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연상호
주연 : 양익준, 오정세, 김혜나, 박희본
개봉일: 2011.11.3. 목. 청소년관람불가
별점:★★★★★★☆(6.5/8개 만점)
'지금까지의 애니메이션은 잊어라'.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최초 잔혹 스릴러를 표방한 '돼지의 왕'은 기존 가족극 위주 애니메이션과는 궤를 달리한다. 첫 장면부터 다소 수위높은 충격적인 살인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애니메이션은 상영 내내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때론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 작품은 스스로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아키라'(1988)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재패니메이션 마니아 연상호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데뷔작. 디스토피아를 다룬 허무주의의 결정판이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일까. 우리 사회 암울한 속내를 스스럼없이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헤집어놓는 솜씨는 기존 국내 작품들에서는 보지 못했던 해부학실의 청개구리처럼 김이 모락모락나는 신선한 시도로 보인다. 또 현실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놓은 듯한 거침없는 표현은 국내 애니메이션의 스펙트럼을 한 뼘은 더 넓힌 것으로 평할 만하다.
영화는 사회의 축소판 무대로 중학교를 설정, 사랑받기 위해 사는 개와 잡아먹히기 위해 사육되는 돼지라는 이분법으로 구성원을 나눈다. 돼지와 개로 대변되듯 학창시절, 학교에는 힘을 무기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부류가 있게 마련이다. 사회에서도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구성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듯 학교에서 이런 관계가 연습되고 재생산된다. 영화에서는 이런 두 개의 세계관으로 속속 재편되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치밀하게 따라간다. 게다가 영화는 나약한 인간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그들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연상호 감독의 전작인 단편 애니메이션 '사랑의 단백질'(2008)에서 호흡을 맞췄던 독립영화계 스타감독 '똥파리' 양익준과 '퀵'(2011), '쩨쩨한 로맨스'(2010) 등을 통해 개성있는 연기를 선보여 온 배우 오정세가 각각 정종석, 황경민의 목소리를 맡았다. 전문 성우가 아니라 처음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다소 어색하다. 하지만 리얼한 스토리 전개에 빠져들다 보면 이런 생생한 날 것의 목소리가 만화가 아닌 실사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다만 세상을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게 그리는 동화적 세계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어두운 사회의 일면을 기괴하게 묘사한 장면들이 혐오감과 거부감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이런 모습이 전혀 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은 어찌할 것인가.
올해 애니메이션으론 드물게 예고편이 연속 반려되며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소개 당시 온라인 예매가 44초 만에 매진되는 등 이슈를 불러온 이 작품에 애니메이션 마니아층은 어떻게 반응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