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경기 전반을 조율하는 '키플레이어'들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하고 엇박자 조직력을 드러내며 무너졌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 15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의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B조 5차전 레바논과의 원정 경기에서 1-2로 졌다.
전술과 경기력, 경기 흐름 등 모든 측면에서 상대에 끌려 다닌 경기였다.
지난 11일 아랍에미리트(UAE)와의 4차전에 이은 중동 원정 2연전의 빡빡한 일정과 적진에서 경기하는 부담감, 좋지 않은 잔디 상태 등 열악한 조건을 탓하기 어려운 정도로 완벽한 패배였다.
이번 레바논과의 경기는 최종예선을 일찌감치 결정짓는다는 목표 외에도 컨디션 난조로 이번 중동 원정에서 빠진 기성용(셀틱)과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박주영(아스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실험에 의미가 있었다.
조광래 감독은 UAE전에서처럼 중앙수비수 홍정호(제주)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렸고 이용래(수원)는 왼쪽 풀백으로 세웠다.
공격진은 이근호(감바오사카)를 정점으로 이승기(광주)-서정진(전북)을 좌우날개로 배치하고 섀도 스트라이커 겸 공격형 미드필더로 손흥민(함부르크)를 내보내는 등 변화를 줬다.
하지만 이 같은 시도는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중원 조율의 임무를 맡은 홍정호는 수비적 역할은 일정부분 해냈지만 패스 등 공격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허점을 드러냈고 구자철(볼프스부르크)도 패스의 정교함이 떨어졌다.
공격진에서는 UAE전에서 활약한 손흥민과 이승기(광주)가 처음 선발로 나서며 기대를 모았지만 손발이 맞지 않았다.
이근호와 서정진이 몇 차례 공격 기회를 엿봤지만 단 이틀 연습 후 실전에서는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다 보니 계속 엇박자를 연출하고 말았다.
후반 들어서 손흥민·서정진 대신 지동원·남태희를 투입하고 후반 중반에는 윤빛가람이 홍정호를 대체하면서 조금씩 경기력이 살아났지만 수차례 득점 기회를 놓쳐 아쉬움을 남겼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중원에서는 홍정호, 공격진에서는 손흥민이 경기 리듬과 패스 방향 등 전반적인 완급을 조율하는 역할을 해줘야 했는데 부진했다. 측면의 이승기와 서정진도 상대의 거친 수비를 제대로 뚫지 못해 경기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고 분석했다.
이어 "후반에 선수교체는 잘 됐다고 본다. 패싱플레이가 살아나는 등 경기 내용도 전반보다는 좋았는데 결정적인 골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며 "무엇보다 상대의 페이스에 완전하게 말린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김대길 KBS N 해설위원도 "전후반 내내 조직력이 완전히 와해됐다. 중원에서나 공격진에서나 조광래 감독이 원했던 축구가 전혀 나타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은 또 "미드필드에서 유기적인 움직임이나 세밀한 패스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처럼 패스가 계속 끊기는 상황에서 차두리·이용래 좌우 윙백마저도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해외파 선수들의 컨디션에 대표팀 경기력이 크게 좌우되는 문제가 레바논전 패배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
신문선 교수는 "한국은 해외파 의존도가 아주 높은 팀인데 이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해 경기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전부터 계속 우려를 낳았던 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몇몇 포지션은 여전히 세대교체 중인데 박지성·이영표의 빈자리를 아직 채우지 못한 것은 감독 책임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다"라며 "이러한 여러 문제점을 극복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길 위원은 "오늘 경기는 조광래 호의 불안요소인 해외파 의존 문제가 단적으로 드러난 경기다. 대부분 해외파인 주전들의 경기력이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야 하는데 K리그마저 휴식기에 들어가 국내선수를 점검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잦은 포지션 변경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팀 전력이 아직 안정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최종예선을 바라보고 안정된 스쿼드와 전술로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펼쳐야 하는데 그 시점이 늦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