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바다' 인천, 더 나아가 '냉전의 마지막 무대'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가능한 것인가.

경인일보는 2011년 연중기획 '세계의 戰場 인천, 평화를 말하다!'를 통해 전쟁의 상처와 평화의 가치를 되새겨봤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오늘날 인천 서해 5도 해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북 간 무력 충돌의 원인은 무엇이고, 이를 극복해 나가기 위한 방안은 어떤 게 있는지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국내외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은 각기 분쟁의 원인과 현 정부의 대북정책 등을 놓고 극명한 시각차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남북 간 교류 확대 필요성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주변 강대국들의 역할에 대해선 비슷한 주장을 폈다. 또 인천이 남북 간 갈등 해결은 물론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구축해 나가는 데 교두보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태균 교수와 유호열 교수, 최진욱 소장, 도널드 커크 기자는 대면 인터뷰를 했다. 일본의 저명한 한국전쟁 전문가 와다 하루키 교수는 지난 11일 이메일 인터뷰를 실시했고, 일본어 번역은 함태영 인천문화재단 정책연구팀 과장이 맡아줬다.

 
 
 
■인천 서해 5도 해상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화약고'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는 민감하다. 어떻게 보나.

-박태균=NLL은 정전협정 체결 당시 해상경계선에 대해 전쟁 당사자인 공산군과 유엔군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결과다. 지금으로서는 남한과 북한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조차도 NLL을 대체할 해상경계선을 새로 만들 의지가 없어 보인다. 북한은 그동안 분쟁을 일으켜 내적 통합을 추구하고 미국과 중국의 관심을 얻으려 했다.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도 그랬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1999, 2002년 서해교전(제1, 2차 연평해전)과 2006년 북한 핵 실험이 있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위기가 올 것이다. 북한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또 어떤가.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보다는 북한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만 취하고 있다. 남북 모두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약하다.

-유호열=NLL은 남북 간 해상경계선 역할을 해왔다. 분쟁의 1차적인 책임은 북한에 있다. 북한이 끊임없이 군사적으로 도발하고 있는 것은 내부 결속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김정은 후계구도 아래 군 지도부의 충성 경쟁에서 불거진 것일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NLL을 국제적으로 분쟁 수역화하고, 남한 내 이념 갈등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와다 하루키=고(故) 이영희 교수의 연구에 따라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에서는 서해안 해상에 양방이 합의해 설정한 '경계선'은 한강과 예성강의 합류점에서 우도까지이며, 5개의 섬은 유엔군 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놓이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그 밖에 이 해역에는 어떠한 경계선도 설정되지 않았으며, 합의도 없이 '북방한계선'은 인정됐다. 따라서 서해는 분쟁 중인 해역이며, 긴장이 계속된 해역이었던 것이다. 북측은 5개 섬은 한국의 것이지만, 주변의 바다는 자신들의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무협정의 상태로 쌍방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상태에서 연평도 포격이 발생한 것이다.

-최진욱=NLL 때문에 인천 앞바다에서 교전이 일어났다는 것은 북한의 핑계에 불과하다. 애매한 NLL을 북한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NLL 때문에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학자들의 편향된 시각이다. 정전 상태이기 때문에 불안한 것도 아니다. 객관적으로 남북 간 신뢰가 없는 것이고, 체제 경쟁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도 끊겼다. 이런 것이 없다 보니 상실감, 내부적 불안감이 생긴 것이다. 북한이 잘살고 있다면 분쟁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 북한이 미국을 압박하고 남한 정치에 개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널드 커크=서해 분쟁의 원인으로 NLL을 꼽을 수밖에 없다. NLL은 경제적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고 이 곳을 계속해 드나드는 이유다. 그러면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유엔군이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과 상의 없이 NLL을 설정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 곳을 다시 정리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NLL은 유지하되, 어업권을 일부 양보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북한과 협의를 해야 한다고 본다.

