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재촉하는 보리 막자란 잡초들이 가슴 파고 들어
노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위치한 전북 진안은 전통적인 시골 마을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익산~포항간 고속도로가 개통돼 접근이 용이해졌으며, 아름답지만 험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곳이다. 여러 마을이 해발고도 400m에 위치해 진안은 고원마을이 많은 곳 중 한 곳으로도 꼽힌다.
그런 까닭에 진안군 여러 마을들간 교통은 강원도 오지처럼 대중교통이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을 정도로 불편하다.
진안은 무주, 장수와 함께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도 유명하고 봄이 되면 벚꽃 가로수길로 유명한 마이산 일대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마이산은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산의 모양이 말의 귀를 닮았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겨울에 찾은 진안은 관광객들의 북적임도 없었고, 도시의 번잡함도 없었다. 그저 여타 시골 마을과 같이 호젓하다 못해 쓸쓸해 보이는 전통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 진안 고원길 가는 길
수원에서 진안까지 가는 교통편이 없기에 수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전주시로 향했다. 3시간가량 버스에 몸을 싣고 전주에 도착해 잠시 한옥마을에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진안 가는 버스를 탔다. 10여년 전 기억으로는 전주에서 진안으로 가며 차멀미를 할 정도로 산길을 돌아돌아 갔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길은 조금 달랐다.
새로 열린 익산~포항간 고속도로로 버스가 들어섰고 한적한 편도 2차로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진안이 가까워 오자 진안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도립공원 마이산이 한 눈에 확 들어온다. 사람들은 보통 무주-진안-장수 지역을 묶어 무진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혹자는 무진장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이 지역의 환경적인 공통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첫자를 따서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무진장의 원래 의미는 좀 다르다. 본래 무진장(無盡藏)은 '다함이 없이 굉장히 많음' 또는 불교에서 덕이 넓어 끝이 없어서 닦고 닦아도 다함이 없는 법의(法義)'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어쨌든 고원지대인 무진장 지역은 시골 마을들이 모여 있는 작은 군이었다.

# 진안 고원길과 시골 마을들
진안 고원길은 평균 해발고도 400m의 진안 고원을 잇는 길이다. 총 16개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진안의 여러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있다. 이 길은 산책하듯 거닐며 진안 사람들의 삶과 아름다운 풍광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16개 구간 중 섬진강의 지류를 만나는 2구간 '고개너머 백운마을길'을 걷기로 했다. 보통 평장초등학교에서 10여분 떨어져 있는 영모정에서 시작한다. 영모정은 정면 4칸의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는 조선시대 정자로 너새(돌로 만든 너와)를 사용하여 누정을 지은 것이 특징이다. 영모정과 길을 사이에 두고 효자각이 세워져 있다. 영모정을 지나면 이내 사람 한 명 보기 힘든 시골길로 들어선다. 여름이면 수풀이 우거져 푸르름이 느껴졌을 터이지만 지금은 앙상하게 자리한 나무들이 스산하게만 느껴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거닐다 보면 이내 신전 마을에 도착하고 굳이 발뒤꿈치를 들지 않아도 쉽게 담장 안 시골집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끔은 아무렇게나 자란 잡초와 나무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폐가들도 눈에 들어온다.
이곳 사람들에게 배고개라고 불리는 조금 높은 고개로 올라서니 겨울을 무색하게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산 언덕을 타고 푸른 보리가 봄을 재촉하듯 자리하고 있었고, 지난 가을 추수하다 만 배추들이 추운 바람에도 초록색 잎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풍경 너머로 봄이면 논과 밭으로 물을 대 주는 저수지와 그 뒤로 진안의 명물 마이산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한 눈에 들어오는 이런 풍경들을 보며 은안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제법 등에 땀이 차 있었다.
경운기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듯한 작은 길을 따라 거닐다 바람에 기대 춤을 추듯 하늘거리고 있는 갈대가 자라고 있는 계곡 곁에서 시원한 물 한 잔 마시며 은안마을을 눈에 담았다.
/김종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