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의 장막이 걷히면서 13억 인구가 갖는 시장으로서의 잠재적 가능성과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하여 1980년대 이후 중국은 급격히 우리에게 다가온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교역량이 2천억달러를 넘어선 지금과는 달리, 개방 초기에는 이 새로운 관심의 대상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였고, 알려고 하는 탐구열도 그렇게 치밀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하기 위한 시간과 자본의 투자에도 인색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이러한 대중국 접근태도는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사고와 정치적인 상황, 땅덩어리는 크고 인구는 많지만 당장은 구매력이 그렇게 크지 않은 가난한 나라, 즉 약대국이라는 선입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아마도 우리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중국은 역사적으로 우리와 너무 밀접한 관련을 맺어 온 같은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이미 친숙하고 잘 알고 있는 상대라고 하는 착각도 이러한 접근태도를 만든 한 요소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비즈니스 파트너가 된 중국인들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우리와 다른 점이 너무 많았고, 그 중에서도 그들을 상대해 본 이방인들을 가장 당황하게 한 것은 국제적인 관행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그들의 무원칙과 무매너에 관한 문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관성이 없는 무원칙한 태도는 무경우한 일이거나 상대에 대한 배려의 부족으로 오해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심지어는 상대를 골탕 먹이기 위하여 의도된 이중적 태도로 보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그것은 국제관계에서 거의 관행화되어 있는 예측 가능성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기에 중국으로 진출한 기업인들 중에는 이러한 중국인들의 이중성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곤혹스럽고 난처한 경우를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상식이 우리 입장에서는 몰상식으로 보이고, 그들의 관행이 우리의 관점에서는 사기나 부도덕한 것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허다했던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대륙적 기질과 외형적인 호방함이 내적인 섬세함 혹은 치밀한 계획성과 표리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수업료가 필요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문제였다.
사실 이 이중성의 실체에 대한 실마리는 이미 임어당의 다음과 같은 지적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모든 중국인들은 행동적으로는 유가(儒家)요, 사고적으로는 도가(道家)이다. 더구나 득의했을 때는 공맹(孔孟)의 교도요, 실의했을 때는 노장(老莊)의 신도"라는 그의 설파는 적어도 원론적인 차원에서 중국인들의 사고체계와 행위방식이 서로 다른 철학적 바탕 위에 있는 것임에 대한 아주 명쾌한 지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인들의 일상사에서 그들의 행위방식을 규율하는 표준은 유가의 인간중심적 윤리규범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 사고의 바탕에는 도가의 무위사상이 아주 두텁게 깔려있다. 이 유가의 행위방식과 도가적 사유방식은 중국인들의 삶 속에서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른 철학적 바탕위에서 같은 언어로 표현된 겸양지덕으로서의 양보는 유가나 도가 그 어느 쪽에서도 최고의 미덕으로 권장해 온 덕목이지만, 도가의 윤리는 양보의 방법과 결과를 '유극강(柔克剛)'이라는 극명하게 대착점을 가진 역설적인 방식으로 설명한다.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고 하는 '유극강'의 사고방식은 일종의 처세술 공식이다. 또한 그것은 부드럽고 구부러져 유연한 것이 딱딱하고 경직된 직선적인 것을 이긴다는 역설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공식은 일상적인 처세에서 부딪치는 힘의 대결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사고력의 대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굽은 것이라야 온전하고(曲則全), 꼿꼿하면 부러진다(直則折)'는 말도 같은 맥락의 의미를 갖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부드러운 것은 딱딱한 것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논리는 결국 능동적인 기질이 강한 남성적인 것보다 수동적인 기질의 상징인 여성적인 것의 선호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옳음은 붓과 태극권의 비유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붓과 태극권은 부드러움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이고, 또 스스로 그 힘을 체험할 수 있는 도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본 중국인의 아침은 태극권으로 시작되는 것 같았다. 태극권은 도가의 철학을 토대로 만들어진 무술이라고 한다. 아침 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아주 느린 템포의 무용을 하는 것 같이 무릎을 절반쯤 굽혔다 펴면서 90도로 방향전환을 하면서 동시에 전후의 반동과 팔을 벌려 원을 그리는 동작의 운동을 한다. 이러한 동작들은 느리지만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동작 간에는 단절 없이 연속적인 리듬으로 이어져 흐물흐물하게 춤을 추거나 물이 흐르는 것 같이 아주 부드럽게 보인다. 중국에는 소림무술을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무술들이 있지만, 다른 여타의 무술들과는 달리 태극권은 근거리인 직선 주로를 피하고 원형의 주로를 따라 상대를 공격하고, 같은 방법으로 중심 이동과 방향 전환을 한다.