 
 
 
■남북 긴장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한국전쟁의 완전한 종식을 선언하는 평화협정은 가능한 것인가.

-박태균=남북한 불가침과 교류협력 등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가 1991년 체결됐다. 하지만 김일성이 사인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효력의 문제가 있었다. 남한에서도 반발이 있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2007년 남북 정상은 10·4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서해 협력지대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 평화 공동어로 수역을 만들어 NLL 등 서해상에서 벌어지는 남북간 무력 긴장을 막자는 중요한 합의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10·4선언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있는 정전협정조차도 지금은 작동을 안 한다. 정전협정 이행을 감시하는 중립국감독위원회와 군사정전위원회가 철수한 상태다. 게다가 북한은 2009년 정전협정을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영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협정이 필요하다. 현 상황에서 그것이 힘들다면 과거 정전협정을 다시 복원시키든가, 아니면 10·4선언에 포함된 서해 관련 조항만이라도 되살려야 한다. 6자 회담 등 다자간 안보 협력기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일차적으로는 전쟁 당사자인 남한과 북한,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는 4자 회담을 통해 한반도를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유호열=평화협정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 간 입장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전협정은 한시적인 것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미국도, 중국도 마찬가지다. 4자 회담도 휴전상태인 한반도에 평화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사전 조치 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고, 미국과 중국이 보증하는 형태의 합의가 필요하다. 해상경계선, 남북 군축문제 등이 다뤄져야 한다. 2007년 정상회담 때도 서해 평화지대 방안이 논의됐다. 국방부장관급 회담이 열렸으나 서로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이후 정권교체까지 이뤄지면서 그와 관련한 협의가 중단됐다. 남북은 주변국, 그러니까 6·25전쟁 참전국들의 참여와 보증 아래 다시 대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양측이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와다 하루키=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노무현·김정일)의 선언 가운데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의 설정 등을 꾀하는 것이 거론됐지만, 그것이 '환영'으로 끝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국전쟁의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이미 한국전쟁의 북측 참전국 중국은 남측의 유엔군 참가국 16개국(한국 포함) 모두와 외교관계를 수립해 화해한 상태이다. 북측의 본래 참전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13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남은 것이 프랑스, 미국, 한국 등이다. 따라서 평화조약문제는 미국·한국과 북한과의 문제이다. 과거 11년간 한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크게 바꿔왔지만,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변화가 없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남북관계를 전진시키는 노력을 기울여도 상황은 기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연평도 포격이 가리키고 있는 것도 이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진욱=북한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고립을 하고 있다. 핵 문제도 그렇다. 햇볕정책은 시혜적인, 퍼주기 정책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 정책은 또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퍼주기 정책'이라는 지적은 양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와 북한의 자세가 문제였다. 햇볕정책이 좋은 정책이고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지만 북한의 변화를 과장되게 얘기하고 정치화했다. 국제적 시각에서는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민족적이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가장 큰 잘못은 북한에 있다. 북한체제의 속성 때문이다. 공동어로수역 설정 등은 좋은 아이디어 같다. 남북 서로에게 이익이다. 하지만 앞서 나가는 측면이 있다. 남북관계는 초보 단계다. 5개 단계가 있다면 1단계에도 못 미치고 있다. 현재는 긴장관계다. 남북이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야 한다. 전문가나 사업가들이 제시하는 아이디어는 신뢰가 쌓이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지금 초보 단계에서 기대치가 높으면 안 된다. 신뢰를 쌓아야 한다. 남북이 합의한 것을 지켜 나가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널드 커크=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에 여러 차례 양보(concession)를 했지만 문제가 풀린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협약도 지켜졌을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국제법적으로 강제력이 있는 어떠한 협정을 맺더라도 북한과의 긴장관계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꾸준한 대화와 교류만이 긴장을 풀어나가는 수단이라고 본다.

