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 구카이라이의 영국인 살해혐의와 부패 스캔들로 몰락의 길에 들어선 중국 태자당의 명문가 보시라이(가운데)와 부인 구카이라이, 아들 보과과.

중국 국내 정치는 '2012년 하반기'로 개최 시기가 확정 고지된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를 향해 비틀거리며 달려가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지난해 10월15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된 제17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에서 채택된 '공보(公報)'를 통해 "제18차 전국대표대회를 2012년 하반기에 베이징(北京)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근들어 이른바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위원회 서기 사건과 관련 "중국공산당이 올 가을로 예정된 당 대회를 연기할 것으로 알려졌다"는 보도가 국내외 매체들을 통해 보도되고 있으나, 중국공산당 6중전회의 결정에 따르면 제18차 전국대표대회가 연내에만 개최된다면, 대회가 연기된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전대(全大)'로 약칭되는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는 우리 정당들이 개최하는 '전당대회'에 해당한다. 중국공산당은 1921년 7월 상하이(上海)에서 제1차 전대를 개최한 뒤 대체로 5년마다 한 차례씩 전대를 규칙적으로 개최해 왔다. 창당 91주년을 맞는 2012년에 18번째의 전당대회를 개최한다는 사실은 중국공산당이 한 세기 가까이 전대 개최에 관해 일관성을 유지해 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2010년말 현재 8천26만명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정당 중국공산당의 당원 숫자는 1921년 창당 당시 57명에 불과했으나, 1927년 제5차 전대때 5만7천명으로 늘어났다. 이후 중국공산당의 당원숫자는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서 1945년 7차 전대때 121만명,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당시에는 448만명으로 불어났고, 1956년 8차 전대때 1천57만명, 1991년말에 5천만명이 됐고, 2010년말 현재 8천만명이 넘는 당원수를 자랑하고 있다. 1990년에서 1991년에 이르는 기간에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당들이 몰락하는 흐름속에서도 중국공산당은 오히려 당원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불리는 당세 확장을 해왔다.

중국 공산당의 전국대표대회에는 전국에서 8천만명의 당원 가운데 선출된 3천명 안팎의 대표들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되는 전대에 참석한다. 전대에서는 300명 안팎의 중앙위원들이 선출된다. 이들 중앙위원들은 30명 정도의 정치국원들을 선출하고, 이들 정치국원들 가운데 9명이 정치국 상무위원들로 선출되며, 이들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중국공산당과 정부를 이끌고 가는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회의를 주재하는 것이 바로 당 총서기이며, 당원수 8천만명의 중국공산당은 1인의 당 총서기를 최고 정점(頂点)으로 하는 권력의 피라미드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피라미드에서 상설회의기구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中全會)와 정치국 회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로, 각각 연 1회, 부정기 개최, 상설 회의체로 운영된다.

중국공산당은 2010년 10월15일에 개최된 제17기 5중전회에서 "시진핑(習近平) 동지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했다"고 대외에 공표함으로써 시진핑 현 국가부주석이 이번 하반기에 개최될 18차 당 대회에서 새로운 당 총서기로 선출될 것임을 예고했다. 현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인 후진타오(胡錦濤)가 당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라는 점에서 국가부주석인 시진핑이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겸임 선출됐다는 사실은 바로 후진타오의 권력 계승자로 결정됐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이에 앞서 2007년에 개최된 제17차 당대회에서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시진핑과 함께 리커창(李克强) 부총리를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단 2명의 50대를 선출함으로써 2012년 하반기에 이뤄질 권력 교체에서 시진핑과 함께 리커창이 새로운 권력의 쌍두마차 가운데 1명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시진핑은 올해 후반기에 당총서기로, 내년 3월에 열리는 중국의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으로 선출될 예정이며, 리커창은 역시 내년 3월의 전인대에서 총리로 선출될 예정이다.

중국공산당이 이처럼 질서정연한 권력 교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난 2월6일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이 돌연 청두(成都) 소재 미 영사관에 진입해서 미국 망명을 기도함으로써 불거진 '보시라이 사건'은 겉으로 질서정연하게 보이던 중국공산당의 권력 교체에 무언가 복잡한 속사정이 있다는 점을 폭로한 사건이었다.

