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로에서 용해된 용탕을 주입하기 위해 레들에 이탕을 하고 있는 출탕공정. /김범준기자

인천 서구 경서동 서부지방산업단지(이하 서부산단)에는 현재 32곳의 주물공장이 자리한다. 이들 업체는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서부산단이 완전하게 자리를 잡기 이전에 둥지를 틀었다. 최근 이곳의 주물공장을 두고 안팎에서 꽤 시끄럽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통제하는 관련 지방고시 때문이다. 이 고시에서 주물업종의 신규 입주를 막아 공장수가 늘어나지 못하도록 막았다. 또 공장을 사고 팔거나 빌려줄 때에도 관리기관의 사전 협조가 필요하다. 이를 두고서 일각에서는 정부와 지식경제부가 '뿌리산업'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불합리한 고시 개정이 시급하다는 주물업체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편집자 주

▲ 1984년 11월28일 경인주물공단 공장 신축 기공식.

# 지역산업의 맥을 잇는다

서울과 경기도, 인천 등지에 흩어졌던 44곳의 주물업체는 1983년 서부산단으로 집단 이전하며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주위에는 도로와 같은 기반시설조차 조성되지 않아 차량이 다니기도 힘들었다. 단지 주물공장이 전부였다. 그해 12월 주물 특화단지의 클러스터화를 위한 협동소조합으로 설립됐다. 인천시 허가번호 제1호이면서 국내 첫 주물전용단지로 만들어졌다. 그 의미가 남다른 이유다. 서부산단은 현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이하 주물조합)을 모태로 태어났다. 실제 인천서부지방산업단지라는 명칭은 1999년 공식적으로 사용, 10년이 약간 넘는다. 이전까지 인천주물지방공업단지로 불렸다. 인천의 공업벨트를 연결하는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한 서부산단은 현재 320여 곳의 기업, 94만㎡ 부지로 외형을 키웠다. 이곳에서 연간 15만t의 물량을 얻어내고 있다. 우리나라 총 주물 생산량의 20%를 담당한다. 명실상부한 수도권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 1986년 11월25일 경인주물공단 입구에 설치된 준공식 아치.

# 국가 기간산업으로 중요성

주물은 뿌리산업의 대표 분야로 각종 부품을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기초공정에 속한다. 자동차나 선박, 농기계를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하고 이들의 품질과 성능을 결정하는 요소다. 그야말로 제조업의 생산기반이다. 뿌리산업의 중추적 기능은 정부 차원에서 강조되고 있다. 국회는 지난 7월 '뿌리산업 진흥과 첨단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 내년 1월 시행을 앞뒀다. 이 법률은 국내 부품 또는 소재산업 활성화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주물공장은 정부 정책과 맥락을 같이한다. 용해로에서 나온 검붉은 빛깔의 쇳물은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다. 대형선박 엔진의 첨단 소재인 실린더라이너부터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생필품까지 망라된다. 전체 업체의 연간 매출액은 2천억원이 넘고, 수출액이 1억달러에 육박한다. 국내 자동차 부품 시장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인천 서부지역에서는 그 역할이 더욱 두드러진다. 지금까지 개별 업체는 주물조합을 중심으로 협동화에 나섰다. 대외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한편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해법을 도출해낸 것이다. 5~6곳 업체가 공동으로 수전실을 설치, 일괄 관리해 비용을 최소화하고 수입 창출은 극대화시켰다. 조합이 설립되면서 이어온 원·부자재 공동구매 실적은 매년 상승세다. 이 방식으로 시중가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이 가능토록 했고 고품질의 자재 적기 도입, 생산성 향상 및 조합 재정 자립화를 실천했다.

▲ 국내 자동차금형용 주물제작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인천 서구 경서동에 위치한 자동차금형용 주물 전문 제작업체인 (주)동진주공.

