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있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이 새 역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한국 토종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100만 돌파의 상징적 의미를 지나 지난 19일 손익분기점인 150만 관객마저 가뿐하게 넘어서며 더욱 실질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 게다가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기록을 연일 다시 쓰고 있는 '마당을 나온 암탉'은 개봉 첫 주 좌석점유율 48.94%에 이어 2주차 좌석점유율 52.99%, 3주차에 접어든 지난 주말에는 전국 428개의 상영관에서 56.31%의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등 점점 더 탄력을 받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무난하게 200만 돌파는 물론 300만도 넘볼 기세다.


이런 신화 창조의 배경에는 경기도가 있었다. 경기도 산하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GDCA)이 지난 2008년 '신화창조 프로젝트'로 선정하는 모험을 감행했던 것. 도는 '마당을 나온 암탉'에 총 제작비 30억원 중 5억6천만원을 투자했고, 이어 2009년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도 '글로벌 애니메이션 장편 부문' 지원작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선정하며 탄력을 받게 됐다.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100만 이상 관객을 넘어선 적이 없었기에 과감한 투자였다. 그리고 '마당을 나온 암탉'은 이런 지원에 힘입어 다른 파이낸싱도 풀리면서 새 역사를 쓰는 주춧돌이 됐다. 명필름과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 오돌또기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동화를 무려 6년간의 기획·준비 과정을 거쳐 스크린에 옮겼다. 최근 서울시 종로구 필운동 명필름 사무실에서 무에서 유를 일궈낸 '신화창조의 두 주역' 명필름 심재명 대표와 오성윤 감독을 만나 그 가슴 뛰는 순간을 들어봤다.

-드디어 고대하던 손익분기점(150만 관객)을 넘어섰는데.

▲심재명 대표(이하 심)="100만 관객 돌파는 한국 애니메이션사에 첫 발자국이라는 기록의 의미가 컸어요. 물론 기뻤지만 제작자는 투자금액 회수라는 덕목이 중요한 입장이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더 중요했죠(웃음). 상징적인 의미에 실질 수치가 더해져 다행이에요. 애니 종사자로서 실질적인 의미가 크죠."

▲오성윤 감독(이하 오)="극장용 장편 애니가 근래 실패 사례가 많았어요. 그래서 이 영화에 쏠린 시선을 개봉 전부터 느껴 어깨가 무거웠죠. 마치 돋보기로 빛을 모으듯 몸으로 전해져 왔는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물론 축구감독이 골에 배고파하듯 더 많은 관객에 대한 욕심도 나네요(웃음)."

-개봉 전 이런 결과를 예상했었나.

▲심="GDCA에 투자받을 때 200만을 목표로 잡았지만 사실 완전히 모험이었죠(웃음). 그렇지만 목표를 높게 잡았기에 더욱 올인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듯 싶어요."

▲오="순수미술을 해 오다 이 영화가 제 첫 연출 데뷔작이에요. 그래서 전 모험이 아닌 도전으로 제 인생을 걸었죠."


-이번 흥행안타의 원동력은.

▲심="무엇보다 명필름과 오돌또기 결합의 힘이죠. 질 높은 애니메이션에 공격적인 배급이 시너지를 낸 거죠. 바람직한 협업사례가 없었다면 이런 수치를 못이뤘을 거예요. 앞으로 실사영화제작사와 애니 종사자간 영업 네트워킹이 활발히 진행돼야 해요."

▲오="동감이에요. 동시대 가족영화를 고민하던 중 쉽게 의기투합됐어요. 사실 국내 애니의 산업적 가치는 유아용에 편중돼 있어요. 그러므로 앞으로 실사 영화사와의 협업사례를 계속 만들어 가야 된다고 봐요."

-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던데.

▲심="사실 공적자금 지원이 없었으면 못 만들었어요. 2008년 GDCA에서 투자받은 5억6천만원이 발판이었죠. 국내 애니 시장이 열악하다 보니 그 당시 경기도 투자 받고 만세를 부를 정도로 기뻤어요. 그 뒤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7억원을 지원받는 등 파이낸싱에 주춧돌이 돼줬어요."

