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두 역사의 공존

▲ 유생들 책읽는 소리 깨어있는 '조선의 아침'

지난해 말의 일이다. 유독 경주여행을 좋아하는 기자에게 수년간 인연을 맺어온 경주 신라문화원 진병길 원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안부를 묻던 진 원장은 기자에게 신라문화원에서 심혈을 기울여 운영하고 있는 고택체험 프로그램중 서원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라고 귀띔해줬다. 신라 천년고도(古都) 경주와 조선시대 유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서원.
▲ 삼국통일 이끈 김유신이 잠든 '신라의 달밤'

언뜻 들어서는 잘 조화가 이뤄지지 않는듯 했다. 조금 당황해하는 기자에게 한번 경주에 내려와서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서악서원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 선도산(仙桃山)과 서악서원

경주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한국에서 단일 기초지방자치단체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고, 여행중 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기자는 경주 남산의 수많은 불상과 폐사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의 배경이 되는 명소들을 매년 수차례 방문하곤 한다.

경주시내와는 다소 떨어져 있는 선도산도 5년전 자전거 여행을 통해 방문했던 곳이다.

해발 390m에 불과한 선도산에는 신라 건국설화와 관련있는 선도산 성모가 신라 개국 이전부터 이곳에 살면서 신라를 지켜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선도산 성모는 본래 중국 황제의 딸로 이름을 사소(娑蘇)라 하였는데 일찍이 신선술(神仙術)을 배워 신라에 와 머물렀다. 아버지인 황제(皇帝)가 솔개(독수리) 발에 편지를 매어 딸에게 보냈는데, 그 편지에 이르기를 "이 솔개가 머무는 곳에 집을 삼으라"고 하였다.

사소가 그대로 하였더니 솔개가 선도산에 앉았으므로 사소는 그곳의 지선(地仙)이 되었고 산 이름을 서연산(西鳶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는 신라의 명장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보희가 왕비가 될 길몽의 장소도 바로 이 선도산이다.

선도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뿐 아니라 정상에는 거대한 마애삼존불이 새겨진 암벽이 있고 모전탑인 서악동삼층탑, 진흥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 태종무열왕릉 등 다양한 문화재들이 있다.

그리고 서악서원은 선도산 아래에 위치한 작은 서원이다.

경상북도기념물 제19호인 서악서원은 조선시대 김유신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었으나 지방 유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설총과 최치원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다. 퇴계 이황이 서악정사(西岳精舍)라 이름짓고 직접 글씨를 써 현판을 달았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선도산 아래에 있었지만 임진왜란때 불에 타 1600년(선조 33년) 서원터의 초사(草舍)에 위패를 모셨고 1623년(인조 1년)에 사액서원(賜額書院:조선시대 국왕으로부터 편액(扁額)·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이 됐다.

서악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을 펼치던 당시에도 없어지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했다.


▲ 서악서원 인근에 위치한 태종무열왕릉.

■ 태종무열왕과 김유신

서악서원의 여러 건물 중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있는 곳은 유생들이 공부하며 거처하는 시습당(時習堂)과 절차헌(切嗟軒) 등이다.

시습당은 누각인 영귀루(詠歸樓)와 마주보고 있는데 그 위에서 서원 맞은 편을 바라보면 경주시대의 넓은 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처음 신라와 서악서원이 잘 조화가 이뤄지지 않는듯 했었지만 막상 서원에서 모시고 있는 위패의 주인공이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기여한 김유신 장군이라는 것을 듣고서야 비로소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선도산 자락에 잠들어있는 사람들이 신라의 삼국통일과 관련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서악서원에서 200m 거리에 위치한 태종무열왕릉, 또 그의 아들인 김인문의 묘 등이 바로 그것이다.

태종무열왕은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을 이뤄내는 인물이고 김인문은 나당연합군을 구성할 수 있도록 당나라와의 외교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서악서원에서 태종무열왕릉으로 가는 길은 작은 마을을 지나게 되어 있는데, 농기계가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시골집 풍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여행객들이 낯설지 않은지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따라 다니기도 한다.

한가로운 마을 풍경을 감상하며 10여분 거닐다보면 잘 가꾸어진 태종무열왕릉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취재지원/경주 신라문화원(http://www.silla.or.kr/)

/김종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