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예술은 한 판의 강신무와 같다. 백남준은 미술가보다는 생활이나 존재 자체에서 저절로 예술이 우러나오는 놀이꾼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지 모른다. 그래서 백남준 예술은 굿으로 볼 수 있다. 굿은 현대적 개념으로 보면 퍼포먼스와 설치의 결합이다.
1984년 한국에 귀국했을 당시 백남준은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굿장이라고 표현했다. "예술은 매스게임이 아니에요. 페스티벌이죠. 쉽게 말하면 잔치입니다. 왜 우리의 굿 있잖아요. 나는 굿장이에요. 여러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도록 부추기는 광대나 다름없지요."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듯 1990년 서울 사간동 현대 갤러리 뒷마당에서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진혼굿을 실제로 치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꾸준히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굿이다. 이번에는 굿을 통해 백남준 예술의 사상적 배경을 쫓아가 본다.
# 예술적인 영감으로서의 굿
백남준은 어릴 적 굿에 대해 또렷하게 기억했다. "매년 10월이 되면 어머니는 1년 액을 때우기 위해 무당을 부른다. 24시간 해프닝이 된다. 혼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밤에 이루어지는 예술, 그것도 그녀의 예술이 된다. 무당은 돼지머리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고 춤춘다. 그 리듬은 중국 아악 리듬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의 리듬은 싱코페이션이 있는 삼박자로 3박자, 5박자, 7박자로 이어지는 홀수가 많다. 내가 작곡하면 거의 3박자, 5박자가 되던 것은 결국 한국의 미술, 그 중에서도 민중의 시간예술, 춤, 무당의 음악에 가까운 것이다."
백남준의 부인 구보다 시게코는 백남준이 한국의 샤머니즘을 예술적인 영감을 얻는 소재로 적극 활용했다고 말했다. 백남준은 생전에 부인 구보다 시게코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의 선도 좋지만 한국의 샤머니즘에 비하면 무척이나 따분하지. 한국의 무당이 훨씬 창의적이라고."
하지만 그의 뒷말을 보면 굿은 백남준에게 소재 이상의 특별한 가치를 지녔다. "한국의 무속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한마디로 소통이야.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지.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한국의 무속은 따지고 보면 세상의 시작인 셈이지."
프랑스 파리 8대학에는 백남준에 대한 강의가 개설되어 있다. 장 폴 파르지에 교수는 "어려서부터 굿에 익숙했던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품고 있는 백남준이, 굿이 추구하는 소통의 세계를 현대에 구현해 내는 것은 무당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바 있다.
# 한판 강신굿으로서의 백남준 예술
그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스스로 주장했다. 이 발언은 세계인과 세계주의를 표방한 말이기도 하지만 민족의 원류에 대해 그 흐름을 잃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선언이기도 하다. 세계 속에 나아가려면 먼저 민족을 돌이켜 보게 되고 동시에 세계인으로서 적응을 도모해야 하는 쌍방의 제스처가 필요하다. 한국인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퍼포먼스, 즉 가무를 좋아한다. 우리의 가무는 또한 하늘에 대한 제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가 민족을 떠올리면서 가장 먼저 기억을 회복한 것이 '굿'이라는 놀이였다.
그의 예술은 한 판의 강신무와 같다. 백남준은 미술가보다는 생활이나 존재 자체에서 저절로 예술이 우러나오는 놀이꾼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지 모른다. 그래서 백남준 예술은 굿으로 볼 수 있다. 굿은 현대적 개념으로 보면 퍼포먼스와 설치의 결합이다. 그리고 그의 비디오아트는 일종의 '비디오 굿'으로 볼 수 있다. 음악에서 미술로, 미술에서 행위예술(퍼포먼스)로, 행위예술에서 비디오아트로 전전한 그에게 비디오는 '굿'을 전달하는 매체일 뿐이다. 그는 비디오아트라는 보자기에 모든 사물을 집어넣었으며 이들 이미지는 커다란 양푼에서 섞이는 비빔밥처럼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일깨웠다. 백남준은 이렇듯 음악이나 미술뿐만 아니라 예술계 전체의 기존 영역에 대한 개념과 질서를 무너뜨렸다. 문자의 시대를 대체하는 이미지의 시대를 맞이한 그는 소외되기 쉬운 인간의 소중함을 하늘과의 소통에서 구했던 것이다.
이미 백남준은 초기 예술부터 모든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는 현상을 목도할 수 있다. 미술과 음악이 서로 외연을 넓히면서 두 파문이 만나 이뤄지는 공명처럼 새로운 커다란 장르로 포용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비디오아트는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문학을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종합예술인 것이다.
사실 퍼포먼스 자체는 미술의 한 장르 혹은 형식에 불과하다. 이에 앞선 그의 퍼포먼스도 서양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백남준의 퍼포먼스에는 영혼의 속박에 저항하는 몸부림과 구원을 갈망하는 눈빛이 담겨 있었다. 해프닝의 천재 백남준은 우연과 만나는 절호의 기회로 퍼포먼스를 활용했다. 해프닝은 순간의 절대성에 다가가는 도구이자 그의 천재적 광기를 표출하는 매개체였다. 퍼포먼스를 '굿'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백남준은 장르를 초월한 원시축제와 같은 종교적인 속성을 가미했다.
'굿'은 처음부터 어떤 형식에 박제된 것이 아니라 하늘과 소통하는 일종의 제의적 행위를 통틀어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백남준의 예술은 이걸 실현하기 위한 노정이었다.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그 위에 현대 선불교를 입힌 그의 비디오아트는 텔레비전 모니터를 통해 유한한 인간존재를 뛰어넘어 영원의 표상인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끊임없는 몸부림이었다.
/글┃이준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