▲오="저는 처음에 베스트셀러 원작에 명필름까지 붙으면 당연히 투자가 쉽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애니가 1970년대 잠시 반짝하다 80년대 이후 흥행사례가 전무하다 보니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해외 진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심="중국 개봉일자가 당초보다 조금 연기돼 9월 말쯤 될 것 같아요. 중국 전역 2천개 이상 규모로 중급 개봉은 된다더라구요. 사실 우리 상업 애니가 해외에서 개봉한 것은 처음이에요. 중국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아시아 시장으로 넓혀나갈 계획이에요."

▲오="매년 여름이면 국내 스크린은 미국·일본 애니가 점령했었는데 개봉 전부터 전 올 여름 미국·일본 애니 이길 자신있다고 호언장담했죠. 사실 공약을 남발한 건데 이뤄져 다행이에요. 우리만의 개성이 담긴 차별화된 애니를 무기로 세계 무대에 나가야죠."

 
 

-애니메이션이라 밤시간대엔 스크린이 줄었다던데.

▲심="물론 상영횟수가 줄어든 것은 아쉬워요. 사실 해외 애니들은 자막·더빙 등 버전이 여러 가지라 밤 시간대에도 상영해 왔어요. 우리 애니도 아이들뿐 아니라 밤시간대 어른들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애니는 어린이만 본다는 편견은 버려야해요. 만약 밤에까지 상영했으면 충분히 더 빨리 흥행했을 거예요."

-국내 애니메이션 발전을 위해 제안한다면.

▲심="25년간 충무로에 있다 보니 엄청난 산업적인 변화를 겪고 함께 성장해 왔어요. 우리나라처럼 1년 영화 100편 이상 제작하는 나라가 몇 개국 안 돼요. 아쉬움은 수치적으로는 커졌는데 다양성 측면에서는 안 좋아졌어요. 지나치게 상업주의를 지향하는 영화도 많아졌구요. 한국영화 다양화를 위해 창의적인 영화를 살릴 수 있는 인프라가 튼튼해졌으면 해요."

▲오="청소년도 같이 열광하며 볼 수 있는 애니가 나와야죠. 대중문화 접하면서 연예인 선호도는 높지만 우리가 그동안 보여줄 만한 애니가 없던 면도 있죠. 중고교생들이 열광한다는 것은 아래나 위의 계층도 볼 수 있어 중요한 시장이라고 봐요."

-이번 애니가 30번째 제작영화인 명필름은 부부가 공동으로 쭉 이끌고 있는데.

▲심="남편 이은 대표랑 각자 제작자와 프로듀서 역할을 하면서 모든 영화에 함께 참여해요. 그동안 영화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해서 반대되는 상황도 거의 안 생기구요. 보완도 되고 힘이 많이 되죠."

▲오="그런 거 보면 부럽죠. 저랑 셋이 이야기 나눌 때 공동대표 부부의 생각이 한결같아 마치 한 분과 얘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

-관객이나 주변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오="제가 보기에 미국·일본과 다른 애니메이션이 나왔어요. 저희만의 멋과 진실이 숨어있죠. 아이들이 봐야 되는 것도 있지만 아이들이 떠들고 그런 거 거부감 느끼시기도 하는데. 어른들이 그런 것도 영화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함께 즐겨 보시는 것도 좋은 감상포인트라고 봐요."

▲심="애니메이션이 처음이라 새로운 경험으로 어려웠지만 배운 점도 있어 보람됐어요. 좋은 영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관객들이 이렇게 많이 사랑해주실 줄 몰랐어요. 한국 애니의 새로운 도전에 많은 관심과 응원주시고 있죠. 겨우 150만명이지만 몸으로 느끼는 건 1천만명 든 것 같은 관심이라 쑥스럽지만 각오를 다시 다져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 MYUNG FILMS

■ 명필름 = 영화 기획자 심재명이 광고 기획사 및 매니지먼트사에서 일하던 동생 심보경, 독립 영화 단체 '장산곶매'에서 '파업전야' 등을 제작했던 남편 이은과 의기투합해 1995년 설립한 영화제작사다. 1996년 첫 작품 '코르셋'에 이어 서울에서만 7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접속'(1997), '조용한 가족'(1998),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 '해피엔드'(1999), '섬'(2000), '공동경비구역JSA'(2000), 'YMCA야구단'(2002), '바람난 가족'(2003), '그때 그 사람들'(2005),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 '극락도 살인사건'(2007),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시라노:연애조작단'(2010) 등 웰메이드 상업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대담=심영미 문화체육부 부국장

/정리=이준배차장·사진=김종택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