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건물과 주택들이 뒤엉켜 있는 의정부시 의정부3동. 전형적인 구 도심 동네의 모습이다.
구 도심 대부분이 그렇듯 골목이 유난히 많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골목 중에서도 우체국 뒷골목은 여느 골목과 다른 점이 있다. 이 골목에는 반세기 세월의 때가 묻은 한옥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1960년대 이 골목이 온통 한옥촌을 이룬 의정부 최고의 부자촌이라고 하면 아마 믿기 힘들 것이다. 당시 골목은 으리으리한 청기와 한옥이 즐비한 고급 주택가였다.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했던 그 시절 이곳은 의정부의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농촌마을 의정부가 미군부대 주둔으로 갓 시가 됐던 시기였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별안간 들어온 미군부대에 땅을 내주고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골목은 달랐다. 한국군의 월남전 파병이 이곳에 부자를 양산했다. 파병군인들이 많았던 이곳 주민들은 꼬박꼬박 송금되는 급여를 저축했다. 먹고 살길이 없어 택했던 파병 지원이 뜻밖의 부를 안겨준 것이다.
돈을 모은 이곳 주민들은 새집부터 장만했다. 당시 부의 상징이던 한옥을 번듯하게 지었다. 이곳이 일명 '월남촌'이라 불리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풍요로운 이 골목은 뭐든 남달랐다.
이른 아침이면 골목길 집집의 대문마다 우유병이 놓여 있었다. 배달 우유를 처음 본 이웃동네 아이들은 호기심에 몰래 뚜껑을 따서 맛보고는 줄행랑을 쳤다. 또 대문에 달린 초인종이 신기했던 아이들은 초인종을 누르고 달아나는 장난을 쳤다. 이런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 때문에 집주인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대문을 들락거리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겨울이면 밤마다 어김없이 골목 어귀에 "찹싸알~떡! 메미일~묵!"이라 외치는 떡장수들이 나타난다.
50여년간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는 한 상점 주인(78)은 "부자동네라 소문이 나서 그런지 떡장수들이 유별나게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 중에서도 청미래덩굴 잎사귀로 싸서 먹는 '망개떡'은 동네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다. 다른 동네에서는 비싸 구경하기도 힘든 떡이었다고 한다.
이 골목에는 떡장수뿐 아니라 각종 노점상들도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들었다. 아이들을 유혹하는 '뽑기' 등 간식거리서부터 두부, 콩나물 등 찬거리까지 다양하게 팔았다. 매일 골목에 작은시장이 열렸던 셈이다.
의정부3동은 1960년대 후반까지 한옥촌이 골목마다 블록을 형성하면서 의정부 시내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했다. 이 우체국 뒷골목도 이 시기에 가장 번성했다. 골목은 아이들로 넘쳐나고 인근 초등학교는 의정부 시내에서 학급수가 가장 많았다.
당시 의정부지역 최대 상권이었던 제일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고소득자들이 이 골목에 집중됐다. 부유층이 모여 살다보니 자연히 '부촌'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지금도 의정부 토박이들 사이에서는 그 명성이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누군가 이 골목에 산다고 하면 오늘날 '강남부자'로 치부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1980년 중반들어 이 골목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옥들이 하나둘씩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5~6층짜리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집주인들도 떠나갔다. 의정부에 본격적인 개발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새 건물들은 빠르게 한옥 주택가를 밀어냈다. 1990년대 들어서자 이 골목의 주택가는 반토막이 났다. 상가건물과 오피스텔이 골목을 점령한 뒤로는 한옥에 살던 사람들도 자취를 감췄다. 재건축으로 큰 수입을 올리거나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땅을 팔고 모두들 이주한 것이다.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던 골목은 아스팔트가 깔려 차들이 쉴새없이 지나다니고 신기한 초인종이 달려있던 대문은 센서가 달린 자동문으로 바뀌었다. 찹쌀떡과 망개떡을 팔던 떡장수 대신에 편의점이 들어서 이제 다양한 간식거리를 팔고 있다.
골목의 부를 상징하던 한옥은 현재 동네에 20채 정도가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남은 한옥들도 생활여건에 맞게 여러차례 수리해 옛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골목에서 50여년째 한옥을 지키고 있는 정인식(82)옹은 "이웃들 거의 다가 동네를 떠났다"며 "1960년대 초반에 한옥을 사서 이사온 이후로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여생도 이곳에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의정부3동 우체국 뒷골목은 이러한 동네의 흥망 이야기를 간직한 골목이다. 의정부시의 역사가 숨어있는 골목이기도 하다. 신도심이 생겨나면서 부자들은 여건이 더 나은 곳으로 이사를 가고 골목에서 자란 2세대들은 서울로 유학을 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때 고풍스럽고 운치있던 골목은 이제 남루해져 재개발을 놓고 이웃끼리 서로 얼굴을 붉히는 구도심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글┃의정부/김환기·최재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