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일전쟁은 1904년 2월 8일 인천 앞바다에서 시작됐다. 일본 어뢰정이,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해 중국 뤼순항으로 이동하려는 러시아 포함, '카레예츠'호를 향해 수뢰를 발사한 것이다. 카레예츠호는 일본 어뢰정의 공격을 피해 제물포항으로 귀항했다.
다음 날 제물포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포함 카레예츠호와 순양함 '바랴크'호는 인천 팔미도 해역에서 일본 군함과 교전을 벌이게 된다. 이들 군함은 일본 군함과의 싸움에서 큰 타격을 받아 제물포항으로 되돌아왔고, 이 곳에서 병사들을 외국 함선으로 이동시킨 뒤 배를 침몰시켰다. 당시 제물포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상선 '숭가리'호 선원들도 배에 스스로 불을 질러 2척의 군함과 운명을 함께 했다.
바로 '제물포해전'이다. 일본군은 제물포해전에서의 승리를 시작으로 사실상 한반도 제해권을 장악했고, 마침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무력한 조선인들은 인천 제물포항과 월미도에서 러시아와 일본 군함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러일전쟁의 결과가 조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알고 있었을까.
日, 전쟁 며칠전 조선 전신선 차단 러시아측 눈가려
■ 인천에서 울린 러일전쟁의 서곡
1904년 2월 8일 오후 4시 인천 월미도와 팔미도 사이 해상에서 포성이 울린다. 일본 어뢰정이 러시아 포함 카레예츠호를 향해 수뢰를 발사한 것이다. 카레예츠호는 한반도의 정세를 러시아 극동사령관에게 알리라는 임무를 받고 중국 뤼순항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앞서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을 벌일 작심으로 병력과 물자를 조선으로 옮겼다. 전쟁이 발발하기 며칠 전에는 조선의 전신선을 끊어버렸다. 일본의 이같은 조치로 인해 러시아는 전보를 보낼 수 없었고, 카레예츠호를 직접 뤼순항에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던 것이다.
영국, 미국 등 서구 열강은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이들이 자국민과 공사관을 보호하기 위해 군함을 인천 제물포항으로 보낸 것으로 알 수 있다.
러시아도 전쟁이 터질 것이라는 소문은 들었으나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던 듯하다. 일본 어뢰정의 수뢰는 카레예츠함에 피해를 주지 못했다. 일본 어뢰정의 공격에 놀란 카레예츠호는 인천 내항의 중립 해역으로 피항한 뒤 일본군의 발포 사실을 바랴크호에 알린다.
바랴크호는 영국 '탈보트'호 등 제물포항에 정박해 있던 외국 함대에 일본의 '위법적 공격' 사실을 알렸다. 일본이 전쟁을 선포하지 않은 상태인 데다, 중립항(제물포항)에서 러시아 군함을 공격한 것에 항의한 것이다.
외국 함대들이 일본군에 항의서를 보냈으나, 일본군은 이들에게 '2월 9일 정오 전에 제물포항을 떠나 달라'고 요구한다. 결국 바랴크호는 일본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된다.
14대2 수적 열세 러시아… 전투불능 전함 2척 '자침'
■ 러시아 군함, 인천 앞바다에 …
2월 9일 오전 11시15분 바랴크호와 카레예츠호가 닻을 올려 제물포항을 출항했고, 30분이 지난 뒤 일본 군함의 포격이 시작됐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발간한 '한반도에서 전개된 러일전쟁 연구'(저자·심헌용)에 따르면 일본 함대는 순양함 6척, 어뢰정 8척으로 구성돼 있었다. 러시아는 14대 2의 열세에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제물포해전에서 바랴크호가 큰 피해를 입었고, 카레예츠호와 함께 제물포항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들 군함이 제물포항으로 들어가자 일본 군함도 포격을 중지했다. 이 때 시각이 낮 12시45분이다.
바랴크호는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랴크호는 부상자들을 작은 배에 실어 외국 함선에 보냈다. 이후 러시아군은 바랴크호의 밸브와 급수용판을 열어 스스로 배를 침몰시켰다. 카레예츠호는 탄약 창고를 폭파시키는 방식으로, 상선 숭가리호는 배에 불을 질러 태우는 방식으로 수장됐다. 일본에 전리품을 통째로 내주지 않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일본은 악착같이 바다 속을 뒤져 '전리품'을 챙겼다. 일본은 이를 세계2차대전에서 '유럽을 무찌른 일본 정신'으로 승화시켜 '전쟁 홍보'에 활용했다.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는 1904년 러시아 장병들을 인터뷰한 뒤 쓴 '러일전쟁, 제물포의 영웅들'이란 책에서 "바랴크호가 좌현으로 기울자 안에 있던 시체들이 좌현 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중략) 마치 바다가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일본군, 제물포상륙 서울 점령·본대 中 뤼순항 진격
■ 일본, 조선과 서해를 장악하다
일본군은 제물포해전 승리로 사실상 서해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인천 앞바다에서 러시아 군함과 싸운 일본군은 분견함대다. 당시 일본군의 본대는 중국 뤼순항을 향했다. 본대도 역시 2월 8일 밤, 뤼순항 공격을 시작했다.
