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규모의 패션 전문전시회 'CHIC 2011' 전시장과 패션쇼 행사 모습.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한국의 서울과 비교할 때 훨씬 북쪽에 있는데도 지형적인 특징이 분지여서인지 날씨는 서울과 비슷하다. 서울에서의 3월은 봄의 서곡을 나타내는 시기인 만큼 모든 일들이 겨울동안 움츠렸던 기운과 달리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데 베이징의 3월도 그런 시기이다.

베이징도 이제는 세계적인 큰 행사가 많이 열리는데, 그중에서도 3월 말에 열리는 베이징 패션 전시회는 중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패션 페어(Fashion Fair)가 되고 있다. 파리 및 밀라노, 뉴욕의 패션 페어는 세계 패션의 유행을 감지할 수 있는 페어라고 한다면 베이징의 페어는 세계 상권의 중심이 중국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패션 시장 상권의 움직임과 거대한 중국 시장의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전시관은 중국관을 비롯하여 세계 패션 선진국인 이탈리아, 프랑스뿐 아니라 일본, 한국, 마카오, 홍콩관 등 세계 각국에서 전시관을 열고 있으며 그 규모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1993년 391개 중국 국내 기업의 참가로 시작된 페어는 매회 열리고 있어 올해로 20회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제는 아시아에서 제일 크고 세계적으로는 세 번째로 큰 패션 전시회가 되었다. 2011년의 페어를 보면 홍콩, 한국,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대만 등 20여개국 1천여개의 브랜드가 참가했고 참관 객수도 11만5천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시관도 규모면에서는 홍콩에 이어 두 번째로 크고 참가기업 수도 70개 기업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리 패션업체에서도 중국시장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중국의 패션산업은 세계의 OEM 생산기지로서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기반을 조성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 세계 브랜드 옷의 라벨은 대부분 'made in china'로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 디자인한 옷들이 중국에서 생산되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의 베트남, 캄보디아 등 인건비가 싼 나라로 생산기지가 이동하고 있어 라벨 표시도 중국 이외의 국가로 되어 있는 것이 많다.

이제 중국 패션기업은 OEM 생산기지로서만 지탱하기에는 인건비 및 물가의 상승으로 인해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방법의 하나가 고부가가치의 브랜드 이미지 부각이다. 중국의 패션기업들도 이러한 패션환경의 변화속에서 대처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페어에 참석, 회사의 이미지를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데 전시관 부스의 크기가 300㎡ 이상이 되는 회사가 대부분이며 전시관에 들이는 인테리어의 비용도 상당하다.

필자가 이 전시회에 참가한 것은 두 번이었다. 첫 번째는 2005년 필자가 오랫동안 몸 담고 있는 한중패션산학협회에서 회원들의 작품을 가지고 참가하였다. 그때는 베이징의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행사가 치러졌는데 개장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홍수같이 입장하였고, 중국내 패션인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축제같았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안면이 있었던 낯익은 중국 패션 관련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이 새롭고 개장 몇 시간 만에 가지고 갔던 팸플릿뿐 아니라 명함도 동이 났다. 규모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작았지만 페어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한국관 바로 앞이 이탈리아관이었는데 바이어들의 상담모습보다는 일반인들의 참관이 많았던 한국관보다 훨씬 세련된 분위기와 복종별 부스가 나뉜 형태로 운영, 바이어들이 여유롭게 상담을 할 수 있게 하여 페어에 참석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는 2010년에 한국관에 남성 셔츠를 주로 디자인하여 판매하는 'Paradiso'라는 독자 브랜드를 가지고 단독 부스로 참가하였다.

2005년도에는 협회의 책임자로서 30여 회원들의 디자인을 가지고 참석하여 부담감이 크지 않았지만 두 번째의 경우는 단독 부스에 독자 브랜드를 가지고 참석해서인지 첫 번째보다 더욱 긴장되었고 중국 소비자에게 비치는 상품의 이미지가 많이 궁금하였다.

