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부터 1990년대까지 세상에 나온 카메라들이 전시중인 한국카메라 박물관 전시실에서 김종세 관장이 활짝 웃고 있다.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지하철 4호선 과천 서울대공원역 4번 출구에서 20m떨어진 곳에 3층짜리 카메라를 닮은 건물이 바로 '한국 카메라박물관'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공원으로 들어가며 무심히 지나쳤을 이 박물관은 세계 개인 카메라박물관 중 제일 많은 소장품을 자랑한다.

지상 3층, 지하 1층짜리 건물에 3천여점 이상의 카메라와 6천여점의 각종 렌즈를 비롯 유리원판 필름, 초기 환등기, 사진 인화기, 각종 액세서리 등 1만5천여점의 유물이 전시, 보관돼 있다.

박물관 1층 제1전시실에는 카메라와 렌즈, 부속 기자재들을 테마와 이야기별로 나눠 기획 전시하며, 개관 이후 10여차례 특별전을 개최했다. 현재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전시물은 소장품의 10%수준으로 미공개된 소장품들은 매년 2~3회 특별전을 개최해 순환 전시할 예정이다.

2층 상설전시실은 카메라가 처음 세상에 나온 1839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단위로 카메라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500여점의 카메라를 전시했다. 카메라의 원조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와 '루시다( Lucida)', 그리고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 등 카메라 발달사에 기여한 다양한 종류의 역사적인 카메라들을 연대별로 만날 수 있다.

갤러리로도 사용되는 지하 1층 제3전시실은 사진인구 저변 확대를 위한 문화강좌, 사진전시, 스튜디오, 암실 등 다목적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명품기획전 등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둘만한 많은 작업이 이뤄진다.

○'웬수같은 카메라' 아끼는 김종세 관장

英 경매장·해외 지인 통해 한 점씩 수집 렌즈만 6천여점… "박물관 세운 원동력" "일반인·전문가 아우르는 전시 준비 중"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온기가 스며있다. 하늘은 눈을 거두고 비를 뿌린다. 꽃샘추위가 무섭다지만 그래봐야 이미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성급한 이들은 벌써 겨우내 꽁꽁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카메라 가방을 둘러멘다. 어디로 갈 것인가. 시선을 낮춰 카메라에 눈을 돌려보자. 출사 나서기 전 하루쯤 어디서 무엇을 찍을까에 앞서 내가 무엇으로 찍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과천시 막계동 어린이대공원 3번 주차장에서 길 건너편을 바라보면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보다 조금 더 흥미로운 건물이 나타난다. 3층짜리 '한국 카메라 박물관' 건물은 누가 카메라 박물관 아니랄까봐 건물 중앙에 렌즈 단면 모형을 달아놨다. 셔터만 있다면 건물로 사진이라도 찍을 기세인 한국카메라박물관 김종세 관장을 만나봤다.


■ 카메라, 카메라, 카메라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1층 순으로 관람하도록 구성돼있다. 지하에 들어서서 오른쪽을 바라보니 염전 사진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한 장 한 장 이어지는 사진을 보고있노라면 눈이 점점 커진다. 1천300여년 전 만들어졌다는 차마고도의 천년 염전이다. 사진을 따라 방을 한바퀴 돌아 간신히 사진에서 눈을 떼면 전시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카메라가 눈에 들어온다. 입이 떡 벌어진다. 사진기에 친숙하지 않거나 스스로를 기계치라고 규정해 버린 사람이라면 선뜻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웅장하고 희한한 카메라들이 그야말로 즐비하다. 모양, 색깔, 크기, 제조사, 제조 시기가 다 다르다. 보고있자니 카메라가, 무엇에 쓰는 물건이더라…싶다.

