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이긴 하지만 선거공약이다. 선거때 입후보자들이 유권자들에게 철석같이 약속한 공약을 선거가 끝나면 '되면 좋고, 안돼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17대 대통령 선거때 이명박 대통령이 경기·인천지역에 내걸었던 대선공약의 이행률도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공약이 표류하는 것은 우선 공약 자체의 문제가 컸고 정권 초 100대 국정과제 선정에서 빠지면서 장기 방치되고 있다.
득표를 의식해 재원마련 계획과 사업·정책에 대한 구체성이 결여된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다 보니 뒷감당이 안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공약들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치면서 걸러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중앙부처의 채택과정에서 제외됐다. 대통령 임기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서 당초 공약을 엄정하게 점검하는 것은 현재를 평가하는 의미와 함께 내년도 차기 대선에서도 후보들이 신뢰성 있는 공약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기·인천 지역 공약 58개를 중점 분석해 본다.
■ 경기도 공약 분석
# 손도 못댄 사업 수두룩 = '일류국가 대한민국의 미래 경기도'.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7년 17대 대선때 내세운 경기도 공약집의 캐치프레이즈다.
수도권 규제의 합리적인 조정으로 세계의 대도시들과 경쟁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겠다는 것이 당시 이 후보의 의지였다. 서울시장 출신으로 경기도의 중첩 규제 등 규제로 인한 불합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 그래서 이 대통령에 대한 수도권 주민들의 지지도는 높았고 선거결과,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당시 이 대통령의 경기도 공약은 총 11개 테마, 28개 공약이다. 하지만 이행률은 형편없다. 이중 절반이 넘는 10개(35.7%)사업은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고, 9개(32.1%)는 '추진중', 9개(32.1%)는 '추진 완료' 상태다.
임기 4년차를 맞고 있는 시점을 감안하면 더 이상 진척을 기대하기 어렵다. 진척률이 이처럼 낮은 것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의 갈등문제도 있지만 공약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플랜과 정권의 의지 부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부의 국정과제 채택과정에서 제외된 것은 이때문이다. 당시 제1의 공약이었던 '글로벌스탠더드로 규제개혁' 테마의 공약들은 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정책들이었지만 진행 상황을 보면 무성의하다.
수도권의 공공기관 및 중앙부처의 이전지역과 낙후지역에 '정비발전지구'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비수도권 정치인들의 반발을 핑계로 국회 심의조차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표를 의식, "무조건 처리하겠다"고 해 놓고 이제 지방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정부도 국회도 추진 의지가 없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싸움을 부채질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이유다. 물론 지역마다 첨예한 이해관계로 공약을 지키기 쉽지 않지만 수도권 입장에선 '약속 위반'인 셈이다.
매번 되풀이되던 팔당상수원 수질개선사업도 진척되지 않고 있다. 수원과 성남, 안양, 부천 등 도시재정비사업과 특히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정치논리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팔당상수원 수질공약의 경우 2010년까지 공공하수처리시설 78개소(증설 16개소)를 확충해 하수도 보급률을 91.1%로 향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확인결과, 2007년 34개에서 2011년 증설된 곳은 5개에 불과했다. 현재 39개가 가동되고 있다.
분단과 희생의 땅으로 규정한 경기북부지역을 남북경제협력의 중심지로 성장시키겠다던 약속도 물거품이 됐다. 접경지역에 개성공단에 대응하는 공단을 조성하겠다던 약속은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고, 한강하구 준설과 철책선 제거사업은 국방부가 사사건건 반대하면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 '완료'된 공약 들여다보니 = 이명박 정부가 약속한 경기도 공약 중 32.1%(9개)는 '추진완료' 됐거나 완료를 앞두고 있다. 진척률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의외로 산업경쟁력 부문에서는 투자가 집중되고 있었다.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를 첨단산업단지로 리모델링하거나 서해안 간척지를 첨단산업으로 육성하려는 계획은 도약의 기틀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노후화된 산업단지를 첨단기업 집적지로 전환하고 단지내 근로생활의 질(QWL)을 높이기위해 시설 확충에 착수했다. 반월·시화 노후단지 활성화 재정비특별법을 만들었고 비즈니스종합지원센터를 건립했으며, 전력선 지중화 사업과 주차장 확보 등에도 지원을 강화했다.
이와함께 서해안 간척지를 첨단 산업해양레저단지로 육성할 수 있도록 토지이용계획을 변경, 첨단산업단지로의 조성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지난해 말 서해안발전종합계획을 발표, 시화호와 대송지구, 화옹호 화성지구의 용도변경도 추진중이다.
