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지: 충북 제천 저승봉(596m)■ 산행일시: 2012년 3월 25일(일)

# 금수산 자락에 숨은 영롱한 보석과도 같은 암릉

작성산(鵲成山·848m)과 동산(東山·896m), 금수산(錦繡山·1천16m)을 이루는 산줄기가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갑오고개를 두고 서편으로 뻗어나간 능선에 신선봉(845m)과 저승봉(미인봉·596m), 조가리봉(562m)이란 이름이 붙은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다.

월악산 국립공원 내에 속한 산들의 유형이 그렇고 청풍호반을 끼고 도는 능선들의 형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듯 이 능선의 특징 또한 유사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한편으로는 충북 괴산의 악휘봉과 닮은 면도 보인다. 산 자체가 위험천만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는 암봉이란 뜻이다.

특히 신선봉에서 저승봉에 이르는 구간은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는 곳으로 한겨울의 적설기 등반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능선의 좌우에 위치한 능강계곡과 학현계곡은 피서지로도 각광을 받는 곳이기에 한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저승봉은 과거 멧돼지가 많아 돼지'저(猪)'자를 사용한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저승봉 북쪽 학현리로 난 계곡을 저승골이라고도 한다. 현지 사람들은 저승봉이라는 이름 대신 '미인봉'이라고 부르기를 원하며 미인봉이라 쓰인 정상석이 있다.

# 산 아래 아지랑이 산 위에서 눈보라로…

동네 길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선 버스가 내리막에서 비틀댄다. 봄날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던 버스가 도착한 학현리 마을에 발을 디뎠다.


이틀전 내린 눈이 고스란히 쌓인 모습에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젠을 차에 두고 온 것이다. 스패츠도 놓고 왔는데 다행히 장갑은 챙겨왔다. '괜찮겠지…'하며 벌써부터 산에 오르기 시작하는 일행을 따라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하나 몇 걸음 가지 않아 만만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낯익은 초록의 생명체가 참나무 가지 끝에 걸린 모습을 보다가 넘어지더니 이내 넘어지는 횟수가 늘어만 간다. 발의 디딤이 불안정하니 한걸음 전진할 때마다 힘이 들어가고 점차로 더딘 걸음을 걷는다. 인천에서 답사차 산을 찾았다는 이응배(59·인천 도화동)씨는 "우리팀도 아이젠을 갖고 온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날씨가 그리 좋았는데 산에 눈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지요"라고 말한 후 등산화에 묻은 눈을 툭툭 털어내려는 양 애꿎은 나무를 걷어차고 있다.

그러더니 밧줄 하나를 앞에 두고 엎어지고 자빠지기를 수차례 반복하던 그의 일행들은 그만 하산하기로 한다. 오를수록 많은 눈으로 인해 등산화로 파고드는 눈 때문에 발목이 시려오기에 양말이 젖지 않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데 잦은 넘어짐과 밧줄구간으로 인해 장갑도 젖어 온다. 게다가 따사로운 햇살이 구름사이로 숨더니 이내 바람과 함께 달갑지 않은 눈발이 날린다.


제천학생야영장이 있는 학현슈퍼에서 출발하면 통상 1시간가량 걸리는 거리를 20분이나 더 소비를 하면서 전망데크가 설치된 학봉에 서자 청풍호가 눈보라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학이 날아오르는 형상에서 유래된 학봉과 학현리….

모두 학과의 인연을 두고 지어낸 이름들이다. 학봉은 774m로 그다지 높은 편에 속하지는 않지만 암봉의 특징상 너른 조망이 압권으로 갑오고개 방향으로의 동산이 손에 잡힐 듯한 거리고 능강계곡을 뒤덮은 운해 위로 솟은 금수산의 자태가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는 모습을 감상하기 좋은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금수산에서 이어지는 망덕봉(926m), 가마봉(635m), 작은산밭봉(485m)을 연결하는 능선이 구름 위에서 솟았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구름이 사라지더니 사방으로 막힘 없는 조망을 나타낸다. 월악산의 영봉과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하늘금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

청풍호 방향에 위치한 저승봉(미인봉)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눈쌓인 암봉을 아이젠 없이 헤쳐가야 한다는 게 어떤 일인지 너무도 잘알고 있기 때문에 발걸음이 무겁다. 밧줄도 단단히 얼어붙어 있어서 장갑을 젖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중이니 쉬운 게 없는 길이다.

학봉을 출발하자마자 능선 안부로 내려서는 계단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정작 위험한 구간은 계단으로 내려서는 순간이다. 손과 발의 감각을 총동원하여 밧줄을 잡고 발 디딜 곳을 찾아 발을 내려 놓지만 밧줄을 움켜쥔 손과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산은 준비된 자만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내내 떠들던 순간이 떠올라 부끄러워진다.

몇 년전에 작고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의 저서 중 '하얀거미'의 한부분을 연상했다고 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바위를 덮은 눈과 얼음으로 인해 많은 등반가들의 희생을 가져왔던 아이거 북벽처럼 만만치 않게 위험천만한 동작을 이어가며 힘겹게 계단까지 내려서자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진다. 이후 계단을 한 번 더 오르는 것으로 다시 바윗길을 따라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구간이 나오는데 평소와 같은 날씨였다면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는 곳이다. 잡을 곳과 디딜 곳이 확실하므로 경험자와 동행하여 약간의 보조만 해준다면 초보자도 종주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나 노약자와 아이를 동반하면 안될 것이다.


모양도 제각각인 바위들을 감상하며 길을 따르다 부드러운 흙길 구간에서 다시 학현리로 향하는 오른편의 길을 따라 내려선다. 그간에 지나왔던 길에 비하면 유순하기 이를 데 없는 길이다. 매년 산악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구간이라 그런지 곳곳에 산행 안내판과 안전보조 장치가 잘 구비되어 있으나 노후된 밧줄이 닳고 닳아서 이른 시일 내에 보수가 이뤄져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눈쌓인 암봉을 탈출하듯 빠져나와 오지마을이었던 학현리 마을로 내려서서 맑디 맑은 계곡물에 얼굴 씻으며 저승을 오간 듯한 아찔했던 순간을 기억에서 지워내본다. 항상 준비하고 또 준비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새기는 순간이다.

○…산행 안내

■ 등산로

청소년수련장앞(70분/1.7㎞) ~ 안부삼거리(40분/1.6㎞) ~ 정상(30분/ 1.6㎞) -안부삼거리(40분/0.8㎞) ~ 손바닥바위갈림길(60분/1.2㎞) ~ 청소년수련장(7.2㎞, 4시간)

■ 교통

영동고속도로 ~ 만종JC 중앙고속도로 ~ 남제천IC ~ 학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