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깃거리 가득한 성곽길!
팔달문관광안내소에서 안내 책자를 챙겨들고 본격적인 탐방에 나섰다.
팔달문을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화성을 돌아보는 코스인데 처음부터 순탄치 않다. 코스의 첫 관문인 남치에 오르려니 족히 백여개는 돼 보이는 계단이 자리한다. 경사도 가파른데다 다소 높게 느껴져 일반 계단을 오르는 것보다 배는 힘든 느낌이다.
계단 정상에 오르자 남치(南雉)다. 여기서 '치'란 성의 방어시설로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군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물이다. '치'는 꿩을 말하는 것으로서 자기 몸을 숨기고 주변을 잘 살펴보기 때문에 그 뜻을 따서 '치성'이라고 한다. 화성의 치는 남치를 비롯 총 10개에 이른다고 한다.
남치에서 남포루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데 성곽 옆 숲을 따라 숲길이 눈에 띈다. 숲길은 지난번 집중호우에 쓰러진 것인지 나무들과 돌들이 종종 길을 막아 주의를 요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포루에 다다랐다. 포루는 대표적인 조선후기 성곽시설로,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치성과 비슷하게 쌓은 것이라고 한다. 내부를 공심돈과 같이 비워 그 안에 화포 등을 감춰 뒀다가 적이 성벽에 접근하면 위아래와 삼면에서 한꺼번에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어 모습을 드러낸 서남암문, 이곳은 서남각루로 이어지는 용도길(양쪽에 담을 쌓은 길)이 시작되는 곳으로 암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일종의 비밀의 문이다. 때문에 다른 곳과는 달리 문이 성곽 위로 나 있고, 누각이 있다. 암문은 바깥으로 난 비밀 통로로 성곽의 굽은 부분이나 후미진 곳에 설치해 이곳으로 적에게 보이지 않게 사람이나 가축, 양식, 무기를 공급했다. 문의 크기도 말 한필이 다닐 정도로 좁고 문 위는 보통 성곽과 같게 축소했다. 전쟁시에는 주변에 쌓아둔 돌과 흙으로 암문을 메워 적군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주의깊게 살펴보면 영화 '왕의 남자'의 배경으로 용도길에서 촬영된 부분이 있는데 한번 찾아보시길.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 외국인 남자 2명이 이곳에서 연방 셔터를 눌러대며 사진을 찍고 있다. 가을의 파란하늘과 성벽이 교묘히 어울려 영화의 한장면 같다.
완공후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 수원 화성, 이곳은 축성 당시에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고 한다. 그 첫번째는 백성을 사랑하는 정조의 마음. 사도세자의 능원을 옮기기 위해 백성들을 이주시킬 때 넉넉한 보상금과 이주비를 지급한 일, 막대한 공사비가 들어가는 것에 개의치 않고 성곽의 길이를 늘려 많은 백성이 성안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한 일, 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일한만큼 품삯을 지급한 일, 일하는 도중 병이 나지 않도록 환약을 지어 보급한 일 등등 여러 이야깃거리가 전해 내려온다.
그 다음으로는 성곽축조를 도운 새로운 기계의 도입이다. 유형원·정약용 등의 실학자가 개발한 거중기, 유형거, 용관자, 석저 등의 과학기계는 2년6개월 만에 화성을 완성하는데 도움을 줬다.
특히 화성은 축조하는 모든 과정이 기록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데 큰 역할을 한 셈이 됐다. 설계부터 완공까지 동원된 인부수와 그들의 출신지, 총 소요자금, 나무와 돌의 출처, 사용기계, 건축방법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수원화성박물관 전시)가 그것이다. 수원화성이 200여년을 지나며 무너지고 훼손됐지만 다시 복원할 수 있었던 것도 건축과정을 상세히 적어놓은 의궤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한숨을 돌린후 길을 걷다보니 벤치에 삼삼오오 시민들이 앉아 있다. 나무그늘 밑 벤치라 시원해보이기도 하고 뭐 다른 볼거리가 있나 살펴보니 인근에 '효원의 종'이 눈에 띈다. 이곳은 타종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수원시민에게는 익숙한 곳이라고 한다.
종도 종이지만 여기서 본 수원시 전경에 입이 딱하고 벌어진다. 시야에 수원시 전경이 한눈에 파노라마같이 펼쳐진다. 서암문을 지나 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서장대에 이르렀다. 커다란 깃발이 펄럭이는데다 '화성장대(華城將臺)'라는 현판이 위엄을 더한다. '장대'(將臺)는 높은 위치에 장수가 올라가서 적병을 살피고 병사를 지휘하는 곳을 말하며, 화성에는 두개의 장대가 있는데 그중에서 화성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서장대다.
서장대는 사방으로 지붕면이 있는 2층 집으로, 안에 나있는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갈수 있다. 서장대에서 보면 화성의 안쪽 시가지와 바깥쪽 성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1795년 정조임금이 화성으로 행차했을때 넷째날 밤 정조임금은 직접 서장대에 올라서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것이 팔폭병풍의 한 그림인 '서장대성조도'이다.
서장대를 정점으로 내리막 느낌의 길이다. 여기서 서이치를 지나 서포루, 서일치로 이어지고 이어 서북각루다. 이곳은 화서문 서남쪽 약 170m 거리의 팔달산 북쪽 중턱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만든 누각이다. 성벽이 튀어나온 곳에 위치해 적을 살피기 좋은 장소라고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코스1의 마지막인 화서문(서북공심돈)에 다다랐다.
수원 화성을 돌아봤다고 해서 화성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면 큰일이다. 이곳의 생활상이나 궁중의식 등 무형의 것도 살펴봐야하지 않을까.
이를 충족시켜줄 곳이 바로 인근에 위치한 수원화성박물관이다. 현재 공심돈의 내부구조는 물론 화성성역의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위해 화성행궁에서 베푼 진찬연의 모형 등 화성에 대한 모든 것이 이곳에 전시돼 있다. 또한 박물관 앞에서는 정조대왕의 행차도 볼 수 있다.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 앞에서는 다양한 공연도 펼쳐지는데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궁중무용과 풍물 등으로 구성된 토요상설공연이,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는 장용영수위의식이,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에는 정조임금의 명으로 백동수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가지 무예를 선보이는 무예24기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화성행궁 안에서는 복식체험, 궁중전통체험, 민속전통체험 등 다양한 체험도 할수 있다. 그러나 공연을 보기 위해 날짜를 맞추기 힘든 이라면 주목하시라. 이 모든 것을 한눈에 볼수 있는 수원화성문화제가 10월 7~10일까지 4일간 열린다.
/글┃이윤희기자·사진┃임열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