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0일 오전 11시 30분. 12명의 암환자들이 강원도 인제군 방태산 휴양림에서 요가체험을 한뒤 하산길에 세계 최고 권위의 암치료 전문가와 맞닥뜨렸다. 조금 전 요가를 통해 '마인드 컨트롤'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호흡은 가빠졌다. "세계에서 제일 가는 선생님을 직접 볼 수 있다니! 내가 나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시겠지…." 그만큼 이들은 절박했다. 오후 2시에 환자들에게 강연키로 돼있는 칠순을 넘긴 노 전문가는 환자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새를 못참고 숲으로 '마중'을 나왔다.
김의신(71) 박사. '미국 최고의 의사' '암 방사면역 검출법의 개척자' '세계적 핵의학 전문가'라는 수식어를 달고다니는 그는 여간해서는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세계 최고 부자들의 단골인 미국 텍사스대학교 MD앤더슨 암센터 종신교수다. 그를 인제군의 산골로 발걸음하게 한 것은 가천대길병원 암센터다. 정부 지정 '인천지역 암센터'인 길병원 암센터가 암환자를 위해 마련한 '힐링캠프'에 김 박사를 강연자로 초청한 것이다. 대한민국 출신 세계 최고의 암 전문가와 인천 암환자들의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김 박사는 환자들과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산상 연설'에 들어갔다.
"첫째, 암환자들은 걷는 운동이 중요합니다. 특히 유방암 환자들에게는 더욱 그래요. 운동하면서 햇빛에도 나가야 해요. 그늘만 찾으면 안돼요. 또 환자들은 잘 먹어야 합니다. 체중이 떨어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고기도 많이 먹어야 해요. 한국에서는 '암 환자는 고기를 먹으면 안된다'는 인식이 너무 짙게 깔려 있어요. 이 말만 믿고 환자들은 무조건 아무 고기도 먹지 않으려 해요. 그러다가 암으로 죽는 게 아니라, 굶어 죽어요. 이게 문제예요.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는 '몸에 안좋은 동물성 기름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에요. 예를 들면 삼겹살같은 게 대표적이죠. 내가 미국에서 암병원에 31년을 있었는데, 한국 환자들이 치료가 제일로 안돼요. 먹지를 않고, 마시지도 않아요. 생각부터 잘못돼 있기 때문이에요. 그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한국인은 세계 최고로 교육수준이 높아요. 그런데 병(病)하고 정치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무식합니다."
김 박사는 한국에는 잘못된 의학상식이 일반화해 환자들에게 '신앙'처럼 작용한다고 꼬집었다.
"한국 환자들은 수술을 너무 좋아하는 것도 문제예요. 수술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지요. 그런데 한국 환자들은 무조건 수술을 해달라는 거예요. 어떻게 해서라도 수술을 해달라면서 백까지 씁니다. 아주, 죽겠어요(웃음)."
김 박사의 얘기를 듣고, 환자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점심을 먹고난 '힐링캠프' 참가자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아보였다.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묻어났다.
6개월 전에 수술을 했다는 박정희(45) 씨는 "저한테 딱 맞는 프로그램이었다"면서 "여기서 배운 것을 집에 돌아가서 다 다시 해볼 것"이라면서 밝게 웃었다. 중국 조선족 출신으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암 발병 사실을 알게 됐다는 김모(50) 씨는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게 너무 좋다"면서 "여기 오기 전에는 집에 있는 예쁜 옷도 입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는 삶에 의욕도 넘치고, 예쁜 옷도 맘껏 입고 다닐 것"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오후에 실내에서 가진 강연에서 자신의 미국병원 경험과 암 치료 법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치료가 안되는 사람들 중엔 의사·변호사·약사·교수들이 많아요. 이 사람들은 담당 의사 말을 안 들어요. 자기 생각이 맞다는거죠. 의사가 하라는대로 안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되잖아요. 그게 병을 키웁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아까도 얘기했듯이 한국사람들은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요. 가장 안 좋은 것을 다 하는 겁니다."
김의신 박사는 암은 이론적으로 완치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암은 이제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만성병인 시대라고 강조했다. "암은 완치란 있을 수 없지만, 조정은 될 수 있어요. 암에 대해 우리(전문가 포함)가 알고 있는 것은 '코끼리 다리 만지기' 격이에요. 암의 요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김 박사는 "병은 의사에게 맡기고, 의사가 하자는대로 해야 합니다. 그 대신 이유는 물어봐야 합니다. 왜 이 치료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음가짐도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환자의 마인드 컨트롤이 꼭 필요하고요. 또한 가족들이 환자를 이해하려는 태도도 중요하지요."
김의신 박사는 31년동안 몸 담았던 MD앤더슨을 퇴임하고, 오는 9월부터 가천대 석좌교수직을 맡아 본격적인 국내 활동에 나선다. 미리 국내 환자들에게 선보인 셈이다.
길병원 암센터는 공개모집을 통해 13명의 유방암 환자를 선정해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2박3일동안 '힐링캠프'를 마련했다. 길병원 암센터는 앞으로도 계속 '힐링캠프'와 같은 환자 참여형 프로그램을 마련해 나가기로 했다.
글·사진/정진오기자