다행스럽게도 한국관에 남성 티셔츠 복종이 없어서인지 많은 바이어들이 관심을 나타냈다. 페어의 규모나 분위기가 많이 변해 있었다. 전시관은 시내 중심에서 공황 근처 외곽으로 이전, 장소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지만 일반인들이 참가하기에는 멀고 교통편이 원활하지 못한 불편함이 있어 일반 대중보다는 바이어 중심의 페어로 옮겨가는 분위기였다. 한국관도 이전과 달리, 단독관을 가지고 주최 기관에서 중국에서의 사업 파트너를 연결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다양해진 중국관에 가보니 규모가 커서 중국 패션산업의 발달된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중국관 안에 인천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중국 저장이공대학교에 교수로 있는 제자가 회사 고문 자격으로 참여한 전시장도 있어 가보니 한국인 디자이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 패션기업도 초창기에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디자이너를 채용했지만 지금은 한국쪽 디자이너의 고용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문제점을 서양인보다는 같은 동양인이기 때문에 줄일 수가 있으며, 조선족을 통역으로 활용, 언어적인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한류 열풍이다. 필자를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 드라마에 대해 얘기를 하며 드라마가 현실적인 소재로 재미있고 주인공들이 입은 옷이 예쁘다며 한국 패션에 관심을 나타낸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긴 하나 걱정이 된다. 엄청난 규모의 내수시장으로 충분히 볼륨이 되는 중국 기업과 세계 각국 패션기업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한국의 패션상품은 얼마나 있을까. 한국의 패션기업중 중국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도 있지만 실패한 기업도 적지 않다. 심플하고 단아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던 기업들이 복잡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중국인들에게는 맞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도 기본적으로 표현되는 디자인의 성향은 같지만 판매되는 나라의 소비성향을 조사 분석하여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패션기업도 중국을 생산기지로서의 동반자 의식에서 벗어나 외국 선진 브랜드와 같이 중국 현지에 맞는 디자인 및 원단 선정, 중국인 체형에 적합한 패턴 구성 등 다양한 각도에서의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패션산업이 발달하려면 사계절이 분명하고 인구가 1억명 이상은 돼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분명하여 패션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근래들어 지구의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봄, 가을이 거의 없어지고 있어 4천만명이 조금 넘는 우리나라는 내수시장만으로 패션산업이 발전하기가 힘들어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은 우리와 가장 인접한 국가이고 같은 아시아권이라는 입지적인 조건으로 좋은 수출 대상국이다.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는 가난한 어촌이었지만 지금은 중국 내에서도 알아 주는 문화 도시가 됐다. 지금의 도시로 발전하게 된 데는 우리나라의 봉제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무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계기를 마련해 준 우리나라 패션기업은 이제 생산기지로서의 중국에서 고부가가치 패션 상품의 수출 확대를 위한 시장으로 인식을 바꿔야 할 것이다.

3월 중순까지만 해도 필자는 겨울옷을 입고 나왔다. 이전 같으면 봄옷을 입어도 괜찮은 시기인데 겨울옷을 입고 있으니 봄은 오지 않고 여름이 되는 것이 아닌가싶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패션상품 매출에도 많은 영향력이 있어 패션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내 패션산업은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기조 산업으로 부각되어 수출 품목의 상당수를 포함하여 효자산업이 되었던 시대도 있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패션 산업은 그동안 쌓아올린 기술의 축적으로 다른 산업과 비교해 국제적으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사업중 하나이다.

이제 중국 패션산업은 세계 패션산업의 중심지로 우뚝 서고 있다. OEM 생산기지로서만이 아니라 내수시장의 양적인 면에서 경제적으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 중국적 이미지가 표현된 패션이 유행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세계 패션 트렌드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시대의 강대국이 세계 패션 트렌드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71년 4월 일본 나고야 선수권대회에 참석했던 미국 탁구 대표가 중국을 방문한 이래로 적대시하였던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는 시작됐고 중국이 세계 각국과 수교하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철의 장막으로 가려졌던 중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세계인에게 집중되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중국 복식은 세계 패션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 중국의 이미지를 나타낸 패션 쇼를 시작하면서부터 중국 복식의 이미지가 부각된 패션이 세계 패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국과 중국은 패션 선진국으로 향하는 시점에서, 협력 증진 및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풍부한 노동력과 대규모 생산시설 및 최신 기계설비, 면섬유의 원자재가 되고 있는 광활한 목화농장, 실크의 원재료가 되고 있는 뽕나무, 그 외에 풍부한 지하자원 등이 최대 장점이다.

한국은 그동안 쌓아올린 동양적인 감성이 표현된 디자인 인력, 대구를 중심으로 발달된 섬유산업을 통한 섬유소재 공급의 스피드화, 소량이라도 원단 제작이 가능한 구조 구축, 안산을 중심으로 발달된 염색산업, 미국·이탈리아·프랑스·영국 등 패션 선진국에서 공부하고 온 능력있는 고학력의 패션 전문 인력 등 디자인 인력이 부족한 중국패션 기업의 현실과 비교할 때 장점이 될 수 있다.

이제 한국과 중국은 아시아에서의 패션대국으로서가 아니라 세계적인 패션 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서로 장점을 보완하면서 동반적인 관계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협력체제를 강구하게 되면 세계적인 브랜드의 탄생도 가능할 것이다.

글 / 임 순 인천대학교 패션산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