남북 대치로 경색 분위기가 풀리지 않는 가운데서도 접경지역 지원사업의 내실화를 위해 '접경지역지원법 특별법'을 전면 개정(2011년 5월19일)했다. DMZ 세계평화생태공원 조성 사업에 대해서도 강도를 높였다. 정부는 DMZ 생태공원조성과 관련, 지난 7월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했고 북부지역에 편중돼 있는 한국섬유소재 가공 연구소 인프라 구축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분석됐다.
4대강사업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경안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등 친수공간 조성사업도 국비 및 도비 투입으로 금년내 완공을 앞두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추진중'으로 분류된 9건의 사업은 상당수가 '추진불능'에 가까웠다. 진척률이 터무니없이 빈약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의 복원과 보전, 관광자원화를 위해 지원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한 약속은 현재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 특별법을 발의해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에 계류돼 있지만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2년째 표류하고 있다. 해당 지역구 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곧 될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정작 국회 법안심사소위나 정부에서는 '강건너 불구경식'이다.
■ 인천공약 분석
# 10월 아라뱃길 개통 = 인천지역의 대선 공약중에는 경인운하, 즉 아라뱃길 사업과 평화의 나들섬 건설이 관심을 끌었다.
통일시대에 대비해 서해안 주요 산업단지와 항만을 연결하는 대형프로젝트였다. 아라뱃길 사업은 10월 개통을 앞두고 있지만 나들섬 건설은 경색된 남북관계로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인천지역 공약은 총 10개 테마, 30개 세부항목이다. 이중 아라뱃길 등 9건(30%)은 이행 완료했고, 16건(53.3%)은 추진중, 5건(16.6%)은 미추진상태다. 아라뱃길 사업은 오는 10월 완공, 뱃길을 열게 된다. 십 수년간 표류돼온 운하(굴포천 방수로 포함) 사업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공약이 됐다.
인천지역 공약의 경우 대체적으로 지역 공약의 진행률은 낮은 상황이지만 굵직한 사업이 많이 추진되면서 마치 많은 일을 한 것 같은 '착시효과'가 느껴진다.
현재 공정률 94%를 보이고 있는 경인 아라뱃길은 이명박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해 왔다. 금년 10월 개장 예정으로 홍수시에는 방수로로 활용, 굴포천 유역의 홍수 피해를 방지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남북을 연결하는 총 12개 교량을 건설중이며 현재 9개 교량이 완료돼 교통수단으로 쓰일 예정이며 전방위 해상 화물운송망도 구축, 한강과 서해를 연결하는 해상관광 루트를 조성중이다.
또 새로운 인천 건설을 기치로 조성되고 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의 활성화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공항~인천항~송도정보화신도시~청라지구~청라·영종·용유지구의 레저단지 등을 연계하는 펜타포트형 경제자유구역 개발이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08년 경제자유구역 활성화 방안 마련, 2009년 외국인투자유치제도 강화 방안, 2010년 경제자유구역 활성화 전략 등을 수립, 경제자유구역내 규제완화를 확대하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1단계 사업이 완료된 후 현재 2단계 사업이 진행중이다. 2020년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남동산업단지의 질적 개선도 눈에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다. 정부는 노후화된 남동산업단지를 첨단기업 집적지로 전환하고 단지내 근로생활의 질(QWL)을 높이는 등 남동산단을 QWL 시범단지로 선정, 추진하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의지가 돋보인다. 지난 2009년 사업이 완료된 인천도시엑스포사업도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홍보비를 지원하는 등 재정 지원을 해 오고 있다. 그러나 지난 7월 감사원 감사 결과, 인천시의 부실한 사업 추진으로 많은 물의를 빚어 향후 지자체 행사에 신중을 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메아리만 남긴 인천과의 약속 = 경인운하의 조속한 건설과 남북경제 협력을 위한 나들섬 건설을 공약했지만 경색된 남북 문제로 약속 파기를 맞게 됐다.
통일부의 공식입장은 "남북한 공동으로 현지 답사를 실시한 후 사전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타당성 분석및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하지만 현재 경색된 남북한의 분위기로 인해 현지 답사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약속파기 선언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한강하구의 인천지역에 나들섬(평화의섬)을 조성, 인천을 남북경제협력의 중심지로 발전시키고 ▲통일에 대비해 서해안 주요 산업단지 및 항만을 연결(서해안고속도로~송도신항~인천공항~나들섬~개성공단)하는 환서해안 고속도를 건설, ▲남북경제교류에 대한 정부의 의지 및 통일에 대비한 상징성을 갖겠다고 약속했었다.