시진핑과 리커창을 새로운 권력의 두 핵심으로 하고 나머지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진용이 어떻게 짜일 것인가하는 점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중국의 앞날을 읽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표지판이 되고 있던 시점에 불쑥 터진 보시라이 사건은 특히 보시라이가 내세우고 있던 이른바 '충칭 모델'과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당서기가 내세우던 '광둥 모델'이 중국공산당이 앞으로 금년 후반기 이후 걸어갈 길을 놓고 벌이던 내부의 권력투쟁의 속살을 외부에 노출했다는 점에서 중국 안팎에 충격을 주었다.

중국공산당이 1978년 12월에 개최된 제11기 3중전회에서 개혁 개방을 결정한 이래 지난 34년간 경제발전 일변도의 국가전략을 추진해오다가 빚어진 극심한 빈부격차와 도농(都農)격차, 동서(東西)격차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오쩌둥(毛澤東) 시절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회복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더욱 빠른 경제발전을 추구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추구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지던 내부의 의견 충돌도 보시라이 사건을 통해 외부에 노출되게 된 것이다.

▲ 보시라이 심복으로 불린 왕리쥔 충칭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 미국 영사관으로 망명을 시도하며 상관인 보시라이의 부패상을 폭로했다.

중국공산당과 중국이라는 국가가 앞으로 걸어갈 길과 관련,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후보였던 보시라이는 좌적인 충칭모델을 제시했고, 중국 개혁개방의 1번지 광둥성의 당위원회 서기인 왕양은 우적인 광둥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정치국 상무위원단 진입을 희망하고 있었다.

보시라이 사건의 흐름은 결국 '충칭모델'의 제시자인 보시라이가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몰락하는 것으로 정리되는 방향을 보이고 있다. 반면 '광둥모델'의 제시자인 왕양은 14일 새로운 5년 임기의 당위원회 서기로 재선됐다고 중국 국영 매체들이 전함으로써 그가 이번 하반기에 개최될 제18차 당 대회에서 새로운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한 자리를 예약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공산당이 이번 제18차 당대회를 통해 충칭모델이 제시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강화와 발전보다 분배를 중시하는 방향으로의 국가정책 전환을 할 가능성도 낮아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보시라이 사건의 진상은 시진핑과 리커창을 두 개의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중국공산당 지도체제의 출현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는 보시라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정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1989년의 톈안먼 사태 해결 과정에서 상하이(上海) 시장 겸 당서기의 등장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천시퉁(陳希同) 베이징시 당서기가 부패 혐의로 실각했던 일이나, 2002년에 새로운 지도부의 핵심으로 떠오른 후진타오 현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권력 기반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역시 부패 혐의로 고발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권력의 길에서 매장당한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시 당서기 사건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이번 보시라이 사건이다.

시진핑과 리커창보다 두세 살 위의 연장자로 이들 두 사람보다 먼저 중국공산당의 스타로 떠올랐던 보시라이를 부패 혐의로 제거함으로써 올해 후반기에 시작될 시진핑-리커창 체제의 기반 구축을 위한 정지 작업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천시퉁과 천량위를 제거하는 과정에서도 보여준 국내외 미디어를 활용해서 새로운 지도부의 최대 걸림돌을 제거하는 한편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당내 이견을 정리하는 과정과 절차를 밟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돌연 불거진 보시라이 사건의 진상에 가까울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지난 34년간 추진해 온 발빠른 경제 발전을 위한 정치이론은 '신권위주의'라는 말로 정리된다. 원래 경제발전은 정치의 민주화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미국과 유럽의 정치이론이었으나 중국은 경제는 시장경제를 추구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나 자유주의를 채택하지 않는 신권위주의에 따른 경제발전을 추진해왔고, 또 성공을 거두어 온 것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개혁은 추진하면서도 정치개혁은 추구하지 않는 중국 특유의 정치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나 원자바오 총리를 두 핵심으로 하는 현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2010년 후반기부터 간간이 "경제체제의 개혁에 이은 정치체제의 개혁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혀왔으나, 이제 임기를 1년도 남겨놓지 않은 이들 두 사람이 다짐하는 정치체제의 개혁은 그 발의 시점으로 보아 실행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중국호는 올해 후반기의 당 대회 이후에도 여전히 빠른 스피드의 경제발전은 추구하되, 정치체제의 개혁은 실질적으로 추구하지 않는 형태의 신권위주의 이론을 폐기할 전망은 낮다고 할 것이다.

글 / 박승준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