# 무엇이 문제인가

주물업계 논란은 2007년 4월 고시된 '인천시 지방산업단지 관리기본계획'에서 비롯됐다. 이번 지방고시는 유치 대상업종 세분화와 사후관리 규정을 추가한 것이 골자다. ┃표 참조

이번 고시 전까지 입주업종에는 주물과 비금속광물, 기계장비가 포함됐다. 관리주체는 서부산단관리공단이다. 하지만 인천시는 고시 변경을 통해 유치업종에서 주물을 제외시켰다. 관리기관에서 친환경 산단 조성과 환경보전을 이유로 제안했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입주대상 이외의 업종, 즉 주물에 대한 제한은 양도, 양수, 임대차 등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막았다. 또 기존의 공장이라도 주물과 같은 입주대상에서 배제된 업종으로 변경 또는 추가할 수 없다. 현행 고시대로라면 주물공장은 팔거나 살 때 동일한 업종으로 유지될 수 없다. 대신 공장이 이전되는 부지에는 일반제조업체로 변경이 불가피하다. 고시 개정이 시급하다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겉으로는 주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명문화된 규제로 산업전반에서 제재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자유로운 기업 매각은 불가하고, 과감한 환경설비 투자는 이뤄질 수 없다. 당연히 주물업계의 위축은 가속화되면서 육성이나 발전과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기업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고시를 변경, 공장총량제 차원에서 자유로운 매각이 실현되는 게 주물인의 간절한 바람이다.


# 현안 해결에 무관심한 인천시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주위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다. 일반적으로 산업의 역할면에서 주물분야를 바라보기보다 오염물질을 배출한다는 인식이 많다. 주물인은 시는 물론 지식경제부, 규제개혁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에 그들 요구의 당위성을 알리고 있다. 주물조합은 관련 법령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먼저 해당 지방고시가 '산업집적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위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산집법 제10조에서는 '공장 설립 등 승인을 받은 자의 공장에 관한 권리·의무 승계'를 명시, 지방고시가 상위법과 상충된다는 설명이다. 또 주물조합은 지방산단 조성 이전 '중소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의 협동화사업에 따라 조직, 지방고시 적용 범위에 들어가는지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반월, 시화 등 주요 국가산단은 협동사업 부지에 대해서는 본래 취지와 차별성을 존중하고 있다. 더불어 전국 지자체에서는 기업유치에 혈안이 돼 있다. 세수 확대는 물론이고 막대한 고용효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각 지역은 유연한 입주 규정을 소개한다. 부산은 시가 전면에 나서 역외기업 유치에 팔을 걷었다. 반면 인천은 사정이 판이하게 다르다. 지방고시 개정의 열쇠를 쥐고서도 이 문제에 대해 방관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앞서 주물조합이 수차례 불합리한 고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민원을 제기했으나 소극적 대처가 전부였다. 4년 전 주물업종의 입주 제한을 승인한 시가 지금에 와서 상황을 번복한다면 그들의 오류를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류옥섭 이사장

공해문제로 접근은 잘못… '전통제조업' 재조명돼야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뿌리가 튼튼한 산업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을 겁니다."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류옥섭 이사장은 주물업계 의지를 이같이 피력했다. 그는 "주물을 결코 공해문제나 단순 저부가가치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산업기반 기술을 전략적 업종으로 육성해 전통제조업이 재조명돼야 한다"며 "건전한 일자리 창출은 굴뚝산업인 제조업에서 비롯된다는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자체에서 정부 정책에 부합되는 뿌리산업 진흥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류 이사장은 "맞춤형 지원을 통해 지역기업 육성에 나서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활성화를 실현해야 할 것"이라며 "주물산업은 이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따라서 환경규제 완화나 지역주민의 인식 변화로 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주물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협조를 제안했다. 류 이사장은 "민간기업이 자력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국제동향 파악 또는 교류 및 공동연구개발에 중앙부처가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2009년부터 '10대 산업 진흥조치'라는 프로그램으로 주물산업을 기른 중국의 사례와 막대한 예산을 투입중인 일본 '모노즈쿠리(장인정신) 국가비전 전략'을 소개했다. 그는 "정부가 내놓은 관련 법률로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종'이라는 기존 이미지가 개선되고, 역동적 전통분야로 탈바꿈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류 이사장은 주물인이 나아갈 방향으로 "기존 기술을 고집하기 보다는 블루오션을 개척할 수 있는 신기술 개발에 힘쓰겠다. 뿌리산업 첨단화를 실현할 수 있는 꾸준한 투자와 노력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강승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