김종세 관장을 만나 박물관 자랑을 해달라고 했더니 거침없이 '개인이 만든 박물관 중에서는 양과 질 모두 국내에서는 최고 수준, 세계적으로도 수준급이다"라고 자랑을 야무지게 한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의 카메라를 모으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김 관장은 "일제 강점기에 라이카, 콘탁스 카메라 한 대가 성북동이나 가회동의 방 서너칸 집 한채 값에 달했다"며 "대중이 사용하기는 불가능했고 국내에서 생산된지도 얼마 안돼 해외에서 물건을 구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주로 영국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직접 구입하거나 해외에 거주하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한 점 한 점 카메라와 렌즈를 장만했단다.

■ 오! 나의 카메라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카메라가 없겠지만 3천 점이 넘는 유물 중에서도 특히 예쁜(?) 카메라가 있을 것이다. 김 관장은 "이 카메라를 손에 넣었다는게 엄청난 행운으로 여겨진다"며 오래된 카메라 두 점을 소개했다. 첫번째 카메라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위해 4대 제작된 콘탁스Ⅱ 라이플(CONTAX Ⅱ RIFLE)이다. 카메라 본체를 장총의 개머리판 부분과 연결해 방아쇠를 당기면 사진이 찍히도록 제작된 이 카메라는 선수들의 빠른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구입 당시 독일인 판매자는 "박물관으로 가는게 아니면 팔지 않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귀한 카메라다. 어쩌면 이 카메라가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 장면을 찍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콘탁스 라이플이 남성적 매력을 풍기는 반면 두 번째 소개한 소호 리플렉스(SOHO TROPICAL REFLEX)는 귀족적 매력을 지녔다. 1907년 영국 런던의 Marion사가 마호가니 원목으로 만든 제품으로 김 관장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카메라점에서 발견하고 흥분해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김 관장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너무 사고싶었지만 놓쳐버린 카메라였는데 그보다 더 상태가 훌륭한 보물을 만난 것"이라며 "우리나라 보물로 따지자면 고려시대 청자급"이라고 설명했다.

김 관장이 죽고 못사는 것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카메라 렌즈다. 김 관장은 "카메라는 그저 '깜깜한 방'일뿐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는 렌즈가 중요하다"며 "사실 렌즈에 대한 애정이 박물관을 만들게 했다"고 말했다. 카메라 렌즈를 6천개도 넘게 가지고 있지만 김 관장은 늘 한 가지 렌즈를 쓴다. 1950년대 독일에서 생산된 아포란터(APO-LANTHAR)다. 김 관장은 "아무리 많은 렌즈, 카메라를 써봤어도 아포란터 만큼 내가 원하는 감성을 원하는 만큼 표현해주는 렌즈는 없더라"며 "디지털카메라에도 이 렌즈를 장착해서 쓴다"고 말했다.

■ 웬수같은 카메라

카메라 자랑을 너무 야무지고 끝도 없이 하길래 "도대체 카메라가 얼마나 좋으시냐"고 물었더니 김 관장은 급 정색을 하며 "웬수같다"고 말한다. 2000년 10월 관악구 신림동 지하에서 수장고 형태로 보관해오던 카메라를 동호인 등 일부 사람들에게 공개하면서 김 관장의 박물관지기 노릇이 시작됐다. 젊은 시절 돈도 원없이 벌었던 김 관장은 사회에 공헌을 하고자 박물관을 제대로 만들 결심을 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사회는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박물관 자리인 과천에 박물관 용으로 땅을 매입하려니 투기를 목적으로 허위 매입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박물관을 운영중이며 박물관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 것을 확인받고서야 박물관 건립의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고향에 내려가 조그맣게 박물관을 내고 사진 일이나 하며 노년을 보내려 했지만 어느새 일이 너무 커져 카메라에 발목을 잡혔다는 김 관장은 이왕 이렇게 된거, 제대로 한 번 해볼 생각이란다. 김 관장은 "이 박물관은 사실 카메라를 어느 정도 알고 관심있는 사람들이 보기 편하게 구성돼 있어 일반인은 모양 변하는 것 정도를 볼 수 있다"며 앞으로 "일반인과 전문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전시를 준비중"이라며 웬수같은 카메라를 고이 어루만졌다.



글┃민정주기자
사진┃김종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