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주의 대표적 사찰인 신륵사 경내 소나무숲은 산사의 고요함이 느껴진다.

개치나루 <신경림>

이곳은 내 진외가가 살던 고향이다/그해 봄에 꽃가루가 날리고/
꽃바람 타고 역병이 찾아와/마을과 나루가 죽음으로 덮이던 고장이다

다시 전쟁이 일어/내 외로운 친구 숨죽여 떠돌다가/저 느티나무 아래/몰매로 묻힌 고장이다

바람아 다 잊었구나/늙은 나무에 굵은 살구꽃이 달려도/
봄이 와서 내 친구 꽃에 붙어 울어도/바람아 너는 잊었구나 그 이름/그 한 그 설움을

<이하 생략>

[경인일보=글┃여주/박승용·이윤희기자]여주의 여강을 따라 걷는 여강길만큼 소소한 얘깃거리가 끊이지 않는 곳도 없을 것이다. 바위 하나 꽃 하나 길 하나 모두에 사연과 얘깃거리가 함께 한다. 이런저런 사연을 접하다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어느새 바위와 꽃과 길과 소통하며 걷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강길 2, 3코스는 짧지 않은 코스인 만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함께 걸을 동행인이 있으면 좋을 것이고, 없더라도 자연과 소통하다 보면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에 여유를 가질 소중한 기회가 되리라 감히 자신한다.

 
 
▲ 남한강변에 위치한 강월헌.

# 여강길 2코스

여강길 2코스는 '세물머리길'로도 불리며, 총 17.4㎞에 6~7시간가량 걸린다. 이 코스는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의 삼도접경구역으로 걷다 보면 알콩달콩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여주 도리마을회관에서 시작해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이어진 도로를 타고, 용인 원삼면에서 발원했다는 청미천(淸渼川)을 건넌다. 청미천은 용인에서 안성시 일죽면, 이천시 장호원읍을 지나 여주군 점동면 삼합리에서 합해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방초천, 죽산천, 석원천, 응천, 금곡천 등 지류와 만나는데 경기 남부지역의 관개수원으로 역할이 크다고 한다. 유역은 37.56㎞에 달한다.

강돌을 밟으며 모랫길을 따라가니 삼합리 대오마을이 나온다. 삼합은 말 그대로 세 곳이 합쳐짐을 이른다. 세 강(남한강, 청미천, 섬강)과 삼 도(강원, 경기, 충청도)가 한곳에서 만난 것에서 유래됐다. 대오마을에서는 남한강의 백미로 꼽히는 격조 높은 자산(紫山)의 당당함과 여유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자산은 강천리에 있는 산으로, 예로부터 신선이 사는 곳은 좋은 약을 제조하기 때문에 불그스름한 구름과 같은 연기가 떠 있다고 한다. 신선이 사는 곳은 자운동천(紫雲洞天), 단산(丹山), 단구(丹丘)라고 부르고 있다. 경치도 좋은 산을 신성시해 자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남한강대교를 건너니 개치나루터에 이른다. 이곳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으로, 개치나루에서 남한강 제방을 걷다 보면 충주에서 여주로 흐르는 남한강과 원주에서 여주로 흐르는 섬강이 바라다보인다. 참고로, 섬강(蟾江)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의 경계인 태기산에서 발원해 원주시를 지나 삼합리에서 남한강과 만난다.

삼합리와 강천면 강변에는 '단양쑥부쟁이'가 군락으로 서식하는데, 8~9월에 자주색 꽃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국화과의 두해살이 풀로 냇가의 척박한 땅에서 자란다고 한다. 한국 특산식물로 경상북도와 충북 단양에 분포한다.

조금 더 가니 사적 제466호인 법천사지(法泉寺址)가 눈에 띈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돼 고려시대에 융성한 사찰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나 중창되지 못했다. 권람, 한명회, 강효문, 서거정 등이 모여 시를 읊었다고 전한다.

 
 
▲ 도리마을회관 느티나무는 탐방객들이 즐겨 찾는 쉼터이다.

# 여강길 3코스

이어지는 3코스는 '바위늪구비길'로 이름붙여진 구간으로, 총 구간 22.2㎞ 로 7~8시간이 소요된다.

원래 이 코스는 여강길 3개 코스 중 가장 백미였으나 현재는 4대강공사로 강변따라 걷는 길의 절반가량이 막혀 있어 예전만 못하다는 게 탐방객들의 전언이다.

2코스와 이어지는 흥원창에서 시작해 섬강교-닷둔리 해돋이산길-강천마을회관까지 탐방한 후 강천마을회관에서 버스를 타고 여주터미널까지 가는 방법이 있고, 계속 도보할 경우엔 강변길을 갈 수 없으니 국도로 진행하면 된다. 여강길을 걷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민간단체 '여강길'이 부착한 파랑색 '여강길'이라고 쓰여있는 리본을 따라가면 편하다.

자산이 바라다보이는 흥원창에서 코스를 시작했다. 흥원창은 고려시대 13개 조창 중 하나로 조운체제의 정비로 거둬 저장한 세미를 운반했는데, 흥원창에는 200석을 적재할 수 있는 평저선이 21척이나 배치돼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충주의 가흥창과 더불어 남한강의 중요한 창이었다. 주로 평창이나 정선, 횡성, 원주와 같은 강원도 영서내륙지방의 전세(田稅)가 모이던 곳이다.

자산을 바라보며 섬강을 따라 강천면으로 들어가면 닷둔리 해돋이산길이 나온다. 해돋이길은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옛날 길을 지나던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

어느덧 강천마을회관에 도착했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 여기서 이호대교까지의 강변길은 막혀 우회해야 한다.

 
 

국도를 따라 걷는 길을 택해야 하지만 다소 부담스러워 자동차로 이동했다. 당초 구간대로라면 이무기가 산다는 전설을 간직한 '바위늪구비'와 2001년 천연염색가 이민정씨가 30년간 수집한 여성생활과 관련된 유물 3천여점을 모아 설립한 '여성생활사박물관', 농촌체험마을인 '오감도토리마을', 동양 최초의 불교박물관인 '목아불교박물관' 등을 차례로 돌아보게 되지만 그 구간은 다음으로 미뤘다. 많은 이들이 강변길이 폐쇄돼 이곳을 가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는데 현재 모두 운영중으로 개별적으로 언제든 찾아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여주의 대표적 사찰인 신륵사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강가에 위치한 사찰로, 여주란 지명이 신륵사와 마암으로 유래된 것으로 치수와 관련이 있는 유명한 곳이다. 남한강가에 나와 있는 멋진 건물이 나옹화상이 입적한 강월헌이다. 신륵사 앞으로 조선시대 4대 나루였던 조포나루터가 자리한다.

신륵사 주변은 현재 진입로 개설 공사가 한창으로 산사의 고요함보다는 다소 분주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경내로 들어오면 금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해 조사당(보물 제180호), 다층석탑(보물 제225호), 다층전탑(보물 제226호), 보제존자석종(보물 제228호), 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호),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 등 보물급 문화재들을 접할 수 있다.

강과 어우러진 수려한 산세가 장관이지만 무엇보다 강월헌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의 정취가 저녁노을과 더하면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다. 다만 절벽에 위치한 만큼 안전사고에 주의하길 당부한다.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