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전은 늘 세계적 이슈가 되곤 한다. 120여 년 전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1894년 청일전쟁이 한반도를 덮칠 때는 조선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러시아, 영국, 미국 등 각국의 외교전이 불꽃을 튀었다. 그 중심에 인천 앞바다가 있었다. 1871년 신미양요 이후부터 청일전쟁 시기까지 인천 앞바다는 그야말로 '세계의 바다'였다.

┃관련기사 9면

'일본 해군의 큰 함대 하나, 작은 군함 여섯 척, 미국 기함 한 척, 프랑스배 두 척, 러시아배 한 척, 그리고 중국배 두 척이 항구 바깥 쪽에 있었다. … 일본 운송선은 군대, 말 그리고 전쟁 물자를 작은 증기선으로 실어나르는 중이었고 …'. 일본이 중국에 선전포고하기 1개월10여 일전인 1894년 6월 21일 오전의 인천항 풍경을 영국인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 여사는 이렇게 적었다.

청일전쟁을 앞두고 세계 각국은 인천 앞바다에서 이렇게도 분주하게 움직였으나 정작 조선의 외교력은 작동하지 않았다.

경인일보는 앞으로 연중기획 시리즈 중 하나인 '청일전쟁'에 대해 4차례에 걸쳐 싣는다.

/정진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