을텐데.
"처음 2년 동안 신학 공부하는게 정말 힘들었죠. 그전 10년 동안 공부한 공학은 돈과 경제성을 중요시했었어요. 완전히 공돌이였죠.(웃음) 신학교에서 형이상학 수업을 받는데 신존재 증명에 대한 답을 썼는데 공학적인 사고가 박혀선지 제가 쓴게 다 거짓말인 거예요. 내가 여기 왜 왔나 회의가 들었죠. 그때 3번 정도 짐싸서 나오려고도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당시 견디기 힘들었을 때 6시 기상인데 규칙을 어기고 5시에 일어났어요. 한 시간 동안 미적분 문제 하나를 다 풀고 나면 머리가 편해졌어요. 다행히 안 들키고 잘 넘어가서 사제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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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바른 신앙은.
"광신은 경계해야 하죠. 이성과 신앙의 두 날개가 골고루 펼쳐져야 돼요. 한쪽만 강하면 제대로 날지 못하고 제자리만 빙글빙글 돌게 돼요. 저도 동료 사제들한테 야단을 칠때가 있어요.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게을리할때죠. 그게 없어지면 권위만 남아요. 남을 이해하지 않고 맹신적으로 되면 안타깝죠."
- 타종교에 대해선.
"타종교 다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가톨릭교회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5년) 이후 교회일치운동으로 타종교와의 대화창구가 열렸어요. 불교, 이슬람은 악마의 종교가 아니라 거기에 있는 사람을 먼저 봅니다. 어떤 신학자가 신학은 궁극적으로 인간학이라고 표현했어요. 옳다고 생각해요. 하느님에 대해서 깊이 연구할수록 이 사람이 타종교라고 해서 무시하면 하느님을 무시하게 되는 거예요. 종교간의 대화는 협상이 아니에요. 그 사람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요. 그 종교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진리를 인정해주고 우리의 진리를 당당하게 보여주는 거죠. 우위를 가르는 게 아니에요. 종교도 문화예요. 타종교와의 대화로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면 하느님의 은총이죠."
- 마지막 한 말씀.
"가치관적으로 보면 물질만능이 너무 우리를 사로잡고 있어요. 그래서 물질이 결핍되면 사람이 쉽게 생명을 포기하거나 사람을 경시하게 된대요. 사실 물질은 아무것도 아닌데. 사람 자체의 가치를 좀 더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신학적으로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이에요.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그 안에는 찌그러진 하느님의 모상이 있죠. 생명과 사람을 중시했으면 해요."
한국 천주교회는 16개 교구에 34명의 주교(추기경 1명, 대주교 5명, 주교 28명)가 있다. 현직 주교는 23명(추기경 1명, 대주교 2명, 주교 20명)이며, 은퇴주교는 11명이다. 그중 수원교구는 1963년에 설립, 이용훈 주교가 제4대 교구장을 맡고 있고 이성효 보좌주교는 그를 보좌한다. 관할 지역은 서울과 인천을 제외한 한강 이남 경기도 지역으로 75만여 명의 신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