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 걸어보면 녹음(綠陰)에 반해 다시 찾는다는 길이 있다. 녹음이 짙어갈수록 찾게 되는 길이 바로 파주시 교하읍 서패리에 위치한 심학산 둘레길이다.
자유로변 유일한 산으로 한강 하류가 내려다보이는 이 길은 사계절 모두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지만 여름에 더욱 빛을 발한다.
#녹음이 짙어가는 심학산 둘레길
심학산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쭉한 모양이다. 정상은 서쪽의 중심에 솟아있다.
동패리 교하배수지에서 정상까지는 주릉을 따라 등산로가 잘 조성돼 있어 어른 셋이 나란히 걸어도 좋을 만큼 길이 넓다. 작은 산치고는 제법 숲도 깊다. 등산로를 뒤덮은 활엽수림은 한낮에도 숲 그늘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주릉에 난 등산로만 오가기에는 다채로운 볼거리도 많고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둘레길이다.
심학산 둘레길은 산 정상을 오르내리는 등산로 개념에서 벗어나 7∼8부 능선의 산허리를 따라 평탄하게 만든 폭 1.2∼1.5m 규모의 숲길로 누구나 쉽게 걸으며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흙길이어서 맨발로 걸어다니며 건강을 다지기에도 좋다. 둘레길 곳곳에는 전망 데크와 나무계단이 만들어졌고 전망대도 설치돼 있다. 심학산 정상의 팔각정에 오르면 자유로 옆 한강과 임진강은 물론 북한지역까지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한강과 강화도 위로 떨어지는 붉은 노을의 장관도 감상할 수 있다.
완만한 경사의 흙으로 된 기존 등산로(5개 구간 총연장 13㎞) 곳곳에는 나무 턱으로 된 계단이 있어 걷기에 편리하다.
심학산 둘레길은 2009년 가을에 완공됐다. 심학산을 한바퀴 도는 코스의 이 길은 총길이 6.8㎞로 2시간이면 넉넉히 돌아볼 수 있다. 둘레길은 곳곳에서 주릉 등산로와 이어진다. 또 둘레길과 주릉 등산로의 높이가 50m 내외에 불과해 두 길이 이웃하면서 걷는 느낌을 준다. 어떤 사람들은 주릉과 둘레길의 경계를 넘나들며 걷기를 즐긴다.
둘레길로 들어서는 입구는 심학산 남측의 전원마을과 서측의 출판단지 및 서패리 꽃마을, 북측의 약천사 및 우농타조농장, 동측의 교하배수지 등이지만 최적의 코스는 교하배수지에서 주릉을 따라 정상까지 간 뒤 둘레길을 따라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꼽힌다.
걷기의 출발점은 서패리 꽃마을이나 약천사, 교하배수지가 많이 이용된다. 이곳은 주차장이 있어 주차가 편리하다. 어느 곳을 출발점으로 선택할 것인지는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심학산을 한바퀴 도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교하배수지 주차장에서 걷기를 시작하면, 보도가 깔린 길이 나 있다. 약간 오르막이지만 크게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다. 조금 올라가다 둘레길로 바로 들어설 수도 있다. 보도를 따라 10분쯤 올라가면 배수지에 닿는다. 배수지에는 정자와 체육시설이 있다. 이곳에서 둘레길은 왼쪽으로 살짝 내려가고, 주릉은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주릉에 올라서도 등산로는 넓고, 편안하다. 예전 군부대가 사용하던 길이 등산로가 된 것이다. 주릉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기에 좋다. 숲 그늘도 좋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한낮에 걸어도 해를 볼 일이 많지 않다.
아침 일찍 운이 좋으면 고라니나 다람쥐도 만날 수 있다. 10분쯤 가면 둘레길로 내려서는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10분쯤 더 가면 체육시설이 있는 사거리다. 여기서도 약천사와 둘레길로 내려설 수 있다. 체육시설에서 정상까지는 600m. 정상이 가까워지면 등산로가 조금 가팔라진다.
등산로는 많은 등산객이 찾는 탓에 훼손 방지를 위해 바닥에 고무매트를 깔아놨다. 가파른 구간의 거리는 고작해야 200m. 땀방울이 맺힐 만하면 정상에 닿는다. 심학산 정상은 정자를 중심으로 주변에 나무데크와 체육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다. 이전까지 숲만 보고 걸어왔던 터라 시야가 툭 터진 정상의 조망은 시원하기 그지없다. 누구라도 정자에 걸터앉아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게 된다. 정상 일대는 수백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다.
정상 팔각정에서 한강을 따라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서울 북한산과 남산·여의도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도도히 흐르는 한강 너머 김포반도, 서쪽은 강화와 개성 송악산, 북쪽은 통일전망대와 임진강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일몰시간 강화도로 넘어가는 노을은 장관이다.
하산은 둘레길을 따라간다. 정자에서 내려와 오른쪽 데크를 따라가면 출판단지 방향 둘레길로 내려서는 길과 만난다. 초입은 약간 가파르지만 200m만 내려가면 끝이 난다. 체육시설과 육각정자가 있는 곳에서 둘레길과 만난다. 왼쪽은 한강전망대~전원마을을 거쳐 교하배수지로 가고, 오른쪽은 약천사를 거쳐 교하배수지로 간다. 약천사를 거쳐 가는 게 조금 가깝다. 정자에서 약천사 방향으로 틀어 수투바위를 지나면 부드러운 흙길이 펼쳐진다.
둘레길은 산자락을 능구렁이 담넘어 가듯이 타넘어 다닌다. 길은 부드러운 곡선만큼이나 보드라운 흙길이다. 바위나 날카로운 돌이 전혀 없다. 맨발로 걷는 사람도 종종 눈에 띈다. 숲도 싱그럽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은 대부분 활엽수다. 간간이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기도 한다.
둘레길을 따라 15분가량 가면 숲 너머로 거대한 부처의 얼굴이 언뜻 비친다. 약천사다. 약천사 앞마당에 가부좌를 튼 부처는 남북통일약사여래대불. 2008년 10월에 조성된 이 대불의 높이는 13m나 된다. 약천사 입구에는 절 이름에 어울리는 시원한 약수가 솟는다.
약천사를 지나면 금방 또 아늑한 숲길이다. 여전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길이다. 산마루가든 사거리를 지나면 둘레길과 주릉은 거의 닿을 듯이 가깝다. 주릉 등산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인기척도 느껴진다. 산마루가든 사거리를 지나 10분쯤 가면 우농타조농장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출발점인 교하배수지 주차장으로 가는 길만 남는다.
육각정자에서 전원마을 방향 왼쪽으로 틀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칙칙한 소나무 군락을 만난다. 이 길은 약천사 뱡향과는 조금 다르다. 이 길 역시 7~8부 능선을 구불구불 타고 도는 흙길이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하게 섞여 있어 웰빙산책 코스로 제격이다.
산 허리를 타고 넘길 몇차례, 한강과 출판단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이른다. 이곳에서 잠시 쉰 후 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전원마을로 내려가는 길과 맞닥뜨린다. 왼쪽 방향으로 50m를 올라가다 다시 오른쪽 둘레길로 들어서면 이때부터 오르막이 시작된다. 약간 땀이 배고 숨이 차다싶으면 어느덧 배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걷기를 마치는 순간, 아늑한 숲길을 품고 있는 심학산이 새롭게 느껴진다. 파주출판단지나 오두산통일전망대, 헤이리문화예술마을, 임진각 평화누리 등과 연계하면 하루 나들이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혹시 문의할 것이 있다면 파주시 공원과(031-940-4611)로 연락하면 된다.
글·사진┃파주/이종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