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하루는 정신이 없다. 아침 일찍 눈을 뜨고, 출근을 하고, 격무에 시달리다 밤 늦게 퇴근해 다시 눈을 붙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같은 일상의 틀에 어느새 익숙해진 채 살아가기에만 바쁘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는 삭막하기만 하다. 이런 도시 속에 작은 공간 '온고재(溫故齋)'는 삭막하기만 한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논어'와 '맹자' 등 고전을 통해서다.
■ 현대판 서당 '온고재'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의 한 오피스텔에 자리잡고 있는 온고재에선 매주 서너 차례 고전강의가 진행된다.
도심 한복판에서의 글공부. 옛 서당의 진화된 모습인 듯싶다. 온고재라는 이름도 '옛 것에서 새로움을 찾는다'는 뜻의 '온고지신'이라는 논어의 글귀에서 따왔다.
그리 넓지 않은 이 자리에 매번 10여명의 시민이 알음알음 모여 '논어'와 '맹자', '사기' 등 고전을 읽으며 그 의미를 되새긴다.
벌써 2년이 넘었다. 최근엔 이를 기념하기 위한 조촐한 기념식도 가졌다.
'그동안 살아가며 소홀히 해 왔던, 동서양 우리 선조님들의 온갖 고뇌와 진지한 성찰이 담겨있는 고전들을 이 시대에 이곳 인천에 다시 끄집어내 보겠다'는 게 온고재의 첫 시작이었다.
사람들이 점점 물질의 노예가 돼 가는 현실에서 고전과 철학을 공부하며 '자신', '나'를 되찾아 보자는 뜻이 컸다.
'논어'와 '맹자' 등이 강의의 주된 내용이다. 논어는 보통 10개월, 맹자는 1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40대 이상 시민들이 주로 찾아 약간의 수강료를 내고 강의를 나눈다.
온고재의 공부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때론 음악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리스 철학도 함께 공부한다. 자본론과 러시아, 프랑스 혁명사 등에 대한 내용도 다뤘다.
인문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다. '금강경'을 공부할 땐 어디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수강생도 있어 강의 진행이 힘들 때도 있었다고 한다.
■ '사람'을 찾는 온고재
온고재를 이끌고 있는 훈장 이우재(54)씨. 그는 지금의 세상이 '사람'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는 "1970~80년대엔 살기 힘들어도 가족과 함께 식사를 나누고 자식들은 부모를 기다리며 소소한 행복을 느꼈지만 지금은 물질적으로는 그 때에 비해 훨씬 풍족한 삶을 누리면서도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오히려 줄었다"며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나'를, '자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논어 등 고전을 읽는 것은 다른 시각으로 나를 보고, 나의 삶을 회고해 보며 내 인생의 의미를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나를 잃은 채 정신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현실에서 고전은 더 이상 퀴퀴한 것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 빛나는 보물인 것이다.
2년 전 온고재의 발원문은 '현실이 아무리 변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사람인 이상 선조들의 고민과 우리의 고민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이념도 이념이지만 '사람'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이념이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또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람 개인의 특성은 인정됐지만, 보편적 의미의 사람은 무시되고 있다고도 했다.
큰 회사의 회장과 길거리 노숙자의 사회적·경제적 차이는 모두가 인정하지만 이들 모두 결국 사람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고려되지 않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 "논어·맹자는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
이런 현실에서 논어·맹자 등 고전은 사회의 길을 제시하는,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자 지침서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자기를 돌아보는 기회를 찾자는 것"이라며 "월급봉투에만 욕심을 내 온 자신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자신'을 찾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그는 물질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얘기한다.
그는 "자기를 살아야 합니다. 대부분은 돈을 좇다가 망가집니다. 이건 딱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사는 게 아닙니다. 기본적인 물질이 갖춰지면 그 이상의 상황에선 물질의 많고 적음이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물질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물질의 노예가 돼선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도심 한복판 평범한 오피스텔. 하지만 그 안의 온고재는 바쁜 일상 속에 쉼표 하나를 찍는 여유와 나를 돌아보고, 자신을 찾아보는 특별한 기회를 갖게 한다.
/이현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