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11)군은 지난해 여름, '여름방학 때 한 일'을 이야기하는 학교 발표 시간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가족과 해외나 바닷가에서 신나는 여름방학을 보낼 동안 김군은 일하러 나간 엄마를 혼자 기다리며 온종일 TV를 본 기억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김군의 가장 큰 소원은 '엄마와 여행가기'가 됐다.

고등학생 딸들과 중학생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는 이모(45·여)씨는 휴가철만 되면 매번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왜 우리는 여행 한번 안 가냐"는 아이들의 불평에 가슴이 찢어진다. 하지만 빠듯한 생활비는 친척집 한번 다녀올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본격적인 휴가철에 접어들었지만 한부모 가정 아이들에게 여행이나 문화 생활은 아직 사치일 뿐이다. 정부의 지원 역시 이들의 문화적 갈증을 풀어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31일 어린이재단에 따르면 280여 한부모 가정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71%가 여행을 전혀 가지 않는다고 답했고, 나머지 역시 친척집에 방문하거나 교회 캠프, 영화관 등으로 여행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어디로 가고 싶냐'는 물음에 뮤지컬이나 바다, 계곡보다 '가족과의 여행'을 먼저 꼽은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정부의 한부모 가족 지원은 최소한의 경제문제 해결에 머물고 있다. 실제로 여성가족부는 한부모 가정에 아동양육비와 고교 생활비, 복지자금 대여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문화적 혜택은 아직 미미하다. 문화 지원이라고 볼 수 있는 여행바우처는 올해 첫 시행돼 걸음마 단계이며, 문화바우처는 1년 5만원의 문화비를 지원하지만 요즘 뮤지컬이나 연극 관람료를 고려하면 턱없이 낮아 '전시성 행정'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다.

이로 인해 어린이재단 등에서 마련한 한부모 가족을 위한 여행, 문화 행사에는 매번 신청이 빗발치지만 이들을 지원해 줄 예산이 부족해 극소수만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

어린이재단 관계자는 "지난해 한부모 휴가가기 행사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워 하는 가족들이 많았다"며 "20가정 휴가를 보낸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30가정으로 늘렸지만 아직도 여행을 간절히 희망하는 가정을 소화하기엔 역부족이다"고 말했다.

/김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