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에 대한 관심의 시작, 음악
경기공립중학교 재학시절 백남준은 피아니스트 신재덕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신재덕은 백남준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성악과 작곡도 가르쳤다. 백남준은 뛰어난 음감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남보다 몇 배나 빨리 배웠다. 그러던 중 백남준은 유명한 작곡가 이건우 선생으로부터 정식 작곡 공부를 했다. 작곡에 흥미를 느낀 백남준은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12음 기법을 창안한 오스트리아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1874~1951)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이후 한국전쟁 발발 후 일본으로 이주한 백남준은 1952년 도쿄대학 문과부 입학 후 주로 작곡과 음악사를 공부하며 쇤베르크의 전위음악 세계에 더욱 심취한다. 이는 그의 대학 졸업논문이 '아르놀트 쇤베르크 연구'인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1956년 대학을 졸업한 백남준은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위해 독일 유학길에 오른다. 뮌헨대 및 쾰른대 등에서 서양의 건축, 음악, 철학 등을 공부한 그는 프라이부르크 고등음악원으로 옮겨 볼프강 포르트너 교수에게 배우게 된다. 백남준은 1958년 독일 다름슈타트의 국제 신음악 하기강좌에서 존 케이지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 현대음악의 마르셸 뒤샹, 존 케이지(1912~1992)
존 케이지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작곡가이며 전후 아방가르드의 대표 예술인이었다. 미국의 작곡가로 H. 카우엘과 A. 쇤베르크에게 작곡을 배운 존 케이지는 1952년 독일의 도나웨신겐에서 개최된 현대음악제에서 '4분 33초'라는 작품을 발표, 음악에 우연적 요소를 도입해 유럽 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4분33초'라는 곡은 지난 2008년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도 등장한 바 있다. 공연장에서 4분33초 동안 일어나는 관객들의 소리(우연성)를 바로 '음악'으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연주회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 소음은 물론 침묵까지도 음악으로 인정할 만큼 파격적이다. 이때 청중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음악에 참여하는 동적인 주체가 돼 열린 음악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이런 존 케이지의 최초 시도 이래 오늘날까지 우연성이나 불확실성은 작곡기법의 하나로서 널리 채용되고 있다.
# 존 케이지, 그 이후
존 케이지와의 우연한 만남은 백남준이 선불교, 신음악에 대한 관심을 전위미술로 확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의 자유로운 음악적 실행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그는 1950년대 말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한 독일 라인지역 음악 퍼포먼스의 장에서 '아시아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앨런 카프로)라고 불릴 정도의 탁월한 퍼포머로 활약했다. 1959년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에서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는 물론이고, 바이올린을 파괴하거나(바이올린 솔로)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버린 퍼포먼스(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1961년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음악 퍼포먼스 '오리기날레'에서 머리와 넥타이로 잉크를 묻혀 두루마리에 흔적을 남기는 독특한 퍼포먼스 '머리를 위한 선'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배경으로 1960년대 초반 조지 마키우나스, 요셉 보이스 등과 플럭서스 활동을 전개하는 동인이 됐다. 다다이즘에 영향을 받은 플럭서스는 이벤트와 퍼포먼스 그리고 음악에 주력했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렇듯 질식할 것 같은 당시의 음악에서 존 케이지를 통해 백남준은 돌파구를 찾아냈다. 이후 존 케이지의 사고는 후에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백남준은 케이지식 서양적 동양사상이 아니라 동양인이 체득한 삶과 사유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비디오작업에서 훨씬 동양적 사유를 고양시키게 된다.
# 음악과 비디오의 만남, 시너지
이렇듯 백남준은 비디오아티스트가 되기 전 작곡가이자 퍼포머(Perfomer)였다. 19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열린 자신의 첫 번째 전시이자 비디오 아트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도 음악을 보여주려는 그의 시도에서 비롯됐다. 특히 첼로 연주자이자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 기획자였던 샬럿 무어먼과 함께 한 비디오 아트와 음악을 혼합한 퍼포먼스는 큰 반향을 불러왔다. 1967년 음악에 성적인 코드를 집어넣은 백남준의 '오페라 섹스트로니크'에서 샬럿 무어먼은 누드 상태로 첼로를 연주하다가 뉴욕 경찰에 체포되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 공연으로 인해 예술 현장에서 누드를 처벌할 수 없다는 법 개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TV 첼로', 'TV 침대' 등등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퍼포먼스를 결합한 많은 활동을 전개했다.
1970년대 중반 백남준은 작곡에 대한 그의 생각을 남겼다.
"미국인들은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기에 매초마다 즐거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은 바로 이런 부유한 태도 때문에 길고 지루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루한 음악을 작곡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가난한 나라 출신이고 나 자신도 가난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을 매초마다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글┃이준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