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는 국내 정치의 연장이다. 중국의 외교전략은 중국내 정치적 의지가 확장되어 나타난 것이다. 미 국방부가 최근에 미 의회에 제출한 '2012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정치지도자들은 앞으로 2020년까지, 21세기의 첫 20년을 중국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전략적 기회의 기간(period of strategic opportunity)'으로 설정했다. 이 기간에 자신들의 성장과 발전에 필요한 우호적인 외부환경을 조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 기간에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한 강대국들과는 가능한 직접 대결을 피하고, 한국 일본 필리핀 등 주변 국가들과도 긴장과 갈등을 조성하지 않는다는 큰 전략을 세워놓았다.
중국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 마샤오톈(馬曉天)은 28일 홍콩 봉황(鳳凰)TV와 중국과 필리핀 사이의 해상영토 분쟁에 관한 인터뷰를 하면서 "중국군은 해상영토를 보위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현재 군사역량을 동원할 준비를 하지 않고 있으며, 군사력은 최후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과 조선(북한)의 군대가 조업활동을 하는 중국 어민들을 납치하거나 조업활동을 방해하는 등 중국의 해양 주권이 빈번하게 도전받고 있으나, 중국은 어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나 외교부가 나서서 이 일의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환구시보(環球時報 · Global Times) 등 관영매체들이 필리핀 당국이 황옌다오(黃岩島)에서 미군과 합동 군사훈련을 벌이는 데 격분해서 "인민해방군이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흥분한 논조를 보여주었지만 중국군의 방침은 어디까지나 "해상영토를 방어할 능력은 갖추되 동원준비는 하지 않는 것"이 기본 전략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어떻든 2020년까지는 미국 등 강대국이나 한국, 일본 등 주변국들과는 직접 군사적으로 충돌하지 않는다는 중국 국가전략에 충실히 따를 것임을 마샤오톈 부총참모장은 분명히 한 것이다. 마샤오톈의 말에 따르면, 중국은 서해상에서 한국과의 조업권 문제로 마찰이 빚어지더라도 적어도 2020년까지는 어업당국이나 외교부가 나서서 문제 해결을 시도할 것이며 결코 중국군이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해 7월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발표된 '미래 10년 주변외교 신전략'도 2020년까지는 미국 등 강대국이나 주변국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커다란 틀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표방하고 있는 아시아에 대한 재개입(Re-engagement)전략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미국이 아시아에 대해 역사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실제 이익을 인정해줄 것이니, 미국도 중국의 '핵심이익'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의 '핵심이익'은 지난 해부터 중국 관영매체와 정치지도자들이 즐겨 쓰는 용어로, 무엇이 중국의 핵심이익에 해당하는 것인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지난 해 9월 6일 국무원이 주관해서 만든 '중국의 화평발전(中國的和平發展)'이라는 중국의 국가목표에 관한 백서를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이 백서에서 중국이 지켜야 하는 '핵심이익(核心利益)'이 다음의 여섯 가지라고 밝혔다. 국가의 주권, 국가의 안전, 영토의 보존, 국가의 통일, 중국 헌법이 확립한 국가의 정치제도와 사회의 안정, 경제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확보하는 것이 중국의 핵심이익이라고 규정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다섯 번째의 '중국 헌법이 확립한 국가의 정치제도와 사회의 안정'이라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외국이 중국 헌법에서 확립되어있는, 중국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현행 중국의 정치제도와 사회의 안정을 흔들지 말라는 것이며, 중국 관영매체들은 '만약 이들 중국의 핵심이익을 건드릴 경우 그 결과는 건드린 쪽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가 '핵심이익'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부터다. 이전에는 '근본이익(根本利益)'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고, '중대한 관심사(重大關切)'라는 말로도 표현됐다. 미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 마이클 스웨인(Michael Swaine)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 '핵심이익'이라는 용어를 2001년에 처음 사용한 이래 2005년에 55차례, 2009년에 260차례, 그리고 작년에는 325차례나 인용했다. 2009년 7월에는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미국과의 전략경제대화에 나와 중국의 핵심이익이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중국의 핵심이익이란 개념을 남중국해의 남사군도와 리비아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공격을 놓고 적용해보면 중국은 남사군도에 대해서는 영토의 보존이란 개념을 적용했을 가능성이 있고, 리비아 문제에 대해서는 경제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을 적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리비아 문제에 대해서는 "외국이 중국의 정치제도를 흔들어서도 안 되지만, 미국과 유럽이 리비아의 정치제도를 흔들어서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그런 판단은 세계의 역사가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세계사를 만들어가는 가치판단은 미국과 유럽의 몫이라는 미국과 유럽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물이었다. 