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래 17년동안 남북한간 체육 교류는 중단없이 이어졌다.

특히 정치적으로 화해 무드가 조성된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 가장 활발한 교류가 이뤄졌다.

그중 가장 주목할 것은 국제대회에서의 남북한 선수단 동시 입장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시작으로 2007년 창춘 겨울 아시안게임 때까지 굵직한 국제 종합경기대회 개회식에서 남북한이 동시 입장한 것은 9차례다.

김 위원장은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분단 이후 처음으로 가진 남북정상회담에서 그해 9월 열리는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동시 입장하는 것에 합의함으로써 역사적인 물꼬를 텄다.

남북한 선수단은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서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깃발을 들고 전통 민요인 아리랑에 맞춰 함께 입장했다.

체육 분야에서의 이같은 화합 무드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대구 여름유니버시아드, 2004년 아테네올림픽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2002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 처음으로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했고,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과 대구 여름유니버시아드에서도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함께 입장하며 뜨거운 동포애를 나눴다. 선수단과 함께 한국을 찾은 북한의 '미녀응원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남북한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06년 토리노겨울올림픽·도하아시안게임, 2007년 창춘 겨울 아시안게임에서도 손을 맞잡고 화합의 행진을 펼쳤다.

그러나 남북한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단일팀 구성 직전까지 갔으나 선수 편성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아쉽게도 단일팀으로 출전하는 꿈을 접어야 했다.

8년 가까이 순풍을 탔던 남북한의 체육 교류는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군의 총격에 피살당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