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오죽헌에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태몽을 꾼 몽룡실(夢龍室)이 있다. 이곳에서 사임당은 33세 되던 해에 바닷속의 한 선녀가 옥동자를 안겨주는 꿈을 꾸고 아이를 잉태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사임당은 흑룡(黑龍)이 바다에서 침실쪽으로 날아와 문머리에 서려있는 꿈을 꾸고 셋째 아들인 율곡 이이를 낳았다. 이이의 아명은 태몽에 용이 보였다고 해서 현룡(見龍)이라 지어졌다'.

율곡 이이의 태몽이었던 '흑룡'의 해가 60년만에 돌아왔다. 영험함을 상징하는 동물인 용(龍)과 신성함을 나타내는 흑(黑)이 더해져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자녀 계획이 있는 부부들과 출산, 육아 관련 업체는 '아이낳기 좋은 해가 다시 돌아왔다'며 벌써부터 들썩인다. 혹자는 딸보다 아들을 낳아야 좋다고 하고, 흑룡띠의 기준이 음력 설부터인지 입춘부터 인지 설왕설래하기도 한다. 한편 흑룡의 해인 임진년엔 한국의 암흑기라고 할만큼 국가의 불운이 뒤따르기도 했다. 흑룡띠에 대한 갖가지 궁금증을 풀어보자.

■ 흑룡띠의 의미

흑룡띠는 '자·축·인·묘…'로 시작되는 12지와 '갑·을·병·정…'으로 시작하는 10간이 결합돼 만들어졌다. 10간 중 '갑·을'은 파란색, '병·정'은 빨간색, '무·기'는 노란색, '경·신'은 하얀색, '임·계'는 검은색으로 나뉜다. 이에 따르면 임진년은 '흑'을 뜻하는 '임'과 용을 뜻하는 '진'이 합쳐진 흑룡의 해가 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흑룡이라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는 청룡이나 백룡 등 다른 색의 용들과 우열이 나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한다. 특별히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으며, '개성이 강한 해'라는 것. 다만 12간지 중 유일하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인 용이기 때문에 변화무쌍한 조화의 상징이자 민중이 고대하는 좋은 미래 세계의 대명사로 해석되기도 하고, 뜻밖의 두렵고 놀라운 변고를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올해에는 나라의 큰 변화가 될 4월과 12월의 총선과 대선이 모두 치러지면서 격변이 예상되고 있다.

■ 흑룡띠에 태어난 아이는?

황금돼지띠와 백호띠에 이어 흑룡띠까지…. 자녀 계획이 있는 부부들 사이에서는 올해 또다시 베이비붐이 일고 있다. 그러나 올해에는 우렁찬 기운으로 세상을 호령한다는 흑룡의 해답게 딸보다 아들을 선호하고 있다. 흑룡의 해에 딸을 낳으면 기가 세지지만 아들은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속설 때문인데, 이로 인해 딸보다 아들이 더 많이 태어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흑룡의 해라고 해서 딸과 아들이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경기문화재연구원 최정준 박사는 "임진으로 괘를 지어보면 '천풍구' 괘가 되는데, 만난다는 뜻을 지닌 '구'는 계집 '녀'와 임금 '후'가 합쳐진 한자로 오히려 여자에게 좋은 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2012년 언제 태어난 아기부터 흑룡띠일까? 절기력을 구하기 쉽지 않았던 옛날에는 음력 1월 1일에 태어난 아이부터 흑룡띠라고 봤으나, 현재 한국에서는 입춘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입춘이 24절기 중 하나로 봄의 시작이자 한 해가 시작되는 절기로 보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에서는 24절기의 시작인 동지를 공식적인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는 등 나라와 때에 따라 기준이 바뀌기도 한다.

 
 
 
■ 불안한 흑룡띠 부모들

아무리 좋은 기운을 타고난 해라고 하지만 흑룡띠 자녀를 낳을 계획이 있는 부모들 사이에서는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황금돼지해에 태어난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아이들은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어린이집 입학까지 자리가 부족해 못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앞으로도 험난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황금돼지띠 아이의 부모들은 "지금까지도 힘들었지만 앞으로 남은 외고나 과학고, 대학 입시에서도 다른 아이들보다 더 치열한 경쟁에 시달려야 할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는 처지다.

게다가 흑룡띠를 노린 출산·육아 업계에서의 상술이 판을 치면서 흑룡띠 부모들의 불만도 커져가고 있다. 예비 엄마 김모(32)씨는 "아기 용품을 사러 다니다보면 용무늬가 들어간 제품을 더 비싼 가격에 팔고 있다"면서 "흑룡띠라고 해서 아이에게 좋을 줄 알았는데 벌써부터 손해만 보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 임진년, 흑룡의 해는 불운하다?

아무리 흑룡의 해라고 하지만 국가의 큰 불운이 매번 임진년에 찾아왔던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420년 전 지난 1592년 임진년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60년 전인 1952년엔 한국에서는 6·25가 한창이었다. 뜻밖의 놀랍고 두려운 변고를 뜻하는 용의 의미가 그대로 나타난 해였다.

그러나 올해는 윤월이 끼어있기 때문에 그 운수가 과거와는 다르다고 한다. 곡우 다음 날부터 소만 전일까지 3월이 한 번 더 들어있는데, 특히 음력 3월은 '진월'로 용의 해에 용의 달이 만난 달이다. 그야말로 쌍룡이 재회하는 형국인 것. 최 박사는 "윤월의 윤(閏)을 파자하면 문 한가운데 왕이 들어있는 상이다"면서 "좌우 일월 출입의 과불급을 한가운데서 조절한 것이 윤달이듯, 춘삼월이 되면 그동안 꺼려서 행하지 못했던 대사를 뜻한 바 대로 조화롭게 처리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