GM 대우차를 의식, 부평지역을 자동차 특화지역으로 지정해 대학의 자동차 관련학과 분교를 설치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인천은 그러나 경기도와 달리 대형 국책사업이 많아 나름대로 정부 지원이 잇달아 대조를 보였다.
■ 공약, 100대 국정과제에서 제외 = 구체성 없는 계획을 남발하다보니 새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서 대선 공약 대다수가 제외됐다. 경기도의 경우 인천~김포 민자도로와 제2경부고속도로, 동북부 하수처리시설, 접경지역지원 등 극히 일부만 포함되고 대부분 빠졌다. 인천도 아라뱃길 사업과 제2외곽순환도(인천~김포) 일부 구간만 100대 과제에 채택돼 대선공약의 부실함을 드러냈다. 100대 과제에 선정되면 국무총리실에서 사업별로 점검하고 완료 시한이 정해지는 등 대통령에게도 수시로 보고되기 때문에 사업 진행이 빨라진다.
/정의종기자
■ '공약점검' 경인지역 의원들 반응
"지역공약 불이행땐 정치 불신만"
경인일보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당시 공약을 점검하는 동안 경기·인천지역 의원들은 "시·도별 지역단위로 공약을 내세우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대선후보 답게 국가 운영의 큰 틀에서 공약하고 실천해야지 시장·군수, 그리고 국회의원들의 역할까지 공약으로 내거는 것은 '불이행'시 또다른 정치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며 정치적 고민이 있어야 할 대목이라고 한결같이 주장했다.
한나라당 유정복(김포) 의원은 "선거때 한 표라도 더 받기 위해 공약을 남발하는 등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며 "그러나 대선 후보는 지역단위의 국책사업이면 모르되, 사소한 사안까지 공약으로 내거는 것은 좀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경기·인천지역 시·도 공약이 58개'라는 얘기를 듣고 "그렇게 많으냐"며 "시장, 군수, 도지사가 챙겨야 할 사업까지 공약으로 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선 후보는 국가 운영의 큰 틀을 말하고 지역공약은 국책사업에 한해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문학진(하남) 의원도 "대통령 선거에 나오는 분들이 표를 의식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비단 이명박 대통령 뿐만 아니라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분들은 큰 비전을 갖고, 대한민국 전체를 봐야지 지협적인 공약으로 승부를 거는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광재 매니페스토 사무총장은 "17대 대선 시·도 공약의 경우 인수위 보고서에서 100대 과제로 묶이면서 대부분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정과제에서 제외된 것부터가 약속 위반이며 표를 얻기 위해 공약을 남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승·송수은기자
<조사방법: 지방발전위·국회→중앙·지자체 자료요청→국회의원 사무실 최종확인 '크로스 체크'>
조사방법:>이번 조사는 지난 2007년 대선때 이명박 대통령이 경기도와 인천시에 약속한 '시·도 대선 공약집'을 토대로 분석했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지방발전위원회와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해 중앙정부, 해당 지자체에 자료를 요청해 진행상황을 점검했으며 경기·인천 출신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사업의 진척 내용을 최종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크로스 체크 방식이다.
공약은 경기 28개, 인천 30개 등 총 58개로 돼 있다.
'공약이행'은 후보시절 발표한 공약 이행 정도를 놓고 ▲미추진 ▲추진중 ▲추진완료 등 3개 항목으로 분류했다.
'미추진'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채택되지 않거나 아예 검토대상에서 제외된 사업이고, '추진중'의 경우 국회에서 법률안이 계류돼 있거나 예산 반영중으로 중앙부처에서 종합계획이 수립된 사업이다. '추진완료'는 사업의 완료가 금년내에 예정돼 마무리에 들어가 있거나 종료된 사업으로 한정했다. 경인일보는 이번 조사를 통해 선거공약 이행이 예상보다 부진한 것으로 파악했다.
임기를 1년4개월 앞둔 시점에 대선 공약중 미추진공약은 25.8%인 15건, 추진중인 공약은 43.1%인 25건이었으나 추진중인 사업 대부분이 공약이행이라기보다는 지속적으로 해오던 사업이 많았다.
현재까지 완료된 사업은 31%인 18건에 불과했다. 조사 기간 동안 '대선공약 점검'이라는 부담 때문인지 해당 부처와 지자체의 실무부서에선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송수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