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동 지역과 영서 지역을 이어주는 대관령(大關嶺)은 해발 832m의 높은 고개다.
대관령(大關嶺)은 한자 뜻에서 알 수 있듯이 큰고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강원도 사람들은 대관령을 지대가 험난해 대굴대굴 구른하고 해서 '대굴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대관령의 총연장은 13㎞인데 고개의 굽이가 99개소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요즘 같이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대관령이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대관령 옛길은 예부터 영동과 영서지역을 잇는 중요한 길이었지만 1975년 영동고속도로의 개통과 2001년 대관령을 관통하는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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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이 거닐던 길
대관령은 영동고속도로가 개통하기 전 영동지역에서 서울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한 까닭에 대관령 옛길에는 선조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조선시대 강릉에서 배출한 대표적인 유학자인 율곡 이이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이용했던 길도 이 길이고, 신라의 명장 김유신이 무술을 연마한 장소도 이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친정어머니를 그리며 걸은 길이기도 하고, 송강 정철이 이 길을 거닐며 관동별곡을 쓰기도 했다. 조선시대 풍속화의 대가 김홍도의 대관령 그림도 이 대관령 옛길에서 그렸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 대관령 옛길은 사람들의 편리에 의해 개척된 새로운 길로 인해 잊히고 있지만 한적한 여행, 또는 한겨울 눈꽃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인기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대관령을 이야기하면 쉽게 떠오르는 풍경이 양떼 목장의 평화로움이다. 양떼 목장은 봄과 여름에는 푸른 초원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의 풍경이, 가을에는 석양이, 겨울에는 소복이 쌓인 눈이 여행객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대관령의 또 다른 볼거리는 눈꽃이다. 겨울 내내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는 대관령의 기후적인 특징으로 인해 겨우내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소복이 쌓여 있다. 여기에다 동해안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타고 날리는 눈이 길가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에 쌓여 있는 모습은 절경이다. 또 대관령에서 내려다보는 강릉 시내와 동해안 풍경은 여행객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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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령 옛길의 다양한 풍경
대관령 정상에 위치한 대관령휴게소 주차장은 선자령과 대관령 옛길을 이용하기 위해 찾은 여행객들의 차로 가득 차 있었다.
많은 여행객들이 대관령을 찾는 것은 이상 기온으로 내륙 저지대에서는 눈구경을 쉽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관령 옛길 트레킹은 눈 쌓인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겨울 산행시 사용하는 아이젠과 스패치를 반드시 착용한 후 시작해야 한다.
장비를 착용한 후 주차장 맞은편으로 이동해 양떼 목장 방면 길로 들어섰다. 대관령 휴게소를 찾은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풍력발전소가 있는 선자령 방면으로 가는 코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정표를 잘 보고 길에 들어서야 한다. 막상 길에 들어서면 갈림길에서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어 길을 잃어 버릴 염려는 없다. 양떼 목장을 지나 국사성황당을 지나면 통신탑 부근에서 한떼의 여행객 무리를 만나게 된다.
여행객들과 눈인사를 한 후 곧바로 이정표를 따라 내리막길로 들어서니 무릎까지 쌓여 있는 눈밭 사이에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길로 들어선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수북이 쌓인 눈 탓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하며 나무들 사이로 난 작은 길을 한참 거닐면 반정에 도착한다.
반정과 옛 주막터 사이에는 경사가 심해 긴장하기도 하지만 길가 중간중간에 설치되어 있는 작은 안내판에 적혀 있는 대관령 옛길과 강릉에 대한 글귀들이 지루하지 않게 한다.

주막터에는 'ㄱ'자 형태의 통나무 초가집 한 채가 들어서 있다. 과것길에 오른 선비나 영동과 영서를 오가며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목마름과 배고픔을 달래고, 고단한 몸을 쉬어가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주막터를 지나면 계곡을 따라 거닐게 된다. 계곡 곁에 쌓인 눈과 계곡 물소리가 지친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김종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