■ '분쟁의 바다'가 된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거기에 인천의 역할이 있다면.

-박태균=인천, 개성, 해주가 연결돼야 한다. 이 삼각지대는 경제적으로 보면 개성에서 만든 물품을 해주와 인천을 통해 해외로 수출하는 통로가 된다. 이 삼각지대는 앞으로 한반도 평화와 번영, 그리고 국제화를 상징하는 통로가 돼야 한다. 인천이 지자체 차원에서 남북간 교류의 물꼬를 트는 연결망 역할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중국을 잘 엮고 들어가야 한다. 안으로의 삼각평화(인천, 해주, 개성), 밖으로의 삼각평화(남한, 북한, 중국)가 필요하다. 인천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열린 도시다. 그래서 분쟁의 소지가 많지만, 뒤집어 보면 그만큼 평화로 가기 위한 역할이 큰 것이다. 청일·러일전쟁이 인천 앞바다에서 벌어졌다. 인천은 또 월미도 상륙작전이 있었던 한국전쟁의 상징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 평화의 관점에서 월미도 일대에 흩어져 있는 과거의 역사를 한데 묶어 개발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강화도도 중요하다.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이다. 개인적으로 고려시대 전시 수도가 됐던 강화도의 역사를 좋게 보지는 않는다.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비굴한 역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 교류 측면에서 고려시대 수도 개성과 강화도를 엮는 역사 답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인천이 낳은 인물이자, 인천의 평화코드와 맞는 조봉암을 재조명하는 것도 미래의 평화 도시, 인천을 만드는 데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조봉암은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를 감안하면)이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봉암이 왜 그런 지지를 얻을 수 있었겠나.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이승만의 북진통일은 다시 북한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었다. 전쟁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또다시 생존권을 위협받는 일이었다. 조봉암의 표는 전쟁을 반대하는 민심이 반영된 것이다. 인천은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 지역 출신 정치인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조봉암은 1959년 간첩 혐의로 처형됐지만 올 초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더 이상 냉전적인 사고 속에서 조봉암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유호열=인천은 남북간 육상과 해상 경계가 만나는 지점이다. 분쟁이 발생할 때 가장 위험한 지역이다. 따라서 그만큼 평화구축이 절실한 지역이기도 하다. 개성공단으로 남북간 육상이 연결돼 유지되고 있지만 범위를 넓혀 교류를 보다 확대해야 한다. 남북 교류의 배후도시로 인천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개성공단이 육로로 남북을 잇는 한 축이라면, 물류의 중심인 인천에서 서해상을 통해 북한 황해도 내륙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인천은 또 중국과도 밀접한 지역이다. 인천은 남북이 해양과 육상으로 접하는 두 가지 성격이 동시에 있다. 6·25 등 과거 전쟁에서 보듯 인천은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충돌하는 접점이기도 하다. 인천은 새로운 평화의 도시, 남북간 교류 협력의 배후도시로 부각될 수 있다. 미국과 중국 등 관련 국가들이 교류하고 협력하는 장소로도 역할할 수 있다. 인천을 평화의 도시 이미지로 부각시키는 작업도 중요하다. 과거 인천이 서울의 관문으로 여러 분쟁이 일어났던 곳이었다면 이제는 교류와 협력, 평화를 모색하는 곳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앞서 말한 대로 서해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고 주변국과 함께 협력해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만큼 인천의 역할이 큰 것이다. 인천이 중심이 돼 경기도와 강원도 등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지역들과 함께 북한과의 교류방안을 논의하는 지방정부 협의체를 만들었으면 한다. 또 인천에 있는 대학들과 연계해 북한 전문가 양성 구상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와다 하루키=서해문제는 물론 남북의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 관계의 정상화없이 남북관계의 이 이상 개선은 바랄 수 없다. 물론 그 밖에 한국전쟁의 준참전국 일본의 문제가 있다. 일본과 북한 관계의 정상화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들 문제의 해결이 서해 평화의 전제라고 생각한다.