분견함대는 제물포항에서 러시아 군함과 대치하고 있을 당시 수송선을 이용해 약 3천명의 군사와 군마 등을 제물포항에 상륙시켜 서울을 점령한다.
박종효 박사는 2004년 국내 시사 월간잡지에 쓴 글(1904년 러일전쟁 서막 연 제물포해전)에서 "첫 교전이 있었던 8일 밤 제물포로 상륙한 3천여명의 일본군은 아무런 저항 없이 서울에 입성한다"며 "결국 이 사건은 조선이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는 마지막 분수령이 된다"고 했다.
일본 본대는 러시아의 만주지역 전초기지인 '뤼순항'을 공격, 러시아 함대의 발을 묶었다.
※'바랴크호 깃발' 러시아 임대 배경
'인천·러 우호' 정치적 협상… 지난해 '2년 기한' 빌려줘
1904년 러일전쟁 제물포해전 때 인천 앞바다에 가라앉은 러시아 순양함 바랴크호의 깃발은 107년이 지난 2011년 러시아에 가 있다.
송영길 인천시장이 지난해 11월 11일 바랴크호 깃발을 러시아에 2년 기한으로 임대한 것이다.
이때 '바랴크 깃발'은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주한 러시아 대사관까지 갔다가, 인천항에 정박해 있는 러시아 군함인 또 다른 '바랴크호'로 옮겨졌다. 송 시장과 베글로프 러시아 대통령 특사는 러시아 군함 선상에서 '바랴크호 깃발 승선식'을 갖기도 했다.

바랴크호는 1904년 2월 제물포해전에서 일본 군함에 패한 뒤 항복 대신 자침을 선택했다.
일본은 인천 앞바다에서 '바랴크 깃발'을 건져 자유공원 '인천향토관' 전시실에 내걸었고, 이 깃발은 해방 뒤 인천시립박물관의 수장품이 됐다. 바랴크 깃발은 우리가 약탈한 게 아닌 것이다.
인천시는 '바랴크 깃발 임대'를 인천과 러시아의 우호관계를 증진시키는 '매체'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바랴크 깃발'이 정치적 목적에 활용된다는 비판도 많았다. 인천이 '바랴크 깃발'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과 '한반도에서의 부동항 확보 노력'은 동아시아 진출을 위한 것이었다. 청일전쟁이 끝난 뒤 러시아가 삼국간섭을 주도한 이유도 일본이 러시아의 남하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러일전쟁은 만주와 한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이다. 바랴크호가 자침된 제물포해전, 그 러일전쟁 속에는 '조선의 독립'과 '조선인 보호'는 없었다.
※ 전문가가 본 제물포해전
"러·일의 시각으로 전쟁 미화… '한반도 점령' 야욕 숨겨"
"더 이상 남의 나라 군대가 한반도(인천)에 와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이희환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사진)는 "인천이 평온하면 한반도 전체가 평화롭다. 이것이 인천의 정체성이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인천은 조선이 세계와 소통하는 공간이 되거나 국외세력의 관문 또는 각축장 구실을 했다"며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인천에서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군은 청일전쟁(1894~1895년) 당시 인천 제물포항으로 상륙, 유리한 고지(서울)를 점령했다. 러일전쟁(1904~1905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군은 인천 제물포항 등을 통해 한반도에 상륙해 서울을 차지한 뒤 북상, 러시아군을 격파했다.
그는 "한반도 패권은 서울을 공략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인천이라는 항구가 세력권에 있어야 하는 구도다"며 "제물포해전 전에도 월미도에서 러일간의 조차(租借)전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청일전쟁은 1차, 러일전쟁은 2차, 한국전쟁은 3차 인천상륙작전인 셈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과 러시아가 서로 자신들의 시각에서 제물포해전을 미화하고 있다"며 "전쟁이 대결논리에 의해 신화화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공통점은 조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전쟁이다. 중국, 러시아, 일본 모두 조선의 독립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한반도 점령'이라는 야욕이 숨어 있었다.
이 교수는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가 쓴 '러일전쟁, 제물포의 영웅들'이란 책을 프랑스 고서점에서 발굴, 국내에 최초로 소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제물포의 영웅들'은 친러 관점의 책이다"며 "작가가 제국주의 시각에서 책을 썼다는 것을 전제해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는 지금도 바랴크호 장병을 국가영웅으로 여기고 있다"며 "러시아와 일본이 제물포해전을 애국주의로 끌고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동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