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는 우리말을 다루는 천부적인 감각이 뛰어난 시인이다. 일본 식민지시대인 1915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난 미당은 2000년 12월 24일 눈을 감는다. 그가 살아온 시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미당은 일본 식민지시대를 거쳐 광복, 6·25, 4·19와 5·16 등을 거쳐 2000년까지 한국사에 있어서 가장 격동적이었던 시대에 살아 왔다. 친일문제, 군부독재와 유신독재 치하에서의 처신 등으로 인해 논란의 중심이 됐던 인물도 미당이다.

논란의 중심이 됐던 미당이지만 한국문학사에 있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을 떠나 한국 문학사에서 토속적이고 서정적인 그의 시풍에 영향을 준 질마재로 떠나 그가 거닐던 길을 거닐어 봤다.


"혼탁했던 시대 이곳의 맑은 기억, 미당 詩세계 큰 의미"

# 동생 서정태 시인이 말하는 미당

선운리 미당시문학관 곁에는 미당의 동생인 서정태(89) 시인이 거주하고 있다.

서정태 시인은 민주일보(民主日報), 대동신문(大東新聞), 삼남일보(三南日報), 전북신문(全北新聞) 등의 기자로 활동했으며 예술부락(藝術部落), 가정신문(家庭新聞) 등에 시를 발표했다.

그후 1949년부터 각 일간신문(日刊新聞) 및 문예(文藝), 백민(白民), 신천지(新天地) 등에 다양한 시를 발표했던 문인이기도 하다. 고창군과 미당시문학관 관계자의 소개로 찾은 서정태 시인은 8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하게 객지인을 반갑게 맞아 줬다.

홀로 지내고 있는 방안으로 손님을 안내한 서정태 시인은 미당이 8살이 되던 해까지 이곳 고창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서정태 시인은 "미당과 나는 8살 터울인데 한 방을 쓰며 성장했다"며 "선운리에서는 부안군 줄포면에 있던 줄포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살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미당은 천자문을 100일 만에 외울 정도로 지역에서는 신동으로 지냈다"며 "기억력이 좋은 미당이 혼탁했던 시대에 즐거웠던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던 선운리에서의 어린 시절은 미당의 시 세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서정태 시인은 "논란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의 시는 참 아름답다"며 "한국적인 시상을 그린 그의 작품을 그대로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화향기-질마재 신화에서

국화 향기 속에는 고향이 깔리네.
아내여 노자 없어 우린 못 가고
아들하고 딸한테 미뤄 당부한
고향의 옛 산천이 깔려 보이네.

국화 향기 속에는 열 두 발 상무.
한국의 멋쟁이 농부라야만
국으로 쑥으로 공짜로라도
하늘에 그만큼한 짱구머리 춤일세.

국화 향기 속에는 미어진 창호지.
그 사이 스며드는 서리 찬 바람.
약도 없이 앓으시는 우리 어머님
약 없이도 나을 거라 누워 계시네.

▲ 복원된 미당 생가.

# 미당 서정주와 질마재

미당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전라북도 고창 선운리 진마마을이다.

'선운리'. 지역명만 생각했을 때 선운리는 선운사라는 백제시대 천년 고찰이 있는 지역으로 생각하기 쉽다.

지금의 지형으로는 언뜻 이상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선운리는 옛 선운포구가 있던 곳을 말한다. 미당은 8살이 되던 해 미당이 줄포보통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가족이 부안군 줄포로 이사하기 전까지 살았다.

질마재의 '질마'는 소나 말의 안장을 뜻하는 '길마'의 사투리다. 질마재는 양쪽 언덕 사이에 있는 안장 같은 고개를 의미한다. 줄곧 외지에서 성장했던 미당이지만 그의 시 세계에서는 고향인 질마재가 뿌리깊게 자리잡았던 것 같다.

미당이 1975년 간행한 자신의 대표적인 시집의 제목을 '질마재'라고 지은 데서 알 수 있다. 이 '질마재'라는 시집에는 미당의 고향 마을 이야기가 담겨 있다.

▲ 미당시문학관 전경.

# 국화 향기를 그리며 거닌 질마재길

눈이 오는 날 미당의 생가와 그를 추모하는 미당시문학관을 방문하기 전 고창군 선운리 진마마을을 찾았다.

한겨울로 들어선 날씨 탓인지 마을 초입에 심어져 있는 국화꽃은 시들어 있었지만 마을사람들이 미당을 얼마나 그리는지는 마을 초입에서부터 미당시문학관, 생가 주변까지 국화를 심어 놓은 것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미당시문학관은 여느 문학관과 달리 시인의 업적을 늘어 놓지 않았다. 찾는 이들이 그의 시 세계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미당의 문학적인 업적을 늘어 놓기보다는 대표적인 시들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친일 행적으로 비판 받던 일본 식민지시대 당시 일본을 찬양했던 시와 군부독재시절 전두환씨의 생일을 축하하는 시까지 그대로 걸려 있다.


질마재로 가기 위해 미당시문학관을 나와서 오른편에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아스팔트길을 10여분 거닐었을 때 이정표가 포근한 황톳길로 안내했고 고즈넉한 숲길을 따라 거닐자 작은 재가 나왔다. 바로 질마재였다.

질마재는 예전 포구가 있었을 당시 마을 사람들이 해산물과 소금 봇짐을 지고 정읍이나 장성 장터로 가기 위해 이용하던 길이다. 질마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숲길로 들어서서 30분가량 발걸음을 옮기면 연기저수지의 제방을 따라 강바람을 맞으며 거닐게 된다. 연기저수지 밑에는 작은 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앞에는 풍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김종화기자

취재협조/고창군·미당시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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