평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남북합의가 탄생하면, 인천은 남북한, 중국과의 평화적인 관계의 중심에 설 터이다. 나아가 동북아시아 전체의 중심도시도 될 수 있다. 일본의 조선침략은 언제나 인천을 경유했다. 그 역사를 완전히 과거의 것으로 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인천의 역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리 되기 위해서는 우선 한반도,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진욱=인천은 접경지역이다. 인천항은 황해도 해주와 가깝다. 인천은 남북 물류기지 구실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천이 북한과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북한은 중앙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인천 앞바다가 평화구역이 된다고 해서 남북 분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업비나 범위가 큰 사업보다 남북 사람이 많이 오가는 프로젝트가 좋을 것 같다. 프로젝트나 아이디어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순간 신뢰가 쌓이면 여러 사업들이 가능할 것이다. 무엇을 북한에 주는 것이 안심이 아니라 작은 약속이라도 지켜서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도널드 커크=서해가 '평화의 바다'가 되는 기본은 대화와 교류다. 다만 대화와 교류를 하면서도 군사력은 단단히 무장해야 할 것이다. 교류와 무장을 같이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계속해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때 취재차 처음 한국에 왔다. 그때도 평화적인 무드가 조성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물론 지금의 한국은 많이 달라졌지만 대북관계와 관련된 이슈는 여전히 같다. 6·15, 10·4선언 이후에도 아무 것도 바뀐 것은 없다. 나는 이것이 쉽게 풀릴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의 창구로 금강산이나 개성은 필요하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햇볕정책은 찬성하기 어렵다. 내가 쓴 책 '김대중의 신화'에서 김대중의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을 많이 했다. 나는 이게 인기영합주의(Populism)라고 본다. 그는 대중 앞에서 평화를 말하고, 웅장한 연설을 했지만 실제로 바뀐 것은 없었다. 혹자가 연평도와 천안함 사건이 이명박 정권이 강력한 대북정책을 써서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도 서해에서 분쟁은 계속해 일어났다. 북한은 계속해 도발을 할 수밖에 없다. 1·2차 연평해전부터 연평도 포격사건에 이르기까지, 동해에서 잠수함 침투사건이 일어난 것을 제외하면 해상에서 일어난 도발은 서해가 무대였다. 인천은 국가 안보상 매우 중요한 곳이다. NLL을 조정한다면 인천의 여러 섬을 내줄 가능성이 크다. (최근)연평도 포격 1년을 맞아 연평도와 백령도 등지를 돌아봤다. 계속해 건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많은 것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계속 살 수 있게 하려는 행동이 필요하다.

인천은 북한과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인천공항에 평양을 잇는 비행편이 생기고, 백령도에서도 북한을 오가는 페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교류에 상업적인 면이 더해지면 좋겠다. (인천시가 중국 단둥에 북한과 함께하는 축구화 공장을 건립했다고 하는데, 그것은)매우 흥미롭다. 지방 정부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시도로 보인다. 이렇게 계속해 교류를 해야 한다. 나는 다만 '어리석은 양보(Stupid Concession)'는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 분단 상처 아물게될 그 날은… 2005년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한 아픔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을 찾고자 '이산가족 찾기'를 신청한 남한 사람은 지난 10월 말 현재 12만8천637명이다. 이들 중 생존해 있는 사람은 8만56명이다. /경인일보 DB
■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세계 열강들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경쟁이 치열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안은 어떻게 찾아야 하나, 그리고 앞으로의 국제정세를 전망한다면.

