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실 '섬진강 시인의 길'에는 섬진강변을 가로지를 수 있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치즈 마을로 알려져 있는 임실은 수도권 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임실의 대표적인 자연 경관은 청정 지역으로 유명한 섬진강 상류의 원시 자연이 그래도 살아 숨쉬고 있고,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옥정호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원산암마을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의 물줄기는 임실을 거쳐 순창, 남원을 적신 뒤 일반인들에게 섬진강 하면 떠오르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인 구례와 하동을 지나게 된다. 섬진강 물줄기가 흐르는 지역 중 임실은 강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이 원시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또한 섬진강을 멀리서 지켜 보는 게 아닌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임실만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다.

옥정호는 아마추어 사진 작가들에게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뽐내는 옥정호지만 한편으로는 아픈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옥정호는 지난 1925년 일본인들이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 진 저수지다.

▲ 지금도 김용택 시인이 찾아 시를 쓰고 있는 생가.

하지만 1965년 농업용수 공급 뿐 아니라 호남지역의 전력을 제공하기 위해 섬진강 다목적댐 공사가 진행됐다. 이로 인해 운암면의 가옥 300여호와 경지면적 70%가 수몰되는 아픔을 겪었다. 옥정호는 해뜰 무렵 호수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아름다워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한국의 길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그 강에 가고 싶다 -김용택


그 강에 가고 싶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

금방 기뻐 웃을 일도 아니고,

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

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도 아니다


-중략-


그 강에 가고 싶다.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그 산에 그 강

그 강에 가고 싶다.

#김용택 시인과 '섬진강 시인의 길'

구구절절하게 섬진강과 옥정호를 설명했던 것은 바로 임실 '섬진강 시인의 길'이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섬진강 시인의 길은 짧게는 순창 어치리 장구목에서 진뫼마을까지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긴 트레킹을 원하는 사람들은 섬진강변을 따라 강진터미널까지 걸을 수 있다.

강진터미널?

▲ 기기묘묘하게 움푹 파인 바위들을 볼 수있는 장구목.

터미널이 '강진'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마치 강진군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임실군은 1읍 11면으로 행정구역이 구성되어 있는데 11개 면중 한 곳의 이름이 '강진'이다.

보통 시인의 길을 걸을때 많이 걷는 코스는 풍광이 아름답고 한적한 시골마을을 거치는 장구목~구담마을~천담마을~진뫼마을~덕치생태공원으로 이어지는 14㎞를 많이 걷는다.

전북지역의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이 명품길을 만들며 보통 '마실길'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지만 임실군은 김용택 시인이 진뫼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데 착안해 '시인의 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김용택 시인의 초기시 대부분은 섬진강을 배경으로 농촌의 삶과 농민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섬진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길

순창 장구목으로 첫 출발지를 정한 것은 강변 곁의 원시자연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장구목의 기기묘묘하게 움푹 파인 바위들을 감상하기도 하고 곁에 위치한 출렁다리를 건너보며 동심으로 돌아가 볼 수 있는 기회도 주기 때문이다. 장구목의 바위들은 수만년의 세월동안 강물이 쓰다듬고 어루만져 태어난 작품들이다. 특히 높이 2m, 3m에 무게가 무려 15t이 된다는 요강바위는 아이가 들어가도 될 정도로 깊은 웅덩이가 파여 있다.

장구목에서 시작해 조금만 걷다 보면 찔레꽃이 반겨준다. 차량통행이 많지 않아서인지 찔레꽃의 하얀 꽃잎이 햇살에 비쳐 눈부시다.

장구목을 지나 순창군 동계면 내룡마을 입구에 있는 징검다리를 이용해 무릎까지 차는 섬진강 상류의 물줄기를 건너면 구담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높지 않은 산 중턱에 자리잡은 구담마을은 봄이면 매화꽃이 만개해 무릉도원에 온 듯 톡톡 터진 매화꽃이 흩날리는 것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마을이다. 구담마을의 숨은 자랑은 여행객들에게 시원한 나무 그늘을 제공해 주는 당산나무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풍경이다. 당산나무에서는 안동 하회마을처럼 섬진강이 내룡마을을 휘돌아가고 있고 강물을 방금전 건너온 징검다리가 한폭의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

구담마을에서 천담마을을 거쳐 진뫼마을에 이르는 길은 김용택 시인의 시구를 감상하며 섬진강변을 즐기는 길이다. 여름 햇살이 발길을 잡는다면 길 곁에 흐르고 있는 섬진강변에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낼 수 있고, 청정한 섬진강의 1급수에서만 자라는 토종 물고기를 잡고 있는 강태공들을 보며 한가롭게 거닐면 된다.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김용택 시인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진뫼마을이다. 진뫼마을 김용택 시인 생가 입구에는 30여년 전 시인이 직접 심었다는 작은 정자나무가 여행객들을 맞아 준다. 김용택 시인은 이 나무들을 소재로 '푸른나무'란 연작시 5편을 쓰기도 했다. 가끔은 김용택 시인이 이 곳에 내려와 집필도 한다고 하니, 여행을 떠나며 김용택 시인을 만나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글·사진/김종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