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은 단순히 한 패션브랜드의 홍보전략이라기보다 세계 명품 소비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치를 패션을 통해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중국 패션의 세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패션문화와 패션산업의 2가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 아시아를 대표해 온 중국 문화
최근 세계 무대에서 중국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정치, 경제 뿐 아니라 예술과 패션을 비롯한 문화면에서도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다.
사실 중국 문화는 서양인들에게 오랫동안 노출되어왔기 때문에 낯선 문화가 아니다. 3~4세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알려진 이래 중국의 가구, 도자기, 벽지, 의상 등은 생활용품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궁중은 물론 대중들도 중국의 문물을 접할 수 있었다.
18세기 프랑스 잡지 하퍼스( Happer's)는 당시의 예술 평론을 실으면서 '중국풍' (Chinoiserie) 스타일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 이 단어는 서양에서 중국 풍격을 구비한 예술품을 호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어져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중국풍'의 주제는 서양의 예술과 패션에서 줄곧 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인들에게 '아시아'하면 바로 중국을 연상할 정도로 가장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로 여겨졌다.
■ 가장 중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그렇다면 중국풍의 발원지인 중국은 중국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현재 중국은 문화산업을 발전시킴에 있어 중국의 특색을 부각시키고 그 안에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을 표현하고자 한다. 즉 중국풍의 구현을 모든 문화예술활동의 본질이자 목적으로 삼고 있다.
중국풍을 구현하려는 노력은 디자인 분야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난다. 건축, 조형디자인, 패션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많은 중국 디자이너들이 전통요소를 이용해 중국풍을 표현하려는 시도들이 왕성하다. 이들은 중국 문화의 전통 요소를 다만 가져다 쓰는 형식이 아니라 정신적 가치를 넣어 새롭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패션디자이너들은 매년 중국 패션위크를 통해 중국풍 패션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에게 공통된 신조는 '가장 중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로 요약된다. 최근 서양에서도 이러한 신조를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영화와 패션계에서 발견된다.
중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공리와 장쯔이, 장만위 등은 할리우드에서 인정하는 동양 스타로 중국미(美)를 보여주는 패션 아이콘이 되었다. 이 뿐 아니라 최근 많은 중국 여자 연예인들이 세계 4대 패션위크에 초대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많은 국제 유명 브랜드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미가 세계인들에게 새롭게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중국의 문화전문가들은 중국 문화의 미래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 문화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중국 문화의 원소와 세계 조류가 서로 결합된 '민족적'인 스타일을 창조해야 더욱 오래 생존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 차이나룩의 세계화
중국 문화의 세계화는 패션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패션에서 중국풍 스타일의 창조는 서양 디자이너들에게서 먼저 시작되었다. 1960년대 이브 생 로랑은 중국 전통의상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의상들을 발표하면서 차이나룩이라 이름지었다.
그 후 서양의 많은 패션디자이너들이 중국 전통문화와 전통의상에 흥미를 갖고 응용하거나 현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해 보자. 1995년 미국 유명 패션디자이너 도나카란은 중국 노동자들의 간소한 복장을 응용하여 모던한 이미지를 연출한 패션을 선보였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프라다는 1997년 목선이 높은 중국 전통의상들의 형태와 대나무와 당초 등 중국 전통문양을 사용한 의상들을 디자인하여 차이나룩의 아름다움을 알렸으며, 벨기에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텐과 크리스찬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존 갈리아노도 중국 전통의상인 치파오를 자신들의 개성에 맞게 응용한 다양한 의상들을 소개하였다.
이들 외에도 중국 전통의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거나 응용한 패션디자인들이 계속 이어졌다. 2005년부터는 여러 패션브랜드에서 중국의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중국의 정취가 서린 패션디자인들을 출시하고 있다. 그 결과 차이나룩은 패션계에서 한 나라의 지역적 패션이 아니라 세계인이 공감하는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계 패션디자이너들도 차이나룩의 세계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 비비안 탐이나 필립 림, 수왕, 한 팽, 여리, 에이미 찬 등 중국에서 출생하였거나 중국 부모를 둔 중국계 디자이너들이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서 모던하면서도 중국적 감성을 입힌 디자인들을 매 시즌 발표하고 있다.
비비안 탐은 의상에 모란꽃, 새, 봉황, 팬더, 불상 등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도안들을 이용하여 중국의 정신문화를 표현하려 했고, 필립 림과 여리는 장식을 절제하는 대신 중국 전통복의 형태나 실루엣을 단순하게 표현하여 현대미를 강조하였다.
이들 중국계 디자이너들의 현대화된 차이나룩은 젊고 현대적이며 실생활에서 입기 편하여 미국과 유럽 등지의 젊은 소비자들에게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차이나룩은 개인 디자이너뿐 아니라 브랜드로서도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브랜드 상하이탱(Sanghai Tang)은 베이징, 상하이, 홍콩 등 중국내 대도시는 물론 뉴욕, 도쿄, 두바이, 방콕, 모스크바 등 세계 각지에 50여개 매장을 개설하여 고급스럽고 현대화된 차이나룩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모택동이 입던 마오재킷을 변형한 상의와 공산주의 문화를 모던하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의류들을 출시하여 국내외 젊은 층의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다른 나라 태생의 젊은 패션디자이너들이나 브랜드가 자국의 문화적 감성을 입힌 패션디자인을 제대로 표현하여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이들 중국 태생 디자이너들과 브랜드의 활약이 돋보인다. 어디 이 뿐인가? 중국의 대도시와 지방을 가면 현재도 중국 전통의상을 입거나 변형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빈번히 볼 수 있으며, 중국 여성들이 좋아하는 모란 꽃이나 새, 당초 도안들은 여전히 여성들의 패션에서 자주 이용된다.
중국의 부총리를 지낸 오의(吳儀)는 맨더린 칼라에 매듭단추를 단 중국풍 재킷을 자신의 패션스타일로 고수하였다. 이처럼 중국에는 자국의 전통문화와 전통의상을 사랑하고 지속시키려는 국민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차이나룩이 세계인의 관심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 / 김찬주 인천대학교 패션산업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