이 부드러움을 예술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산출되는 원리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예가 중국 예술의 입문이요,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서예에서이다. 서예는 작은 원통과 동물들의 부드러운 털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붓으로 글씨를 쓰는 예술행위이다. 붓으로 쓴 글씨에는 면적과 부피가 있기 때문에 회화적 요소가 있다. 글씨가 만들어지는 원통에 고정된 털은 입김에도 흩날릴 정도로 가볍고, 쓰는 사람이 마음대로 방향을 틀고 구부려서 면적과 부피의 질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만약 글씨를 만들어내는 부분이 딱딱한 무엇으로 된 것이라면, 평면의 종이 위에 면적과 부피의 질감을 갖는 글씨를 만들어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부드러운 털끝의 움직임이 연출해 내는 글씨는 물의 흐름과 같이 부드럽기도 하지만, 때로는 대지를 삼켜버릴 것 같은 힘이 넘치는 웅혼한 기세를 보여주기도 한다.
필자가 중국인들의 삶의 흔적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자연이나 대상에 불필요하게 인간의 손이 너무 많이 가해졌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건축·공예·원림·예술품 등을 감상할 경우에 받게 되는 첫 인상은 그것들이 거의 인위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느껴진다. 황산·태산·화산·숭산·항산·형산 등은 모두 중국의 이름난 명산들이고, 경치가 빼어난 풍경구들이다. 이 산들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화려한 자태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이 아름다운 자연에 사람의 손이 닿을만한 틈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손자국을 남겨 놓고 있다. 자연이 빚은 작품에 사람의 손, 즉 인공이 더해져 중국적인 완성품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과도한 인위가 늘 최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황학루(黃鶴樓)를 필두로 한 누각이나 전각에서 볼 수 있는 끝이 하늘로 말려 올라가는 모습의 앙천식(仰天式) 추녀도 인위의 극치요, 여장한 남자 배우가 짜내는 여성 목소리로 진행되는 경극(京劇) 역시 부자연스러움의 극치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또한 그들이 원림으로 자랑하는 쑤저우(蘇州) 졸정원이나 사자림도 인위의 극치이다. 그들은 자연스러운 것보다는 자연에 인위가 가해진 것을, 평범한 것보다는 기이한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천하의 기이한 볼거리(天下奇觀)' 혹은 '여덟 명의 양주 괴짜들'(揚州八怪) 등과 같이 기이하고 괴기한 사물이나 사람 혹은 경관을 자랑삼아 표현하는 말들을 간간이 접할 수 있다.
노장사상이 무위를 그렇게 강조한 이유가 바로 중국인들의 이 과도한 인위적 속성에 대한 반성적 사유 혹은 반작용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해 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무위를 본으로 삼는 도가의 도관이나 노자상도 그 규모나 입지조건들을 보면 인위의 극치이기는 마찬가지라 할 말을 잃게 된다. 만약 필자의 이러한 소회나 추측이 조금이라도 타당성을 갖는다면, 노장사상은 중국사회에서 영원히 비주류의 사상으로 머물 수밖에 없는, 그러나 결코 소멸될 수는 없는 운명을 지닌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교와 도교, 즉 인위와 무위의 절묘한 조화 속에서 중국인들은 음양의 균형, 중용의 도라는 관념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관념은 일을 할 때 전체적인 국면·협조·중용의 중시·과유불급·분수파악·적정한 정도 등을 강조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돌다리를 두드리며 강을 건너듯, 한 걸음 한 걸음씩 전진해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전체적인 국면을 중시하는 사상적 배경과 관련이 깊다는 평가는 그들과의 교류 폭을 더 넓혀가야 하고, 더 많은 접촉을 해야 할 우리에게는 깊이 음미가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글 / 윤세원 인천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