-박태균=노무현 정부는 외교적 측면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했다. 미국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표현에 있어 미국과 중국의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다소 허황된 얘기를 한 것이 문제였다. 중국도 미국도 다 웃을 일이었다. 오늘날 경제적으로 보면 중국은 남한에 있어 제일 큰 무역 상대국이다. 군사·안보적으로는 중국이 북한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한중 관계는 멀리 봐야 한다. 중국과 북한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주 소극적인 방안이고 냉전시대의 발상이다. 미국과 중국을 적대적 관계로 보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두 국가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파트너다. 중국은 세계경제의 한 축이다. 중국이 흔들리면 미국도 영향을 받게 된다. 현 이명박 정부가 실용을 내세우지만 전혀 실용이 안 되고 있다. 환경, 질병, 인구이동 등의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한중 사이의 동맹이 강화돼야 한다. 전통적 개념의 안보 동맹과 유사한 형태일 수 있다. 지난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중미 관계와 한반도'를 주제로 열린 학술 세미나에 참가했다. 과거와 달리 중국 학자들이 겉으로 대놓고 미국과 남한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남한이 미국 중심적이고, 북한을 압박하는 봉쇄 정책을 펴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내년은 북한에 중요한 시기다.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강성대국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핵 실험 등을 통해 선군정치를 과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향적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며 평화적인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판문점과 육로가 과거 남북간 정전체제의 상징이라면, 앞으로는 인천~개성~해주를 잇는 서해가 평화체제의 상징이 돼야 한다. 인천이 살 길은 남북관계 개선에 있다. 평화를 알려면 먼저 전쟁을 알아야 한다. 전쟁에 의한 피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아야 평화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호열=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급성장하면서 서해상의 긴장은 더 고조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 군사력을 강화하면 미국이나 일본은 위기의식을 느낄 것이고, 새로운 군비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서해상은 한미동맹, 다시 말하면 한미연합 훈련이나 작전이 펼쳐지고 있고, 더불어 중국의 주요 함대가 활동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우리의 의도와 관계없이 서해 긴장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다자간 안보회의가 구축돼야 한다. 미중간 경쟁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공통의 이해관계를 모색하는 채널이 필요하다. 한중일 정상회의 등 여러 형태의 다자간 회의기구를 함께 묶어내야 한다. 동북아에서 특정 국가의 무력행사를 막을 수 있는 구조로의 전환이 모색돼야 한다.

-와다 하루키=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미국·북한 관계의 정상화, 일본·북한 관계의 정상화이다. 이 두 가지가 결여되어 있어 이 지역은 불안정하고 평화롭지 못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선행되면 남북관계는 결정적으로 전진할 수 있다. 6자협의도 동북아시아 공동의 안전보장을 위한 지역기구가 될 수 있지만, 그 전에 미·북, 북·일이라는 두 가지의, 두 나라의 관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최진욱=주변국들이 남북 긴장관계를 더 우려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는 미국 내에서, 중국 내에서도 논란거리다. 미국은 북한 문제로 중국과 싸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중국도 기본입장이 있지만 미국과 싸우려 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은 협력할 일이 많다. 한반도 때문에 미중 관계가 갈등으로 갈 것이라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미국도 중국이 북한을 다독거리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국도 북한 문제에 고민이 많다. 북한 안정화 정책이 남한과의 관계를 멀게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협력할 것이 많다는 것은 한반도에 다행이다. 나는 남북관계를 긍정적으로 본다. 긴장관계 속에 있지만 민족이나 종교 등으로 싸우고 있는 나라에 비하면 우리는 죽기 살기로 싸우려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적대 관계가 아니다. 평화는 우리가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앞으로 분단관리를 잘하면서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 목표는 통일이고, 통일에는 누구나 동의하는 것 아니냐.

-도널드 커크=세계 열강은 서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는 어렵다.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이해관계가 걸린 국가들의 의견을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6자회담이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겠지만 지금은 한반도의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전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이 평화를 위해 나아가기는 어렵다고 본다. 다만 한미간 관계는 계속 좋게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서 중국과 협력하는 것, 그것이 서해를 평화롭게 할 수 있는 방안이라 생각한다.

/목동훈·임승재·홍현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