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신농씨는 농업을 최초로 개발하여 보급한 인물로 알려졌는데, 그는 온갖 식물을 직접 먹어보아서 먹어도 되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될 것을 구별했기 때문에 그 독성으로 인해 외모가 일그러진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당시의 대동사회에서는 바로 '선양제'라는 것을 통해서 지도자를 선출했다는 점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먼저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의 태평성대를 이룬 요순(堯舜)임금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임금이 말했다. "아, 사악(四嶽)이여! 짐이 재위한 지 70년인데, 그대는 천명을 변치 않게 할 수 있으니 짐의 자리에 오르시오." 이에 사악이 대답했다. "덕이 낮아 임금 자리를 욕되게 할 것입니다." 그러자 요임금이 말했다. "귀족이거나 관계가 먼 사람, 숨어 사는 사람 모두를 천거해주시오." 이에 모두가 요임금에게 말했다. "민간에 홀아비가 있는데, 우순이라 합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그러한가, 짐은 그에 대해 들었소. 그는 어떠하오?" 사악이 말했다. "장님의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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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화민족의 시조로 여겨지는 여와씨와 복희씨. |
1년이 되자 머무르는 곳이 무리를 이루었고, 2년이 되자 고을을 이루었으며, 3년이 되자 도시를 이뤘다. 요임금은 성스럽다고 여겨서, 순을 불러 말했다. "그대는 일을 도모하여 완성했고, 자신이 공언한 대로 이룬 지 3년이 되었다. 그대가 제위에 오르라." 이에 순은 덕을 쌓지 못했다며 사양했다. 하지만 요임금은 아들 단주가 못나고 어리석어 세상을 넘겨주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정권을 순에게 주었다. 순에게 주면 곧 세상이 이로움을 얻고 아들 단주가 원망을 하지만, 단주에게 주면 곧 세상이 원망하고 단주 혼자만이 이로움을 얻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에 요임금이 말했다. "결국에는 세상이 원망함으로써 한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없다." 그러고는 마침내 세상을 순에게 주었다.
요임금이 죽고 3년상이 끝나자, 순은 단주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남하(南河)의 남쪽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제후 중에 조정에 알현하는 이들이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고, 소송을 하는 이들이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으며, 칭송하는 이들이 단주를 칭송하지 않고 순을 칭송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순이 "운명이로다!"라고 말하고, 중원으로 돌아가 천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가 순임금이다.
소위 대동사회의 '선양제'란 이처럼 무조건적으로 왕위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추천받아 그의 자질과 능력을 충분히 검증해본 후에 물려주는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보면, 오늘날의 중국 주석제(主席制)는 '선양제'와 닮은 구석이 있지 아니한가? 행정적 자질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그러한 다년간의 경험과 업적을 근거로 국가를 이끄는 주석으로 선출하는 중국체제의 현주소는 어쩌면 '선양제'를 막연하게나마 배워나가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아니면 중국의 3단계 발전론을 통한 최종목표가 '대동'일진데, 이들의 뇌리 속에는 '대동'으로의 복귀를 간절히 희망하는 DNA가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와 별개로,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자신의 업적을 이와 같은 삼황오제와 견줄 만하다고 여겨, 스스로에게 '삼황'의 '황'과 '오제'의 '제'를 합친 '황제(皇帝)'의 호칭을 최초로 사용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에 제순중화(帝舜重華) 즉 순(舜)임금에게서 왕위를 선양받은 우(禹)임금 이후로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세습제(世襲制)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소강사회의 시작이다.
아들 계가 어질어, 능히 우임금의 도를 계승할 수 있었다. 우임금이 일찍이 익을 하늘에 천거했는데, 노래를 하는 사람과 조정에 알현하러 오는 이들이 익에게 가지 않고 계에게로 가서 말했다. "우리 임금의 아들이다." 이에 계가 마침내 임금이 되었다. '십팔사략(十八史略)' <하왕조편(夏王朝篇)>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세습제'의 시작은 우임금의 의도가 아니었으니, 이 역시 당시의 분위기상 피할 수 없었던 숙명이나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12년은 한중수교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간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또 그 경험을 토대로 향후 한중관계 20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로서, 우리에게 장점이 되는 것은 흡수하고, 단점이 되는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바꿔 말해서, '대동'이라는 개념이 지금의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이제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잠시 한국의 모습을 바라보면,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두 인물이 등장해서는 연일 대한민국 언론의 화두를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동의 선양제' 관점에서 엄격하게 바라본다면, 이들은 그간의 세월을 통한 업적과 자질을 검증받은 인물들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대선(大選)은 반짝 인기몰이식의 인기투표가 아니다. 또한 언론이 국민들의 의지를 좌우해서도 안 된다. 물론 국민들의 오랫동안 누적된 갈증이 표출된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언론의 주된 의무는 시류(時流)에 끌려 다니지 않고 원칙을 견지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객관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그러기 위해서는, 후보가 될 인물들의 자질과 능력부터 검증해야 한다. 그들이 그간 해온 업적들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해보아야 한다.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고 국민들을 위할 줄 아는 인물을 찾아 국민들에게 보여야 하는 것이다.
글 / 안성재 인천대학교수·중국학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