무엇보다도 현재 중국의 GDP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 정도로, 미국의 23~24%와 유럽의 21~22%에 비하면, 더구나 그 합한 규모에 비하면 아직도 세계사를 만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잠시 잊은 결과였을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 중국에 필요한 것은 경제발전을 더 오래 지속적으로 해서 최소한 중국의 GDP가 전 세계 GDP의 30% 정도는 되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고, 그 이전에는 주변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 강대국들과 '화평발전'하는 관계를 설정해 나가는 일이 급선무라는 중국 정치지도자들의 전략적 판단은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라고 하겠다.
하와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 개막을 앞둔 지난 해 11월10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호놀룰루의 이스트 웨스트 센터에서 '미국의 태평양 세기(America's Pacific Century)'라는 제목의 중요한 연설을 했다. 클린턴 장관은 앞으로 미국의 전략구상을 담은 이 연설에서 "지난 10년 동안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간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이제는 새로운 미국의 투자대상지역으로 아시아가 떠올랐다"고 말하고 "미국은 그동안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 대해서 중요한 건설자의 역할을 해왔으나, 앞으로의 21세기는 미국의 태평양 세기가 될 것이며, 이 역동적이고 복잡하면서도 중요한 지역에서 미국은 이전에 없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클린턴 장관은 "앞으로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개입(engagement) 전략이 어떤 모습을 하게 될 것인가"를 설명하면서 앞으로 미국은 APEC과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에 적극 참여할 것이며 전통적인 동맹국인 일본 한국 호주 필리핀 태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장관은 이와 함께 "미국과 한국의 FTA와 태평양 국가들과의 TPP(Trans Pacific Partnership)를 통해 태평양 일원에 21세기형 단일 무역공동체를 건설할 것"이라고 말하고, "미국이 그런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5개 동맹국이 가장 중요한 버팀대(fulcrum)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클린턴은 중국에 대해서는 "일부 미국 국민들은 중국의 발전이 미국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있고, 일부 중국 사람들도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지만, 우리는 중국의 발전은 중국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 미국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믿고 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중국이 국제법을 존중하고, 더 개방적인 정치체제를 갖는다면 중국의 파트너들에게 중국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줄 것"이라고 말해, 미국이 앞으로도 중국의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간섭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클린턴은 미국이 앞으로도 중국내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심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한반도 전략은 북한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 확보를 핵심이익의 하나로 간주하고, 이같은 자신들의 핵심이익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기본 전략을 보여준 것이 지나간 10년 동안 후진타오(胡錦濤)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팀의 전략이었다. 이들의 전략이 앞으로 올해 가을 이후에 출범할 시진핑(習近平) - 리커창(李克强) 팀에서 어떻게 수정될 것인가, 아니면 유지될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03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9년이상 유지되고 있는 이른바 6자회담 체제로는 더 이상 북한 핵무기 폐기가 어려워져 가는 현실에서, 앞으로 남북한 관계뿐만 아니라 일본과 대만(臺灣)으로 핵무기 보유가 확산될 가능성을 안고있는 점도 중국에게는 부담을 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글 / 박승준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